[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야권 대선주자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야권 잠룡들 모두 촛불민심에 부응해 박 대통령의 퇴진과 탄핵에 동참했지만 정작 받아 든 성적표는 제각각이었다. 탄핵 정국 전반전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른 이재명 시장이 ‘수’,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하며 이 시장에 ‘의문의 1패’를 당한 문재인 전 대표가 ‘우’를 받았다는 평가다.

반면 반기문 총장과 문 전 대표, 이 시장으로 이루어진 ‘신 3강 체제’에서 밀려나 중위권을 형성하게 된 안철수 전 대표·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손학규 전 고문은 각각 ‘미’와 ‘양’을 받으며 쓴맛을 다신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아직 후반전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 어느 때보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대선 경선이 본격화되면 야권 잠룡들 간 ‘사생결단’식 공세가 이어지며 지지율이 다시 한번 요동칠 것이란 분석이다.

- “대선 국면은 ‘촛불정국’과 다른 눈으로 평가할 것”
- ‘개헌’ 고리로 한 후반전 기다리는 安과 ‘제3지대’

탄핵 정국 전반전 성적표 ‘수’의 주인공은 ‘이성남’이라고 불리던 이재명 시장이었다. ‘이성남’이라는 별명은 이 시장의 성남시장이라는 작은 ‘체급’을 낮춰 부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작은 ‘체급’이 이 시장의 지지율 급상승에 큰 몫을 했다는 평가다. 이 시장은 탄핵정국에서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대통령 탄핵을 제일 먼저 외치며 ‘촛불 민심’을 대변하는 데 집중했다. 이에 이 시장은 야권 대선주자들의 지지층을 잠식하며 대선주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기에 이른 것이다.

몸집 커진 이재명… ‘집중 견제’ 받게 될 것

이를 증명하듯 이 시장은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전 대표와 박원순 시장 등을 일찌감치 따돌렸고 급기야 문 전 대표와 반 총장을 압박하고 있다. ‘3강 체제’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다만 정치권은 몸집이 커진 이 시장이 다른 잠룡들의 ‘집중 견제’에 얼마나 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한다. 지금까지는 가벼운 ‘체급’ 덕분에 지지층의 요구를 그대로 다 받아들이면서 소위 ‘사이다 발언’을 해도 큰 충돌이 없었지만 지지 의원의 수가 늘어나고 정치 세력이 커질수록 이해관계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한편 이재명 시장에게 ‘의문의 1패’를 당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탄핵 정국에서 ‘명예로운 퇴진’과 ‘하야’라는 양측의 주장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며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지지율 수직 상승을 보인 이 시장에 비하면 문 전 대표의 지지율 상승세는 완만한 게 사실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9일 발표한 12월 2주 차 주간 집계에 따르면,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에서 이 시장이 무려 13% 포인트 상승한 반면 문 전 대표는 2% 포인트 상승에 그쳤다.

더욱이 이번 탄핵 정국으로 이 시장은 ‘사이다’라는 별명을 얻은 반면 문 전 대표는 이 시장과 비교해 답답하다는 뜻의 ‘고구마’라는 오명까지 떠안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문 전 대표에 대해서는 지난 대선과 이번 탄핵 정국을 거치며 집권 회의론이 일었다는 평가도 나오는 실정이다.

‘집중포화’ 우려에 ‘숨고르기’ 들어간 文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 전 대표는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중도층에 ‘대권 야욕을 노골화한다’는 인식을 심어줘서는 안 된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야권 내부에서 조차 문 전대표의 독주를 견제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만큼 대선 과정에서도 독주가 지속된다면 다른 후보들의 ‘집중포화’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또 다른 야권 잠룡인 안철수 전 대표는 문 전 대표와 달리 대통령 탄핵에 강경한 목소리로 일관했음에도 지지율 상승을 이뤄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전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또다시 ‘양보’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문 전 대표나 이 시장을 상대로 꾸준히 경쟁에 나설 것이라는 것.

여기에 ‘최순실 게이트’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타파를 위한 개헌론이 정국을 휩쓸 경우 안 전 대표에, 손학규 전 고문과 정의화 전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한 ‘제3지대’가 힘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최순실 사태로 인해 ‘친박’이든 ‘친문’이든 기존의 주류 세력을 등에 업은 정치인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은 안 전 대표에게 큰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어찌 됐든 탄핵 정국 동안 유지되던 야권 공조는 깨졌고 야당 주자들은 저마다 차기 대권을 놓고 열띤 경쟁에 돌입할 것이 자명하다. 실제로 야당 대선주자들은 이미 박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서 치열한 선명성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헌재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야권 잠룡들이 직접적으로 선거운동에 돌입하는 것에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즉 주요 대선주자들은 헌재의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만큼은 촛불집회 현장에서 이뤄지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를 정치권에 반영하는 형식으로 존재감을 부각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편 본격적으로 대선 국면이 열리게 되면 국민들이 촛불정국과는 다른 눈으로 대선주자들을 평가할 것이라고 정치권은 말한다. 즉 국민들이 대선 후보들이 제시하는 국가 비전과 경륜, 도덕성 등을 통한 후보 검증을 거치면서 지지율이 요동칠 수도 있다는 것. 실제로 야권의 대선 예비후보들은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촛불민심의 승리로 평가하며 경쟁적으로 정국 해법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정권을 거의 내준 것처럼 보이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는 후보만 잘 만들어내면 대선에서 야권 후보와 한판 겨뤄볼 수 있다”며 “야권에서는 문 전대표와 이 시장 외에도 확장성이 있고 중간층을 끌어당길 수 있는 안 전 대표와 안 지사, 손 전 대표가 부상할 수 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