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맹탕 국회 청문회에 국민 울화통 터졌다

“모른다”, “아니다”, “기억이 안난다”.

지난 5일부터 22일까지 다섯 차례 진행됐던 ‘최순실 국정농단 진실규명을 위한 청문회’에서 증인들의 입맞춤 형 발언록이다.

하나같이 ‘모르쇠’로 일관했다.

특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기춘 증인과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우병우 증인의 치밀하게 계산된 ‘모르쇠 작전’은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청문회 중계방송을 지켜봤던 국민들의 울화통을 자극했고 분통을 터뜨리게 했다.

두 증인의 경우 선택된 수재들만 간다는 서울 법대 출신이다.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을 패스하고 검찰의 요직을 거쳤던 인물이다.

김기춘 증인은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까지 지냈던 국가 지도급 인사다.

노회(老獪)한 권력 사냥꾼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은 어떤 자리인가.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 등 강력한 국가 권력 기관의 정보를 섭렵할 수 있는 자리다.

당연히 최순실에 대한 정보를 꿰뚫을 수 있다. 그런데도 최순실을 ‘모른다’고 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랬다. 얄미울 정도의 뻣뻣한 자세였다.

‘모른다’는 단어는 ‘바보의 언어’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바보는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똑똑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두 증인이 일관되게 ‘모른다’고 스스로 바보임을 만천하에 천명한 것이다. 가당키나 한 일인가.

‘똑똑이가 바보 시늉’을 했던 것이다. ‘똑똑한 바보’라는 모순어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방조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책임회피 수작이며 꼼수인 것이다.

언론보도나 사회에 넓게 회자되는 ‘최순실 일당 국정농단’의 소문과 정황은 두 사람만 몰랐을까.

그들 말처럼 정말 몰랐다면 ‘무능의 극치’다. 알고도 모른 채 했다면 용서하기 힘든 직무유기이거나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직무유기나 공범의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해 동원된 방어논리가 ‘모르쇠’라면 참으로 비겁하고 뻔뻔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들의 이런 비겁하고 무책임한 작태가 작금의 국정혼란을 부른 꼴이어서 그렇다.

손으로 막을 수 있었던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정도로 사태를 키워버린 것이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여야의원 18명이 50여명의 증인과 참고인을 상대로 장장 50시간에 걸쳐 질의를 했다.

그러나 별무 소득이었다. ‘코미디 같은 이런 청문회가 왜 필요 하느냐’는 힐난과 청문회 무용론이 나올 만큼 맹탕이었다.

의원들은 증인들의 ‘모르쇠 방어 논리’를 깨뜨리는 데 역부족이었다.

증거확인 등 사전조사나 연구도 없이 무조건 덤벼들어 헛발질 하다가 되레 증인들로부터 농락당한 꼴이 되었다.

따라서 사실상 끝난 것으로 볼 수 있는 이번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회 청문회’는 낙제점이라는 쓴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그러기에 그만큼 특별검사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검찰이나 국회가 파헤치지 못한 부분에 대해 특검이 철저하게 진상규명을 해달라는 주문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성역 없고 거침없는 철저한 수사와 권력에 빌붙어 호가호위(狐假虎威)했거나 권력의 시녀노릇을 했던 미꾸라지 같은 공직자들을 철저하게 가려내는 일이다.

그래서 죄 값에 맞는 엄중한 응징이 필요하다.

‘과거의 잘못을 교훈삼아 후환을 삼가자’는 징비록(懲毖錄)을 엮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교훈은 ‘힘은 잘 쓰면 득(得)이 되지만 잘못하면 독(毒)이 된다’고 했다. 정치권력이나 금력이나 무력이 다 그렇다.

최순실 게이트는 권력의 잘못으로 비롯된 독이나 다름없다.

이번 대통령 탄핵 사태를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실기(失機)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다.

일을 바로 잡을 기회를 놓쳤고 물러갈 때를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의 처신과 비교하면서 나온 이야기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닉슨은 스스로 사임했다.

법에 의해 탄핵받을 가능성이 높아서라기보다는 거짓말을 한 것 때문에 지도자로서 신뢰를 잃었고 따라서 더 이상 국민 앞에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리더십 연구의 권위자인 프레스 그린 슈타인은 ‘정서관리 능력’을 대통령 자질의 항목에 포함시킨바 있다.

자기 절제의 감정처리 능력이 높아야 하고 정서적 부조화의 결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서적 부조화의 결함’, 박대통령의 덕목과 연결될 수 있는 대목이다.그것이 오늘의 비극의 원인일 수도 있다.

따라서 모든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남 탓할 일이 아닌 것이다.

적어도 이를 인정하고 책임질 줄 아는 ‘정서적 조화’가 필요한 때인 것이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정국혼돈을 틈탄 정치권의 난폭한 권력 사냥도 경계 대상이다.

광기와 야만이 몰아치는 포퓰리즘이나 마녀사냥 식 대중영합에 편승해 이미 권력을 잡은 것으로 착각하는 일부 정치인들에 대한 경계인 것이다.

관심만 촉발 시킬 수 있다면 의리도 팽개치고 뭐든지 개의치 않는 선정주의나 선동주의에 매몰돼 궤변과 억지논리로 정치권의 이합집산을 정당화 하는 분열과 증오의 정치게임도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눈앞의 권력만 보고 밑바닥 민생이나 민심을 외면하는 권력 헤게모니 싸움은 또 다른 국민적 저항과 분노한 촛불에 불을 당길 것이라는 사실을 정치권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