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아침 7시, NHK TV 뉴스의 시작은 느닷없이 하와이 진주만에서 아베 수상의 위령 헌화 후의 소감 발표의 생중계로 시작되었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진주만에 정박해 있던 미군함 8척을 격침 시켰고 지상의 전투기 2백기 이상을 파괴하여 2,400명의 미군이 전사했다.

워싱톤의 일본대사관의 늦장으로 선전포고가 한시간 이상 걸림으로 인해 미국은 <비열한 공격>이라는 비난이 일어났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굴욕의 날>이라면서 대일개전을 선언하고, <리멤버 펄허버:진주만을 잊는냐!>는 구호 속에 국민을 결집시켰다.

그 당시 침몰한 군함 애리조나호를 그대로 두고 그 위에다 <애리조나기념관>을 만들었다. 이날 아베 수상과 오바마 대통령은 그곳에서 헌화를 마친 후의 소감 발표 생중계였다. 

뉴스의 한컷으로 생중계를 좀하다가 다른 뉴스로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베 수상의 약 20분 소감, 오바마 대통령의 약 15분 소감을 그대로 방영했다.

일본 정부나 미디어들은 양 수뇌의 소감 발표가 있다고 사전 보도가 있었지만 이것은 잠깐 언급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그러한 소감 발표가 아닌 치밀하게 사전에 쓰여진 연설문이었다.

아베 수상의 진주만 위령의 발표는 아베 수상 외교의 극치였다. 두번째 수상으로 재취임했을 때 수상은 지구의(地球儀), 조감도(鳥瞰圖)외교라는 캣치플레이 속에 말 그대로 세계 각국의 지구를 누볐다.

처음 수상으로 취임했을 때의 건강상태가 거짖말 같이 적극적인 순방외교를 펼쳤다. 외교의 적극성은 트럼프 당선자와의 회담을 위해서 뉴욕의 사저까지 방문했을 때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 야당 민신당은 현직도 아닌 당선자 사저까지 찾아가니 이것은 외교 조공이라고 비아냥거렸지만, 이 비난은 자기들이 할수없는 데서 오는 부러움에서 오는 질투에 불과했다.

그 후, 12월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서 성과를 올리고 내년 1월 퇴임하는 오바마 대통령과 진주만 위령을 같이 하는 회담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최고의 배려와 이별의 무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서 최우선 과제인 북방영토문제의 반환에 대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 속에 회담이 끝나서, 같은 자민당의 니카이도 간사장까지 불만스러움을 나타냈다.

이러한 와중에 현직 수상의 진주만 위령은 처음이라고 자신 갖고 발표한 내용이 사실과 달라서 아베 수상의 의도와는 달리 퇴색하고 말았다.

1956년 10월과 1957년 6월에 하토야마 이치로, 기시노부스케 당시 수상이 각각 진주만 위령 때문에 방문한 사실이 밝혀졌다.

일본 외무성은 양 수상의 방문에 대해서 처음 현 시점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양 수상이 방문 때는 미해군의 예포와 열병도 있었으니까 공식방문이라고 볼수 있다고 요미우리 신문은 하와이 당시 현지 신문을 인용 보도했다.

아베 수상의 진주만 위령의 발표가 있을 때 누구나가 지난 5월에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떠올랐을 것이다.

그 방문에는 아베 수상이 동행하고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이 때에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도 그렇지만 가장 주목의 대상은 대통령의 사죄 발언이었지만 그 발언은 없었다.

스가 관방대신은 기자회견에서 아베 수상의 진주만 방문 때도 사죄 발언은 없다고 말한 것처럼 아베 수상의 소감 발표에도 없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수상의 히로시마와 하와이 위령 순방 속의 사죄 발언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사죄 발언이 없었으니까 아베 수상도 거기에 따른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침략 전쟁이 빚은 피해이기 때문에 사죄 발언까지 동일시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외교가 아무리 균형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아베 수상의 진주만 방문에서의 외교는 배려가 있는 벨런스 외교라기 보다는 일본의 독특한 와리캉외교였다.    

아베 수상이 진주만 위령을 먼저 했었으면 역사에 남을 방문이었을지 모르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후였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똑 같이 하겠다면서 처해 있는 상황을 무시한 그야말로 무조건 절반 부담인 와리캉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똑 같은 행동을 취했을런지 모른다.

각자 부담이라는 와리캉문화의 합리성은 아주 좋은 점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무미건조할 때도 있어서 허탈감을 이르킬 때도 있다.

아베 수상의 문학적 요소가 들어있는 소감을 들으면서도 사죄 발언을 교묘히 피하면서 20여분에 걸친 장시간의 소감 표명에 허탈감을 느낀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아베 수상의 진주만 위령이 발표에 대해 한국과 중국에서는 정치적이라고 경계했지만 일본 수상으로서 언젠가는 방문해야 할 곳이었다.

그러나 긴급 현안 사항도 없고 1개월 후에 퇴임할 오바마 대통령과의 회담과 위령에 기시다 외무대신은 그렇지만, 강경 보수이고 수상 후계자로 불리우는 이나타 방위대신까지 동행한 것은 한국, 중국의 경계처럼 정치적이었다.

이나타 방위대신이 동행은 나중에 발표가 있었지만 트럼프 신정부와 앞으로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이번 동행 방문은 위령만이 아닌 일석이조의 효과를 바란 기대도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

현직 수상으로서는 진주만 위령이 아베 수상이 처음이라고 결단력 있는 외교를 자화자찬하던 일본 정부가 과거에도 수상의 진주만 위령 방문이 있었다는 사실에 모양새가 구겨져버렸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의 당시 수상이 진주만 위령 방문을 전혀 몰랐던 것은 최대의 미스터리이다.

기시노브스케 당시 수상은 아베 수상의 외할아버지이다. 1957년 그 당시 진주만 위령은 미.일 간에 가장 민감한 사항이었을 것인데 손자인 아베 수상까지 몰랐다니 또 다른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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