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오(희곡작가)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넌 왜 아직도 혼자냐?” “난 태어날 때부터 혼자 살란 팔자인가 봐. 세상 모든 신발)이 다 제짝이 있는 건 아니라고. 덜커덩 덜커덩 베틀신은 외짝이란 말도 몰라?” 만혼과 독신이 유행을 넘어서서 대세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인 원인이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지 결혼을 해야 버젓한 어른 대접을 받는 한국사회에서 제법 나이가 들도록 독신으로 산다는 건 대단한 스트레스를 장신구처럼 달고 사는 일이다. 그 때문에 차라리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역설했던 원시난혼제의 세상이 돌아왔으면 하는 발칙한 상상도 이따금씩 하게 된다. 엥겔스는 오늘날의 결혼제도는 남성권력 중심의 부계사회에서 만들어진 여성을 물건처럼 소유하는 사유재산제도의 산물이며 적어도 모계사회의 시대까지는 이런 난혼의 방식이 유지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래서인가. 원시의 신화와 전설이 넘쳐나는 제주에는 여신들이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남편감을 선택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틀어지면 먼저 “산 갈르곡 물 갈랑 살림 분산허자. ᄇᆞᄅᆞᆷ 알로 내려사라.” 하는 매몰찬 이별통보를 곧잘 한다.

이처럼 기가 드센 여신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망망한 바다의 격랑을 헤치며 제주까지 항해해온 도래신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이들과 만나기에 앞서 제주에 나라를 펼친 탐라 개국신화의 주인공인 ‘벽랑국 삼공주’를 먼저 만나보자.

‘삼성신화’로 알려진 탐라 개국신화는 정인오의 ‘성주고씨가전(星主高氏家傳)’, ‘고려사지리지(高麗史地理志)’, 제주 출신 고득종이 지은 ‘영주지(瀛洲誌)’ 등을 시작으로 여러 문헌자료에 소개되어온 기록신화이다. 이 세 가지 자료 중 가장 앞선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성주고씨가전에 소개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탐라 개국신화를 담아낸 제주시청 벽화 '탐라의 여명' 中 삼공주

애초에 사람이 없던 탐라의 한라산에 신령한 기운이 맺히며 북쪽 기슭의 모흥혈(毛興穴-삼성혈의 다른 이름 중 하나)에서 세 사람의 신인(神人)이 솟아났다. 세 사람이 고기잡이와 사냥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일본국에서 신인 3형제가 한라산에서 솟아났다는 사실을 알고 공주 세 자매가 오곡의 씨앗과 마소를 실은 배를 타고 탐라로 들어온다. 그리하여 세 신인과 세 공주는 제각기 짝을 지어 모흥혈 일대에 정착해 후손을 번창시켰다.

세 공주의 나라를 일본이라고 한 것은 신화 속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현실의 공간으로 변모시킨 것이니 굳이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다른 기록에서는 ‘동해 벽랑국’이라 부르고 있으니 이는 제주의 신화 속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동이용궁’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하다. 그보다 오늘 다루는 주제와 관련해 중요한 점은 바다를 건너 들어온 도래의 여신이라는 사실이다.

세 사람의 공주들은 바다를 건너올 때 그저 빈손으로 온 것이 아니다. 마치 오늘날의 결혼풍속에서 신부가 가지가지 혼수를 장만하는 것처럼 갖가지 선물을 한보따리 들고 왔다. 이들이 가져온 선물 중 오곡의 종자와 마소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는 이들의 남편들을 보면 쉽게 확인된다. 고기잡이와 사냥을 생업으로 삼는 수렵사회와 마소를 치고, 오곡을 가꾸는 목축과 농경의 사회가 하나의 앙상블을 이룬 것이다. 인류 역사의 발전단계에 대입해보면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진입하며 마침내 탐라라는 국가를 탄생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고대국가의 기틀을 잡는 데 있어 중요한 산업기반을 세 공주가 마련했다는 이야기다.

바다로부터 풍요의 기운을 가지고 남편감을 찾아와 마침내 나라까지 함께 세운 세 공주, 풍요의 전파자인 이들의 남다른 풍모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당연히 이들의 권능은 기록으로 정착된 문헌신화가 만들어지기 이전 시대인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신화시대의 여신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성산읍 온평리본향당

삼성신화 속에서 세 쌍이 처음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은 것과 비슷한 사연이 요즘 신공항 문제로 아수라장이 된 성산읍 온평리에도 전해온다. 온평마을 본향당의 본풀이를 보면 세 공주와 비슷한 세 자매가 등장한다. ‘강남천제국’ 또는 ‘서울 정기땅’에서 솟아난 세 자매가 계수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조천읍으로 들어와 각각 ‘조천관 정중밧디 정중부인, 김녕 관세전부인, 온평 멩호안전 멩호부인’으로 좌정해 세 마을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 자매 신 셋이 어떤 관문을 거쳐 본향당신이 지위에 올랐는가에 대해서는 깊은 사연이 전해지지 않지만 삼성신화의 배경이 되는 온평마을이라는 점과 세 자매라는 점은 삼성신화 속의 세 공주가 어쩌면 이들 세 자매는 아닐까 하는 추정을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한라산 기슭에서 솟아난 세 사람의 신인과 바다를 건너온 공주 셋의 결혼 이야기와 비슷한 사연은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송당계 신화의 어머니로 알려진 ‘금백주’다. ‘금백조’, ‘백줏또’ 등으로도 불리는 이 여신은 ‘강남천자국 백모래밭’ 또는 ‘서울 송악산’에서 솟아나서 천기를 살펴보다 제주도 한라산에서 솟아난 ‘소로소천국’이 천상배필임을 직감하고 그를 찾아 제주까지 들어온다. 금백조가 동해 벽랑국의 세 공주처럼 마소와 오곡을 바리바리 싣고 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사냥으로 연명하며 소나 돼지를 통째로 구워먹는 소로소천국으로 하여금 아홉 마지기 밭농사를 권유한다. 삼성신화 속의 해피엔딩과 달리 도대체 농사일에는 관심이 없고 밭갈이 소까지 잡아먹어버린 소로소천국이 어찌나 싫었던지 금백주는 남편과 살림을 갈라서니 제각기 ‘웃손당(윗송당마을)’과 ‘알손당(아랫송당마을)’으로 거처를 마련한 것이 송당마을의 본향당인 ‘백주당’과 ‘소로소천국당’이 된 것이다.

드러나는 이야기의 시작은 비슷하지만 결말은 사뭇 다르다. 그러나 ‘삼성신화’와 ‘송당리본향당본풀이’가 채집과 수렵의 문화와 목축과 농경의 문화 간의 교류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공통점은 확연히 드러난다. 수렵문화라고 해서 풍요롭지 않다고 볼 수는 없지만 목축과 농경만큼 안정적인 식량 확보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삼성신화의 세 공주와 송당마을의 금백주는 농경의 풍요를 바다로부터 가져온 여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이월의 바람할머니 영등신이 바다로부터 풍요를 몰고 오는 것과도 비슷하다.

바다로부터 여신들이 가져온 것이 농경문화를 통한 풍요만은 아니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칠성본풀이에서는 ‘장나라 장설룡’과 ‘송나라 송설룡’ 부부의 딸 칠성아기씨가 무쉐석함을 타고 제주바다로 들어올 때 다른 무엇도 가져온 것이 없다. 단지 뱀으로 변신한 것이 전부이지 않은가. 얼핏 맞는 말이지만 하필이면 칠성아기씨가 징그러운 뱀으로 변신하였는가를 생각하면 이 이야기 또한 앞의 두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칠성아기씨가 어떤 신격으로 좌정했는가를 생각해보라. 한 집안의 재물과 식량을 쌓아두는 고팡(고방)의 ‘부군칠성신’이 되지 않았는가. 부군칠성 또한 곡식과 재물을 지켜주는 ‘곡령(穀靈)’이니 바다로부터 풍요를 가져왔다는 점은 앞선 두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농경의 목적은 당연히 곡식의 생산 아닌가. 곡령의 화신은 칠성아기씨만이 아니다. 그처럼 바다를 건너는 사이 뱀으로 변신해 풍요를 가져온 신은 구좌읍 월정리본향당의 ‘황토고을 황정승 따님애기’, 표선면 토산리 여드렛당의 ‘여드렛또’ 등 여럿이 있다. 특히 여드렛또는 전라도 나주에서 건너온 신으로 구휼미를 보관하는 ‘제민창(濟民倉)’의 곡령에서 비롯되었다. 이렇게 뱀으로 화한 여신 또한 농경의 결실을 보장하는 풍요의 신성인 것이다.

그런데 거센 물살을 넘어온 여신들이 풍요의 전파자로 자리 잡은 것과 달리 한라산에서 솟아난 남신들은 ‘밥도 장군 떡도 장군’이란 별명처럼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식성도 엄청나고 힘도 엄청나지만 풍요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아무래도 여성처럼 아이를 낳는 생명창조의 능력이 없는 탓에 풍요의 신성보다는 괴력을 지닌 사냥의 산신(山神)이 걸맞아 보였던 모양이다. 애초에 양성을 모두 지녔던 하나의 신성이 남녀로 분리되며 자연스럽게 역할이 나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우락부락한 남신들도 바다여행을 다녀온 뒤에 여신 못지않은 권능을 획득하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것이 김녕리의 ‘궤네깃또’이다. 송당마을본향당 부부신의 일곱째 아들인 그는 아버지 소로소천국의 무릎에 앉아 어리광을 부리다 수염을 잡아 뜯은 죄로 무쉐석함에 담긴 채 바다에 내던져지는 과한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는지 동해용궁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요술부채를 얻고 뭍으로 나와 대장군이 되기에 이른다. 궤네깃또만 이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니다. 한라산에서 솟아난 서귀포시 중문동 불목당의 당신(堂神) ‘중문이하로산또’, 송당본향당신 부부의 또 다른 아들 표선면 토산리 웃당의 ‘ᄇᆞ름웃또’, 역시 송당 부부신의 아들 표선면 하천리 본향당의 ‘개로육서또’도 궤네깃또와 똑같은 경험을 통해 신성을 얻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단지 바다 속 용궁을 다녀왔다고 해서 권능을 얻은 것이 아니라 용왕의 사위가 됨으로서 높은 신성을 얻었다는 점이다. 아닌 말로 장가를 제대로 갔기에 벼락출세를 한 것이다. 그렇다. 이들의 등 뒤에는 용왕의 막내딸이 아내라는 든든한 뒷배로 자리 잡고 있다. 결국 남신의 권능 획득 또한 바다의 여신이 조력에 힘입은 결과인 셈이다.

스스로 선택한 남자를 찾아와 풍요의 시대를 열거나 영웅의 기운을 지닌 남자를 위대한 존재로 만들어내는 제주의 여신들을 보면 ‘바다=풍요=여신’이라는 공식을 주장해도 터무니없는 말로 들리지 않는다.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과 여성성으로 대표되는 생명창조력이 격랑을 헤치며 풍요를 가져온 도래의 여신들을 낳은 것이다.

바다를 건너온 여신들은 우리를 향해 ‘바다=풍요=여신’이라는 메시지만 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평등한 화합이야말로 풍요의 원천이라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천상배필을 만나는 것은 애초에 ‘양성구유(兩性具有)’에서 비롯된 신성이 남녀로 분리된 것에서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회귀의 드라마이다. 그렇게 다시 양성을 한 몸을 갖춘 완벽한 존재로 거듭날 때라야 풍요의 신성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제주신화 속 수많은 신들의 결혼은 단순한 ‘사랑의 작대기’가 아니다. 양성구유의 신성을 우리 인간들의 삶을 빌려 극적으로 설명하는 소재인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제주신화 속에서 남과 여가 서로의 요철을 하나로 맞춰 결합하는 사연은 평등과 화합을 뜻한다. 정복과 억압의 불평등이 아니다. 이처럼 신화는 상생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신화가 유용한 이유 중 하나다. 단순한 오락거리의 판타지가 아니다.

구좌읍 김녕리 큰당

이 글을 준비하며 몇 달 전 삼성신화의 탄생지를 찾은 적이 있다. 마을 곳곳에 신공항반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이처럼 고향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절규에는 귀를 닫은 채 탐라 개국신화를 두고 이미 천여 년 전에 물류와 사람이 오가던 곳이 온평리라는 얼토당토않은 언사를 늘어놓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신화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억압과 차별 없는 긍극의 화합을 이루는 것이 신화라고 알고 있다. 내가 틀린 것일까? 만인간이 동등한 풍요를 누리는 세상을 꿈꾸며 바다를 건너온 동해 벽랑국의 세 공주가 그릇된 생각을 가졌던 것인가?

*참고자료

강정식, 제주도 당신본풀이의 전승과 변이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논문

현용준, 무속신화와 문헌신화, 집문당

제주도무속자료사전 개정판,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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