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도로에다 집 주소까지 5·16이냐?”

국민들의 자발적인 탄핵 촛불의 힘이 이제는 ‘적폐청산’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주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퇴진운동과 함께 ‘5·16 도로명’을 개정하자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에서는 ‘박정희 폐단 청산 및 5·16 도로명 변경 국민행동’이라는 페이지가 개설되기도 했다. 이들은 ‘평화의 섬 제주에 516 도로라니 부끄러워 못살쿠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 서귀포에서 진행된 촛불집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거리 서명전과 홍보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개별 SNS를 통해 도로명칭을 바꾸자는 홍보도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와 함께 박정희 군사독재의 잔재를 뿌리 뽑아 제2의 박근혜, 제2의 최순실 막아야 한다’는 홍보 문구까지 등장했다.

      

5·16 박정희 쿠데타 ‘기념도로?’

5·16 도로는 제주시에서 한라산 동쪽 산록 해발 750m를 지나 서귀포시를 잇고 있다.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도로다. 디지털 제주시 문화대전에 따르면 이 도로가 처음 개설된 것은 1932년 한라산을 가로질러 서귀포를 잇는 임도로 개설돼 1943년 지방도로 지정됐다고 한다. 당시 제주시와 서귀포를 잇는 최단거리 도로로 자동차 통행은 불가능했지만 이로 인해 서귀포시와 제주시 주민들의 왕래가 훨씬 편리해졌다는 평가다. 도로는 1963년 2월 6일 국도 11호선으로 지정됐다. ‘5·16 군사 쿠데타’ 때 만들어진 도로라고 해서 ‘5·16 도로’라고 명명됐다.

과정을 더 살펴보면 1956년 당시 건설부 이리 지방 건설국과 제주도에서 이 도로를 정비, 확장하기로 하고 산천단에서 성판악까지 연차적으로 공사가 진행했다. 그러나 이 도로가 본격적으로 정비, 확장되기 시작한 것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였다.디지털 문화대전에는 “군정 도지사였던 김영관 해군소장이 당시 정부의 재정 여건이나 도로 이용 전망으로 볼 때 도저히 국가사업으로 시행할 성격이 아니었지만, 정부 당국과의 절충으로 해결되어 관광 도로로서 가치를 보게 되었다.”고 적시하고 있다. ‘5.16 도로’의 기공식은 1962년 3월 24일 당시 제주도청 앞 공설운동장[현 제주시청 앞]에서 거행되었다.

기공식에는 해군군악대, 의장대, 해병고적대 등이 해군함정에 의해 수송됐고, 당시 국내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송민도·도미·박재란 등이 축하 공연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되면서 2008년 11월 17일 지방도 1131호선으로 변경된 상태다. 

‘박정희 각하’ 새겨진 5·16 도로

2017년 1월 4일 현재, 제주대학교 사거리에서 서귀포방면으로 조금 가다보면 오른쪽 길모퉁이에 도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자로 五一六道路(오일육도로)라고 정면과 옆면에서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세월에 따라 희미해지긴 했지만  ‘題子 朴正熙 大統領 閣下 西紀 1967年 3月 建立 (박정희 대통령 각하 서기 1967년 3월 건립)’이라고 표기돼 있다.

최근에는 박근혜 퇴진 촛불 바람을 타고 누군가가 ‘독재자’라는 글씨를 덧칠하는 등 일부가 훼손된 적도 있다. 한라산을 관통하는 도로명칭과 함께 도로주소명에도 ‘516로’가 등장한다. 대략 700세대의 주소명에 516로가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5년 전 제주로 이주해 온 A씨(46, 제주시)는 신주소로 변경되면서 각종 우편물에 ‘516로’라고 표기되어 오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눈치다. A씨는 “516로라는 신주소를 갖게 되면서 거주지가 독재자의 기억을 항상 간직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몇 년 전 행정에도 명칭 변경을 건의했지만 행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10년에도 ‘516도로’ 명칭 등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당시 제주도는 도민여론조사 등을 이유로 바꾸지 않았다. 당시 제주도는 ‘좋은 역사든 나쁜 역사든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면서 516이라는 도로명칭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었다.

일부 시민단체들도 명칭 변경운동을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이 거리서명운동 등에 나서면서 다소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이들은 1만명 제주도민 서명을 받아 제주도에서 도로명칭 변경을 청원한다는 계획이다. 거리서명운동과 함께 소셜미디어 홍보 등을 통해서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여론의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실제 서귀포신문이 최근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 516도로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87.3%로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는 의견은 10.2%에 머물렀다. 제주 출신 위성곤, 오영훈 국회의원 역시 516도로 명칭 변경에 찬성하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출처=516도로명 변경 국민행동 페이스북 사진

‘성판악로’, ‘한라산로’ 등 도로명 어떻게 바꿀 수 있나?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도로 명칭’이 변경된 사례가 있다. 2006년 제주도는 서부관광도로를 ‘평화로’로, 동부관광도로를 ‘번영로’로 변경했다. 제주도는 제주발전연구원의 도로명칭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제주도 도정조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2006년 7월 19일 도로명칭을 변경한 것이다.

도로명 주소 변경의 경우 도로명주소법 시행령에 따라 주소사용자의 5분의 1 이상이 동의하는 경우 그 주소 사용자는 행정기관에 도로명의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현행 제주특별자치도 도로명주소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도로명주소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쳐 가능하다.

 도로명주소위원회는 지난해 6월, 제주시 연동 '바오젠거리' 명칭을 2019년까지 3년 더 연장하는 안을 결정하기도 했다.

현재 페이스북상에서 ‘516도로명’에 대한 폐지여론과 함께 새로운 이름 짓기도 한창이다. ‘성판악로’, ‘한라산로’, ‘탐라로’, ‘백록로’ 등으로 바꾸자는 제안들이 나오고 있다.

제주주민자치연대 관계자는 “도로명칭 변경과 도로명주소 변경 과정이 절차적으로 쉽지는 않지만 평화로 등의 변경 과정 등을 보면 행정당국의 노력에 따라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명칭변경에 대한 도민적 여론을 모으고 행정이 이러한 도민들의 뜻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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