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대란에 휩싸인 제주도. 이대로 가다가는 섬의 곳곳이 쓰레기로 채워질 판이다. 모두가 고심하지만 딱 맞는 답을 찾지 못하는 지금, 쓰레기 정책이 짚지 못 한 '제주도 쓰레기 대란의 근본 문제'를 하나씩 짚어본다. -편집자주]

1995년 종량제 시행 때도 도민저항은 만만찮았다. 쓰레기를 버리며 값을 지불한다는 데 반발이 이어졌다. 몇몇 시민들은 야산에 쓰레기를 투척하기도 했다. 행정은 공론화 과정을 빼놓고 정책을 시행했다. 얼마 되지 않아 쓰레기량이 줄었다고 언론에 알렸다. 한참을 행정과 시민은 씨름했고, 결국 정책은 안착 됐지만 ‘밀어붙이기 행정’에 대한 시민 불만은 두터워졌다. 20년 전, 그때와 같은 상황이 지금 다시 벌어지고 있다.

*행정의 '독단'으로 채워진 요일별 배출제의 ‘밑그림’.

지난해 7월 제주발전연구원(제발연)은 ‘클린하우스 도입효과 분석 및 운영개선방안’ 정책연구를 내놨다. 2006년부터 시행된 클린하우스 정책을 돌아보고 문제점을 진단, 새로운 정책 제안을 내놓은 연구자료다.

여기서 연구진은 4차 도민의견 조사(2006, 2009, 2010년 3차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제주도 전역의 35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항목에는 '쓰레기 배출시간 및 요일의 제한'이 등장한다. 응답자의 62%가 ‘시민들의 편리성을 제한하는 필요성’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즉, 반대의견이 우세했지만 연구진은 “클린하우스 운운영상 발생한 문제점 보완을 위한 단기과제로 ‘쓰레기 배출 시간 및 종류별 배출요일의 제도도입이 필요하다'고 사료됨”이라고 정책제언을 남겼다. 해당 연구용역을 맡은 연구진 중 한 명은 제주도청 공무원이다.

쓰레기 요일별 배출제가 시행되기 5달 전 제주발전연구원(2016.07)이 내놓은 '클린하우스 도입효과 분석 및 운영개선방안'에는 도민의견조사에 '요일별 배출제 필요성'에 대한 도민 의견을 묻는 질문이 포함됐다. 응답자의 62%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지만, 연구진은 요일별 배출제가 필요하다는 정책제언을 남겼다. @변상희 기자

제발연이 클린하우스 정책연구를 내놓은 한 달 뒤 제주시는 '범시민 쓰레기 줄이기 100인 추진위원회'를 모집한다. 9월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100인 위원회가 위촉장을 받던 날, 제주시는 위원들에게 ‘일본의 쓰레기 요일별 배출제’ 관련 동영상을 튼다.

그동안 쓰레기 정책 관련 참고 내용으로 ‘흘려지나가는 이야기처럼’ 나오던 쓰레기 요일별 배출제가 전면으로 나온 순간이다. 참석했던 한 위원은 “그때 처음, 행정에서 이 정책을 시행하려고 하는 구나 짐작했다.”고 전했다.

제주시 관계자에 따르면 쓰레기 요일별 배출제가 처음 검토되던 때는 100인 위원회 결성 이후다. 9월초부터 검토를 시작해 제주도와 협의를 거쳐 10월 초 정책을 마련했다는 얘기다.

제주시 관계자는 “일본과 독일의 선진 사례를 충분히 검토했다. 시범운영을 거치면서 정책의 단점을 보완하고 시행해도 된다는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20년만의 쓰레기 정책 ‘대전환’은 지난해 9월부터 10월, 한 달 사이에 결정됐고, 이후 두 달 후인 12월에 바로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그 밑그림에는 제발연이 7월 내놓은 ‘클린하우스 도입효과 분석 및 운영개선방안’도 있다.

연구자료가 나온 7월 이후 정책 시행은 불과 5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전문가와 시민’의 의견 수렴, 공론화 과정은 그렇게 빠졌고 행정은 ‘칼을 뺐으면 밀어붙여야 한다’는 식이다. 급급한 정책 시행이 도민 저항을 불러온 건 당연했다.

*행정 편의성만 고려... ‘환경 민주주의의 실종’

쓰레기 요일별 배출제는 여러 면에서 도민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왜’ 시민만 불편해야 하는가, ‘어떻게’ 이런 정책이 나왔나, ‘언제’ 정책을 공론화 했는가, ‘무엇을’ 위한 정책인가.

도민을 설득할 이 모든 ‘핵심사항’들이 빠지면서 ‘당위성’은 실종됐고 ‘도민공감대’는 얻지 못 했다. 행정이 이제와 ‘시민과 함께 호흡을 맞춰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호소해도 도민이 외면하는 이유다.

김정도 정책팀장(제주환경운동연합)은 “이번 정책의 경우 전문가집단, 시민사회단체에 자문을 구하지 않은 것은 물론, 시민의 의견도 빠졌다.”면서 “행정에서 내부적으로 자기들끼리 정책을 추진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행정이 이번 정책의 핵심구호로 내세운 건 ‘1인 쓰레기 발생량’이다. 쓰레기 총량 증가의 원인을 분석하기 이전, 총량이 이만큼 늘었는데 도민 인구수로 나눠보니 1인 발생량이 이렇다, 였다. 시민들은 알지 못할 ‘죄책감’을 느껴야 했고, 때문에 행정이 추진하는 정책에 ‘따라야만 하는’ 수동적 상황에 놓였다.

행정이 쓰레기 요일별 배출제를 시행한 뒤 도민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6일 '쓰레기 정책에 분노하는 시민모임'은 기자회견을 갖고 도민저항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히는 등 행정과 시민간 갈등이 짙어지고 있다. @변상희 기자

서영표 교수(제주대학교 사회학과)는 “쓰레기 문제가 불거진 데는 여러 원인이 있는데 행정이 전체적 상황을 짚지 못하고 드러난 문제만을 잘라내고 있다.”면서 “거꾸로 제주도와 행정시의 정책적 역량이 깊지 못한 것이 이번 정책 결정과정에서 드러난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제주도와 시민의 상호교류, 상호발전 과정은 빠진 채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일방적인 정책 추진은 문제.”라며 “이번 행정의 모습을 분석하는 데 쟁점은, 환경민주주의가 빠졌다는 것. 전체 도민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정책에서 ‘절차적 문제’의 결여는 심각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환경민주주의는 공적인 환경법 제정을 감독, 지원할 수 있게 시민들을 주체로 세운다. 좀 더 멀리 보는 시각으로, 시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관련 정책에 행정의 독단을 경계하는 것이다. 여기엔 행정과 시민의 긴밀한 상호교류과정이 뒤따라야 하며, 정확한 문제의 진단과 발전적 해결방향 설정도 ‘함께’하게 된다.

반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도민 삶에 직결되는 ‘쓰레기 정책’의 대전환에 행정은 이 ‘환경민주주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행정의 수고를 덜고, 시민의 불편만 가중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서영표 교수는 “이번 정책이 범도민적 관심사가 된 것은 전 도민이 일상에서 매일 부딪히는 문제이기 때문. 행정의 이런 일방적 정책결정과정은, 이미 강정과 제2공항 등의 사례에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다.”며 “정책결정과정에서 드러난 행정의 문제를 계속 둘 경우 결국 그 갈등은 반복될 것이고 그 사회적 비용도 만만찮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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