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오(희곡작가)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해묵은 속담이 있다.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은 여성이란 그만큼 독한 존재라는 의미로 풀이한다. 그러나 이 속담의 배후에는 여성을 억압하는 오래된 관습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억울한 사정에 처했어도 그것을 풀지 못한다면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고 한들 한이 맺히지 않겠는가. 제주여성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제주여성의 억척스럽고 부지런함을 빗댄 속담인 “오름의 돌광 지새어멍은 둥글당도 사를 매 난다.” 또한 생업의 조건과 남성본위의 사회가 만들어낸 관념이다. 차별 없이 개화된 사회에서 산다는 요즘 사람들. 우리 대부분이 세상의 절반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미 우리의 문화유전자에는 남성우월주의를 비롯한 여러 가지 차별이 대못처럼 단단하게 박혀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제주의 옛이야기 속에는 통한의 삶을 살다간 여인들의 울음이 깊이 잠복해있다. 고난과 역경을 뚫고 거룩한 신성의 반열에 오른 여신들과 달리 이들의 사연은 죽음보다 더 가혹한 삶의 연속이었다. 제주의 역사와 현실에 대입해보면 우리의 어머니와 누이들이 그런 삶의 질곡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온 것 같다. 그 때문인지 “살암시민 살아진다.”는 체념 섞인 넋두리만큼 포한이 담긴 말도 없다.

제주의 신화 속에서 가장 불행한 여신을 손꼽는다면 ‘지장아기씨’가 첫 번째일 것이다. 경쾌한 굿거리장단에 맞춰 애수 섞인 목소리로 읊조리는 지장본풀이는 노랫말만 빼면 너무나 감미로운 멜로디로 사람을 잡아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아름다운 멜로디를 타고 들려오는 노랫말은 죽음의 연속이다. 제주의 전설적인 심방 중 한 사람인 고(故) 안사인 심방의 부른 지장본풀이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남산과 여산 부부가 자식이 없어 불공 끝에 지장아기씨가 태어난다. 가혹한 운명을 타고났는지 네 살 때 조부모가 죽고, 다섯 살 때 아버지, 여섯 살 때 어머니가 차례로 죽는다. 사고무친이 된 지장은 외삼촌의 수양딸로 간다. 외삼촌의 극심한 구박을 당하면서도 지장은 옥황의 부엉새의 보살핌 아래 곱게 성장해 열다섯 살에 ‘서수왕 문수의 아들’에게 시집을 간다. 그러나 그 이듬해부터 시조부모,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이 한해에 한 사람씩 차례로 죽는다. 결국 시누이들의 원망을 받아 시집에서 쫓겨난다. 오갈 곳이 없던 지장은 주천강 연화못에서 만난 대사에게 자신의 사주팔자에 대한 이야기와 죽은 이들을 위한 ‘새남굿’을 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하여 지장은 누에를 쳐서 천을 만들고, 스님처럼 탁발을 해 쌀을 모은 뒤 새남굿을 펼친다. 저승길에 앞세운 일가의 새남굿을 한 뒤에도 나날이 좋은 일을 많이 한 지장이 정명이 다해 죽는 순간 머리에서는 두통새, 눈으로 흘그새, 입에서는 헤말림, 가슴에선 이열새, 오금에서는 조작새 등이 생겨나며 새의 몸으로 변신한다. 그리하여 이 새들은 사람들의 몸에 접신해 재앙과 질병을 불러일으키는 신이 되었다. 때문에 제주에서는 굿을 할 때면 지장의 원혼을 달래는 한편 내쫓는 것을 함께 하는 것이다.

워낙 제주의 신화란 것이 구전되는 탓에 심방(무당)에 따라서는 지장아기씨가 아닌 다른 여인이 삿된 액을 뜻하는 ‘새(邪)’의 몸으로 환생했다고도 하는데 그 주인공은 ‘세경본풀이’에 등장하는 ‘서수왕따님애기’이다. 그는 남자로 위장한 자청비와 결혼했다가 홀몸이 되자 죽음을 택하고 새의 몸으로 환생했다고 한다.

사체화생(死體化生)의 변신을 통해 새(邪)로 환생한 주인공이 지장아기씨이건 서수왕따님애기이건 간에 둘 다 한 맺힌 삶을 살다간 건 마찬가지다.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는데 제주의 굿에서는 삿된 새(邪)로 환생해 병마와 재앙을 일으키는 존재가 되었다고 여겨 내쫓김을 당하는 애꿎은 신세가 되고만 것으로 보인다. 제주의 굿에는 ‘새풀이’라고 불리는 과정이 있는데 단골(신앙민)의 몸에 깃든 새(邪)를 구축(驅逐)한다. 지장본풀이가 지장아기씨의 사연이라면 새풀이는 서수왕따님애기의 사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과정을 언뜻 보면 격렬한 푸닥거리로 몰아내는 것처럼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지장아기씨나 서수왕 따님애기나 한이 맺혀 죽은 원령이므로 자손들의 대접을 받아 맺힌 한을 풀고 가는 길에 횡액을 모두 걷어가라는 의미를 이면에 감추고 있다. 비운의 존재로 하여금 더 이상 나쁜 일이 생기지 않게 모든 액을 거두어 달라는 것이 새(邪)를 달래며 내보내는 의식인 셈이다.

두 여인의 한 맺힌 환생을 현실의 제주여성에 대입해보면 남편과 자식을 저승길에 앞세우고 밤낮없이 일을 해도 변변한 대접조차 못 받고 평생을 살아야했던 수많은 어머니들의 모습이 판박이처럼 닮았음을 느끼게 된다. 그 때문인지 제주의 굿에서 지장본풀이가 불리는 대목을 가만히 지켜보면 굿을 청한 본주 또는 단골의 입장을 지장아기씨에 대입시켜 가슴에 묻어둔 한을 풀어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것은 지장본풀이의 후반부에서 지장아기씨가 누에를 치고, 쌀을 찧어 죽어간 일가친척의 영혼을 천도했다는 사연에 뿌리를 둔 것이다. 제주에서는 한 집안에서 굿을 마련할 때 주로 여성단골이 모든 책임을 맡기 때문에 그 굿을 청해 판을 열 때까지 가슴에 쌓아온 한이 지장아기씨의 인생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지장아기씨처럼, 서수왕 따님애기처럼 새로 환생한 여신과 달리 한 집안의 딸로 태어났지만 원통한 죽음을 당해 그 집안의 조상신이 된 여인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예촌(지금의 남원읍 신예리, 하례리 일대)의 ‘양씨아미’와 조천읍 와산리의 ‘양씨아미’이다. 와산리 양씨아미는 묘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실존인물로 보이는데 두 여인의 인생역정은 한 사람의 삶처럼 일치한다. 무병에 걸렸지만 일가의 반대로 죽음에 이르는 사연을 품은 두 사람의 사연 중에서 와산리 양씨아미의 사연을 간추려보기로 한다.

조천읍 와산리에 살던 큰부자 집의 사남매 중 막내외동딸로 태어난 양씨아미는 예닐곱 살 적부터 무당(심방)소리를 곧잘 하는 등 심방이 될 만한 자질을 지니며 자라났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치른 ‘전새남굿’이 끝나기 무섭게 그 굿을 맡았던 김씨 심방을 따라나선다. 그러나 김씨는 양씨아미를 달래며 돌려보낸다.

이에 양씨아미는 한라산 깊숙이 들어가 억새꽃을 뽑아 미친 듯이 춤추며 혼자서 무당수업을 이어간다. 종적이 묘연한 여동생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오라비들은 ‘물장오리’ 근처에서 양씨아미를 발견해 집으로 데리고 와서 방안에 가둬버린다. 양반의 집안에 무당이 생겨나는 것은 가문의 수치라며 큰 오라비는 물 한 모금도 먹이지 않으며 완강히 버텼고, 둘째와 셋째 오라비가 남몰래 먹을 것을 넣어주며 연명하게 한다.

방안에 가둬진 채 힘겨운 나날을 보내며 질긴 목숨을 이어가던 양씨아미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완고한 큰 오라비는 끝내 무당질을 못하게 만들 심산으로 신병(神病)에 부정을 일으키는 개고기 삶은 물을 대령해 양씨아미를 목욕시킨다. 그로 인해 양씨아미는 양팔로 무릎을 감싼 채 쪼그려 앉아 죽고 만다. 둘째와 셋째 오라비가 시신을 수습해 정성껏 안장시켜준다.

저승길을 떠나 서천꽃밭에 다다른 양씨아미는 ‘꽃감관 사라도령’으로부터 부정을 탄 몸이니 나가라는 통보를 받는다. 이승도 저승도 못 가고 중음신을 떠돌던 양씨아미는 자손들 집안의 굿을 받아먹으러 길을 나선 ‘고전적’의 영혼과 동행해 이승으로 온다.

어렵사리 이승의 굿판까지 오게 된 양씨아미였건만 이승사람들은 그의 혼백을 위한 어떤 준비도 않은 터였다. 이에 양씨아미는 셋째 오라비의 딸의 몸에 빙의해 둘째와 셋째 오라비 집안에서 자신을 잘 모시면 가문이 번창하게 해주겠다는 말을 남긴다. 이와 같은 내력으로 둘째와 셋째 오라비 집안에서는 양씨아미를 조상신으로 모시고 치르는 ‘동이풀이’라는 굿을 대대로 이어오기에 이르렀다. ‘동이풀이’는 쪼그려 앉은 채로 죽은 양씨아미의 시신이 마치 조그만 물동이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굿을 할 때면 댓가지를 꽂은 커다란 술병을 쌀이 가득 담긴 청동화로에 심어놓고는 그 위에 치마저고리를 입혀 물동이처럼 쪼그린 채 죽은 양씨아미의 모습처럼 만들어 모신다.

양씨아미처럼 억울하게 죽은 여인이 신의 지위에 오르는 사례는 여럿이다. 그 중에는 조천읍 신흥리 ‘볼레낭당’의 ‘박씨일월’이나 성산읍 신천리 ‘현씨일월당’의 ‘현씨일월’은 한 집안을 넘어서서 마을의 당신(堂神)으로 신앙권이 확대된 경우이다. 특히 현씨일월은 양씨아미와 매우 비슷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양반의 집안에서 태어난 현씨 일월은 어려서부터 병치레를 반복하며 힘겹게 자라났다. 하지만 열다섯 살에 이르자 크게 신병(神病)을 앓게 되었다. 생사를 오가며 정신을 놓는 이 병은 열아홉 살까지 이어졌다. 현씨일월이 살아나는 길은 애오라지 심방이 되는 길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지만 양반가문인 탓에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누이동생을 딱하게 여긴 두 오라비가 남몰래 무복(巫服)과 무구(巫具)를 구하러 육지를 향해 배를 띄웠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바다에서 실종되고 만다.

하루같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연뒤(연대)에 올라 학수고대하던 현씨일월은 두 오라비의 실종소식을 듣게 되자 연뒤 아래 바다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고 만다. 그 뒤로 현씨 집안에서 현씨일월을 불쌍히 여겨 조상신으로 섬기기 시작했는데 나날이 가문이 번창하며 부자가 되어갔다. 이들의 사연을 알게 된 이 마을사람들도 현씨일월을 영험하다고 여겨 하나둘씩 모시기 시작한 것이 마침내 신천마을의 본향당신이 되었다고 한다. 현씨일월당은 은 음력 9월 8일, 18일, 28일에 치성을 드리는데 이는 초공본풀이를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된 현씨일월이 심방이 되려하다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당제일(堂祭日)을 초공본풀이의 주인공이며 무당들의 조상신인 ‘젯부기 삼형제’의 생일에 맞춘 것이다.

지장아기씨에서 현씨일월에 이르기까지 비운의 삶을 살다간 여신들의 사연은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남성중심의 가부장주의가 몰고 온 파국의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양씨아미나 현씨일월의 사연 속에는 가부장주의와 함께 계급적 차별의식도 깊게 담겨 있다. 양반의 나라라고 일컫던 조선은 ‘칠반공천(七般公賤)’과 ‘팔반사천(八般私賤)’이라고 해서 여러 분야에 걸쳐 최하층의 천민을 두었는데 무당이 팔반사천 가운데 하나였다. 가부장주의의 가장 큰 피억압자인 여성이면서 계급사회의 최하층민인 무당이 되어야했던 이 여인들의 삶보다 더 처참한 경우가 있었겠는가. 이들의 죽음은 자살이나 병사(病死)가 아니라 사회적 살인이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사회적 살인에 대한 반성이 이 여인들을 신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자살공화국의 오명을 듣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어떤가? 단순히 처지를 비관하거나 실연을 당해서 자살한 죽음일 뿐이라는 드러나는 현상의 해석에만 머문 자살방지대책을 내놓는다. 많은 이들의 죽음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이 사회의 억압구조를 개선할 생각은 좀체 하지 않는다. 원인 처방 없는 대책은 사회적 살인인 자살을 방치할 뿐이다. 이따금씩 찾아가는 현씨일월당의 신목(神木)에 입혀놓은 색동치마저고리를 볼 때면 오늘날의 사회적 살인은 어떻게 위무(慰撫)받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참고자료

김헌선, 제주도 조상신본풀이연구, 보고사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개정판, 각

진성기,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민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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