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 왕이 고민에 빠졌다. 국경을 침범하여 계속 시비를 걸어오는 이웃나라 때문이다.

‘맞서 싸울 것인가, 아니면 참고 땅을 떼어 줄 것인가’.

국왕은 이리 저리 궁리 끝에 아폴로 신전의 무녀를 불렀다. 점을 치기 위해서였다.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국왕의 질문에 무녀는 망설임 없이 대뜸 대답했다.

“전쟁나면 이길 것”이라 예언 했다.

국왕은 곧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대패였다.

국왕은 만신창이 몸으로 무녀를 불렀다. 엄하게 다스려 사형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무녀는 조금도 두려움이 없었다.

하는 말이 “전쟁이 나면 이긴다고 했지 어느 쪽이 이긴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는 당당한 항변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루이 11세는 불길한 변설로 백성을 미혹시키는 예언자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불러 들였다.

“너는 그렇게 사람의 운수를 잘 아느냐, 그렇다면 네가 언제 죽을지도 알겠구나”.

예언자는 대답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 돌아가시기 3일전에 제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 합니다”.

‘예언자를 죽이면 3일 후에 루이 11세도 죽을 것’이라는 겁나는 예언이었다.

루이 11세는 씁쓸했지만 예언자의 사형집행을 중지 할 수밖에 없었다. 사형을 집행했다가 자신도 3일 후에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겠는가.

앞의 그리스 신화는 점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뒤의 이야기는 점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점에 빠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의 본성을 꼬집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매해 연말연시에는 문전성시를 이루는 업종이 있다. 뭉뚱그려 ‘점(占)집’이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새해에는 좀 나아지려나?, 노처녀 노총각은 천생배필을 만날 수 있을까?, 자식의 대학 진학이나 취업여부, 정치인들은 정치적 명운을 점치기 위해 점집을 드나든다.

추정치로 이야기되는 국내 운세시장 규모는 연간 1조원 대를 훨씬 넘는다고 한다.

역술인 협회 등록 역술인 수가 10만여명, 경신(敬信)연합회 회원 무속인 역시 10만명은 족히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다 점을 쳐주는 전문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증가하고 휴대전화와 인터넷 운세 사이트 온라인 점도 유행하고 있다. 그야말로 ‘점치는 사회’다.

국민 절반 이상이 1년에 한두 번 점집과 무당을 찾거나 사주팔자나 길흉화복을 알아보기 위해 역술인을 찾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정초의 ‘토정비결 보기’는 당연히 거치는 통과의례 수순이다.

‘심심풀이’로 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불확실성의 미래를 미리 알아보려는 불안 심리의 표출이다.

정치 경제 사회적 갈등과 불안 심리를 덜어내고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해 점집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도 있다.

불확실성의 미래에 대한 불안한 사회심리 현상이, 어려운 처지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나약한 심리상태가, 점집을 드나들게 한다는 설명이다.

점집이 불안심리 탈출구 역할을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점치는 사회’를 ‘미신 사회’로 폄하해서 우려와 경고를 보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재미와 호기심을 넘어 점에 빠져들다가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망상에 사로잡혀 정상적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경고인 것이다.

물론 사주팔자나 관상·손금 등 길흉화복을 점치는 역술은 수 천 년에 걸쳐 내려오는 통계학적 방법론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그룹도 있다.

주역(周易)의 원리에 의해 사람의 성격과 적성, 체질 등을 연구해 생활에 도움을 주는 학문으로서 무조건 비과학적이거나 미신으로 몰아가서는 곤란하다는 반론이다.

점(운세)보기를 미신으로 배척하거나 통계학적 학문으로 옹호하거나 그것에 대한 찬반의견은 다양성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현실을 왜곡시키고 망상의 세계에 끌려 정신건강을 혼미하게 하는 것을 경계하고자 함이다.

재미삼아 호기심에서 한 두 번 하는 것과 탐닉하여 온통 운명을 점에 맡기는 일은 차원이 다른 현상이다.

불안이 지나쳐 혼란을 부르고 그것이 자라서 공동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일이어서 그렇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서 사회일반이 그렇고, 정치권은 미증유의 혼돈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다.

미리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인용을 점치기라도 하듯이 정치권이 조기 대선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여부에 관계없이 정치권이 탄핵 인용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은 법을 유린하는 것이며 헌재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며 압박이다.

헌재와 정치권이 뒤에서 미리 짜고 탄핵인용 결정 약속을 한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면 헌법의 신성에 대한 반역이다.

이러한 음모론 적 시각에 관계없이 조기대선 프레임은 전국 유명 점집에 대통령 출마 예비후보 쪽 발걸음이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정철학 비전 제시와 자격과 자질 능력 검증보다는 정치적 명운을 점집에 거는 대통령 후보, 모순어법을 동원하자면 ‘웃기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언제 있을지 모를 대통령 선거와 관련 그들이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점괘를 묻는다면 ‘아폴로 신전의 무녀’라면 분명하게 예언 할 것이다. ‘당선 된다’고.

누가 당선되든 당선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조기 대선 구도를 즐기는 정치권과 예비대선 후보들의 점집 순방을 겨냥한 패러디다.

‘점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점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점에 매달리는 것은 ‘불확실한 것을 잡기위해 확실한 것을 던져버리는 도박’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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