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식민지 마르티니크 출신인 프란츠 파농(1925-1961)이 1952년에 출간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백인이 되고자 하는 흑인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파농은 식민 지배를 받는 자들이 오히려 식민지-제국의 일원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욕망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흑인이지만 스스로를 백인이라고 생각하는 피식민지 지식인들의 허위 의식을 분석하면서 파농이 내리는 결론은 이렇다.

유색인인 나는 단 한가지를 원할 뿐이다. 결코 도구가 인간을 지배하지 않기를, 인간이 인간을, 말하자면 자아가 타자를 노예화하는 일을 그만두기를, 인간이 어디에 있든, 내가 그 인간을 찾고 원하도록 허락되기를.

파농의 이 같은 발언은 흑인(야만)/백인(문명)이라는 도식화를 거부하면서 철저히 백인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스스로 문명인이 되고자 하는 흑인의 욕망도, 백인에 대한 저항으로서 흑인성을 부각하는 증오의 정치학 모두를 문제삼는다. 체제 안의 상상이 아닌 체제 밖을 지향하며 진정한 인간 해방의 길을 모색한 파농의 시도는 이후 흑인 민권 운동과 탈식민주의적 사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원희룡 지사가 2일 제주시, 서귀포시를 방문했다. 도지사의 행정시 방문은 연례 행사이다. 이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지사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 주목할 것은 "제주도는 모든 것을 선거와 연관시키려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원희룡 지사의 "제주도는 ..." 운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지난해 12월 열린 직원 정례 조회에서도 쓰레기 요일제 배출제를 언급하면서 "쓰레기 문제는 도민 의식 개선 외엔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일면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발언이지만 반복되는 이러한 화법은 원희룡 지사의 의식을 무의식 중에 보여준다. 프로이트는 실언이 단순히 그 사람의 실수가 아니라 무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프로이트의 분석을 따르면 "제주도는..." 이라는 화법은 제주를 바라보는 원희룡 지사의 무의식이 은연중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원희룡 지사는 스스로 납득하기 힘든, 혹은 불편한 심기를 토로할 때 이런 화법을 구사한다. 이는 제주/육지를 도식화하는 태도다. '이곳'과 '저곳'을 구분하면서 스스로를 논평자의 위치로 세우면서  "제주도는..."이라는 발언을 구사한다. 국회의원 3선, 여당 사무총장까지 지낸, 그야말로 육지에서 '잘 나가던 정치인' 원희룡 지사가 보기에 제주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곳'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파농이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하얀 가면을 쓰고 싶어하는 검은 피부의 허위 의식이자 인정 욕망의 발현이다. 임기 초기 제주도의회와 예산전쟁을 치를 때에도, 지역 언론의 집요한 질문에도, 원 지사는 불편한 듯 '제주는...'이라는 발언으로 자신의 심기를 노출했다. 이는  제주는 정치적 후진성을 지닌 지역이고, 대한민국 정치 일번지에서 '잘 나가던' 자신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다는 푸념을 무의식 속에 드러낸다.

최고 학벌에, 최고 스펙을 지닌 지사가 보기에 제주도의회 의원들이나, 기자들은 '학벌'도 '스펙'도 별볼일 없는 그야말로 '듣보잡'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듣보잡'들이야말로 원 지사가 제주를 떠나 있을 동안, 제주 사회에서 스스로의 자산을 키우고, 경쟁하며 살아온 이 땅의 주인이다. 원 지사가 보기에 온갖 토호와 기득권이 난무하는 별 볼일 없는 땅이라도 그 땅에서 현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지사가 함께 성취해야할 제주의 미래를 만들기 위한 파트너이다.

그런데 틈만나면 "제주는...'이라면서 마치 제주가 다른 지역과 다른 '이상한 별천지'같다는 인식을 도백이 보이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도의적으로 옳지 않다. 그렇게 제주가 이해하기 힘들다면 지금이라도 지사직을 내던지고 원 지사가 그토록 가고 싶어하던 서울로 가면 그 뿐이다. 그럼에도 이 땅에서 미래를 찾고 싶다면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가면>을 일독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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