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1862년에 발표했던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이다.

투르게네프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3대 문인으로 꼽히는 거장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격변기 러시아의 세대 간 갈등과 사상적 갈등을 세밀한 관찰력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수와 진보간의 사상적 갈등을 난해한 이념의 싸움이 아닌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라는 보편적 관계에서의 갈등으로 풀어내어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지주들, 공허한 이론으로만 사회개혁을 뽐내는 지식인들, 자유의 대가로 빚쟁이가 되어 가난과 술에 찌든 농민들, 그리고 일체의 권위를 부정하며 도전하는 거칠고 완강한 급진적 젊은 세대사이의 긴장과 갈등과 애증을 엮어냈다.

윈스턴 처칠은 일찍이 ‘20대에 진보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40대에 보수가 아니면 뇌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세대 간 이념적 갈등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있게 마련이고 인류가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인 것이다.

세대간, 계층 간, 이념적 갈등이 휘몰아쳤던 19세기 러시아의 격변기적 시대상황이 21세기 한국사회에 재연되고 있어서 인용해보는 것이다.

작금에 대통령 탄핵으로 야기된 찬반갈등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하다.

‘촛불’과 ‘태극기’ 물결로 갈라진 기세싸움은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우선멈춤’을 무시하고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 같다.

최근 제주에서도 탄핵과 관련해 ‘아버지와 아들’간 미묘하게 흐르는 심리적 갈등이 화제가 되고 있다.

신구범 전 제주지사와 판사출신인 그의 아들 신용인교수(제주대 로스클) 이야기다.

신 전 지사는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이날 제주시 조천 만세동산 기념관에서 열렸던 어느 보수단체의 시국강연회 연설을 통해서다.

신전지사는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민주당 소속이었다. 그래서 그의 탄핵 반대 입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야기 거리다.

신전지사는 지난해 12월15일 민주당에 탈당계를 냈다. 탈당계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이후 더민주당의 점령군 행태에 실망 한다‘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박근혜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가결이 더불어 민주당 탈당이유였고 탄핵반대에 동참하게 된 원인이었다.

신 전지사는 시국강연에서 “탄핵사태에 많은 고민을 했다. 이는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다. 내 아들이 헌법을 가르치는 로 스클 교수인데 아들에게 물어보니 법률적으로는 탄핵사유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촛불 민심 때문에 ‘탄핵 될 것’이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아버지가 촛불 반대편에서면 제주를 떠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느 편에 서야 할지 힘 들었다“고 했다.

결국 진실과 거짓 중에서 진실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탄핵 반대’ 입장의 논리가 그렇다.

‘촛불 민심은 종북 세력’, ‘5.16은 혁명’, ‘박정희는 위대한 지도자’, '전두환 존경‘, ’박근혜 대통령 심정 이해‘ 등 등 반대 그룹 등에서 비판 받을 수 있는 소지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강연 내용에 대한 거칠고 팍팍한 비판과 비난이 없지도 않았다.

이 같은 논란이 일자 그의 아들인 신용인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 북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자유 법치사회 회복을 위한 시국강연회에서 이뤄진 아버지 강연으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픔니다.

무엇보다도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때 아버지를 동지로 믿고 아버지 당선을 위해 애 쓰셨던 분들이 정말 힘드실 것 같습니다.

그분들께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산전수전 다 겪고 확고한 삶의 철학과 소신을 가진 아버지의 시국 강연에 대해 아들이 사과하는 것이 온당한지 아닌지 여부는 사람마다 판단하기 나름이다.

아들의 잘못에 대해 아버지가 대신해 용서를 구할 수도 있고 아버지의 잘못에 아들이 사과 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신전지사의 강연은 그의 정치적 이념적 철학적 소신의 피력이다. 아들이 석고대죄 심정으로 사과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소신을 밝히는 아버지 발언을 아들이 군중심리에 편승하여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아버지를 상대로 비판적 시각을 내 비친 것이라면 슬픈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 세대와 아들세대간 가슴 아픈 심리적 협곡을 보는 것 갗아 여간 씁쓸하지가 않다.

아버지 신 전지사의 말대로라면 헌법을 가르치는 로 스클 신용인교수는 “법률적으로 탄핵사유가 아니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촛불 민심 때문에 탄핵 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세상에, 법을 가르치는 법학교수가 ‘탄핵은 법률보다는 선동적 촛불민심이나 군중심리가 좌지우지 한다’는 황당한 논리를 편 것이 아닌가.

촛불민심이 있다면 태극기 민심도 있지 않는가. 촛불민심으로 탄핵을 한다면 태극기 민심으로 탄핵을 기각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헌법재판소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법은 왜 필요하고 사법부는 왜 필요한가.

헌법적 가치를 무너뜨리고 법치주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극단적 탈법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법학교수의 발언으로는 부적절 하다.

‘아버지의 소신을 대중영합 주의적 시류에 팔아먹는 패륜‘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입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신을 말할 수 있다. 그것이 표현의 자유이며 사상의 자유며 양심의 자유 영역이다.

법이 보장하는 헌법적 가치며 민주주의의 가치인 것이다.

모든 갈등구조는 신뢰의 상실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신뢰의 위가가 갈등의 원인인 것이다.

남을 인정하지 못하는 옹졸함과 이기주의적 용열함이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분열시키는 것이다.

탄핵을 놓고 벌이는 ‘촛불’과 ‘태극기’의 갈등도 그렇다. 너는 그르고 나만 옳다거나 내편은 동지고 네 편은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운 겨울 거리에서 악다구니로 싸울 일은 아닌 것이다. 탄핵 결정은 헌법재판소의 몫이다.

촛불이든 태극기든 그 결정을 기다리고 결정에 승복하면 되는 일이다.

그것이 성숙한 민주시민의 자세이며 민주적 가치를 더욱 가치 있게 하는 것이다.

군중심리를 선동하여 이래라 저래라 헌재를 압박하고 헌법재판관들을 겁박하는 것은 법치에 대한 폭력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이다.

이제는 촛불을 끄고, 태극기를 접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이 정답이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