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재단하는 독선과 억지, 제 맘대로 틀을 짜놓고 거기에 맞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잘라 내거나 구겨 넣는 막무가내.

이런 유(類)를 빗대어 ‘프로쿠르테스의 침대’라고 한다.

프로쿠르테스는 ‘잡아 늘리는 자’라는 뜻이다. 고대(古代)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강도 이름이다. 그는 잔혹하고 무자비 했다.

나그네를 자기 집으로 유인한 다음 특수하게 제작한 침대에서 잠을 자도록 했다.

나그네가 침대보다 작을 때는 침대 길이만큼 늘려 죽이고 키가 클 때는 침대에 맞게 잘라 죽였다.

일반적으로 자기만의 어떤 기준을 설정하고 모든 현상을 자기 맘대로 잡아 늘리거나 잘라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관념론적 방법론’을 비꼬아 ‘프로쿠르테스의 침대’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때부터 이 은유적 비유가 넓게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프로쿠르테스는 결국 악당을 응징하는 영웅 ‘테세우스’에게 그가 나그네에게 저질렀던 것처럼 비참하게죽임을 당했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이 같은 ‘프로쿠르테스의 침대’가 곳곳에 놓여 있음을 보게 된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구속의 경우도 그렇다.

지난달 19일 서울중앙지법은 ‘뇌물공여와 횡령·위증 등 혐의’로 청구한 특검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후 특검은 같은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재청구 했고 같은 법원은 지난 17일 영장을 발부 했다.

같은 혐의에 대해 영장 전담 판사의 시각이나 법리 해석이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식 ‘고무줄 논리’다.

재벌 총수의 구속이나 불구속 여부에 대해 왈가왈부 시비하려는 것이 아니다.

‘프로쿠르테스의 침대’식 법집행의 무분별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그동안 특검 수사과정을 지켜보면 강경 일변도다. 인신구속을 완장처럼 차고 다닌다. 마치 균사작전을 보는 듯하다.

인신구속은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불구속 수사 원칙은 형사소송법상의 원칙이기도 하다,

‘피고인이 일정한 거주지가 있거나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을 때는 불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형사소송법 정신이다.

국민의 인권과 신체의 자유, 불구속 수사의 원칙은 역대 정권이 평소에 강조하고 촉구해왔던 입에 발린 주문이었다.

야권 대선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민주당 전 대표도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당시 ‘불구속 수사가 사법정의의 대원칙임’을 주장한 바 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주장대로라면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데도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한 것은 사법정의의 대원칙에 반한 일이 아닌가.

불구속 수사 원칙을 무시하고 구속수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것은 특검이 스스로 수사능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무능수사를 자인하는 셈이다.

“야당 추천 인사로 구성된 정치특검이 ‘박근혜 뇌물 수수’ 프레임에 빠져 ‘이재용 구속’을 밀어붙인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특검은 증거와 진실을 바탕으로 한 적법하고 당당한 수사 기법보다는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거기에 짜 맞추기 위해 무리한 구속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문 전 대표를 포함한 정치권 인사들은 구속에 대해서는 사법정의로 포장해 칭송해 왔고 불구속 결정에는 입에 게거품물고 노골적으로 법원을 조롱하고 비난하고 위협해 왔다. 제 입맛에 따라 사법정의를 농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부회장 관련의 경우를 보자.

조의연판사가 1차 영장을 기각했을 때다.

당시 야권의 반응은 집단 발작 수준이었다.

“대한민국은 삼성 공화국을 인정해 준 것”에서부터 “사법부에 침을 뱉고 싶다”, “사법부가 미쳤다”,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영장심사 판사에 대한 인신공격은 살똥스러웠다.

2차 영장 심사를 앞두고는 야당대표가 “영장이 기각되면 최고 권력과 최고재벌의 유착을 법이 감싸 주는 것”이라고 ‘영장발부 가이드라인’을 쳐 사법부를 협박하기도 했다.

이와는 달리 영장 재청구에서 구속영장을 발부 했던 한정석 영장 전담 판사에 대해서는 ‘살아 있는 양심’, ‘ 정의의 사도’등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영웅시 했다.

문재인 더민주당 전대표는 “대한민국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특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고도 했다.

정의와 불의가 착종(錯綜)되고 거짓과 진실이 헝클어진 아수라(阿修羅) 정치권의 분별없는 말장난 수준의 언어는 황당하고 부끄럽고 쓸개처럼 쓰기만 하다.

물론 사법 정의 구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제 정의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정경유착의 원죄를 안고 있다면 정경유착을 뿌리 뽑아 더 바른경제 정의 실현, 더 깨끗한 청부(淸富)기업 육성은 함께 살아가야 할 사회 공동체의 의무이자 덕목이다.

그래서 부패척결은 이을 위한 전제이며 필요충분 조건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정물을 버리려다가 아기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재용 구속’으로 얻을 것과 잃을 것을 헤아리자는 것이다.

삼성은 국내 최대 기업이다. 지난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59조원의 기업 가치로 7위에 오른 초우량 글로벌 기업인 것이다.

삼성전자로만 국내 제조업 매출액의 11.7%, 영업이익은 30%를 점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만큼 한국경제에서의 비중이 크다.

따라서 삼성 오너의 구속은 이 같은 기업 가치를 추락 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기업의 신인도에도 상처를 입히고 향후 글로벌 기업 활동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재용’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가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다. 재벌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견고하다해도 ‘포승줄에 묶여 끌려 다니는 삼성’의 이미지가 좋게 보일 리가 없어서다.

그렇지 않아도 수출전선에 이상 음이 들리고 있다. 국제적 보호무역 확산 등 한국경제의 신호등도 예사롭지가 않다. 전망이 밝지 않다.

여기에다 탄핵 와중의 정치리스크까지 겹쳐 기업이 의욕을 잃고 투자와 고용을 꺼린다면 결국 부담은 국민일반이 지게마련이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이재용 구속’은 한국 경제에 득이 될 수는 없다. 독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경제 측면에서만 보면 자해행위며 마이너스다.

대통령을 뇌물 수수 죄인으로 엮기 위한 무리한 구속, 여론에 떠밀린 짜 맞추기식 수사 등 특검에 대한 쓴 소리가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특검의 ‘프로쿠르테스 침대’식 수사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진정한 사법정의 실현을 위해 쓰지만 귀담아 들을 일이다.

‘법 모르는 관리가 볼기로 위세 부린다’는 속담이 있다. 실력이 없고 일에 자신이 없으면 공연히 애매한 사람을 치는 것으로 일을 얼버무린다는 뜻이다.

특검을 보는 일각의 시각이 그렇다. 그냥 웃어 넘겨버릴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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