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 한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51.6%의 득표율로 당선됐던 대통령을 파면하고 사실상 정치적 사형을 집행하는 데는 채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날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은 탄핵 심판 결정문에서 “피청구인(박근혜대통령)의 위법·위헌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 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파면을 선고했다.

결정문 낭독과 파면을 선고하는데 걸린 시간은 21분이었다. 정치적 사형선고와 정치적 사형집행이나 다름없는 ‘주문 선고’는 5초도 안 걸렸다.

소수 의견 없는 8인 헌재 재판관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만장일치 파면 결정은 1948년 정부 수립 수 처음 있는 일이다.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역사적 대 사건이다.

여기서 헌법 재판소의 결정에 시시비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헌법에 관한 한 최고 수준의 법리 이론가들이자 헌법 전문가 그룹인 헌법 재판관들과의 쟁점 사안에 대한 법리 논쟁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논리 싸움만으로 봤을 때 누가 이길지 질지 이미 승패가 뻔해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시민사회  일반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의견과 논리를 펼 수 있다.

이번 헌재 결정에도 여러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광장 시민혁명의 승리”, 또는 “정의의 법치주의 완성“이라는 환호작약도 있다.

대중영합주의에 의한 ‘여론재판식 마녀사냥’이라거나 ‘반역사적 법치 반역’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와는 별도로 헌법 재판소의 ‘소수의견 없는 만장일치 파면 결정‘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만장일치의 오류와 함정을 경계하자는 논리다.

사실 만장일치는 소수를 용납하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 하지 않은 독단과 독선이나 일방통행의 이미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직 이론에서는 ‘집단사고(Group Think)’라는 말이 있다.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ving janis)의 이론이다.

집단 내에서 대세를 거스르지 않고 만장일치를 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말함이다.

이 같은 집단사고에 의한 결정은 의사 결정의 왜곡을 가져오고 외곬수의 독선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최상의 선택으로 여겨졌던 만장일치 결정은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1961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 당시 쿠바 침공에서 미국이 참담한 패배를 당한 것도 ‘집단사고’, 다시 말해 ’만장일치의 오류‘때문이라는 역사적 평가도 있다.

그래서 많은 수의 기업이나 조직에서는 만장일치의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모든 사항에 대해 무조건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을 채용하여 만장일치의 일방통행을 제어하려는 제도다.

매사에 싸움닭으로 불리는 ‘악마의 대변인’은 조직을 건강하게 하고 활력을 줄 수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심각한 국정 혼란 야기 등 엄중하고 심각한 대통령 탄핵 심판을 함에 있어, 법의 정의와 양심의 보루라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에 이러한 반대의 소수의견을 내는 ‘악마의 대변인’이 없었다는 사실은 여간 씁쓸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8인 헌법 재판관의 만장일치 대통령 파면 결정은 무오류의 최선이자 최상의 선택인가는 역사의 평가에 의해 걸러질 것이다. 역사의 법정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법의 정의와 양심에 따른 선택이었는가, 촛불과 태극기의 광장 눈치 보기에서 비롯됐었는가, 아니면 헌법재판소와 악의적 언론과 비리 집단으로 손가락질 받는 국회와의 불순한 야합이 만들어낸 작품인가.

그러기에 탄핵심판과 관련하여 헌법재판소와 국회와의 관계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쪽의 주장을 마냥 배척할 수 만 없는 고민이 여기에 있다. 나름의 논리적 설득력을 갖고 있어서다.

헌법 재판소는 국회법사위의 조사도 없는 국회의 탄핵 소추안 의결 등 소추안 의결의 불법성과 부당성과 관련한 문제제기에  대해 국회의 자율권이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했다.

그러나 입법부인 국회의 자율권이나 재량권은 폭넓게 인정하면서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자율권과 재량권은 외면했다. 탄핵심판의 불공정성 시비를 제공한 것이다.

헌법 재판소가 국회와 짜고 마녀사냥 식으로 대통령을 몰아낸 것이라는 시각이 존재하는 이유다.

법 집행의 공정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 제기인 것이다. 헌재의 자의적 법해석과 법 집행의 불공정성에 실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헌재는 또 결정문에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하여 파면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는 한 재판관의 보충의견도 내놨다.

부패와 비리의 복마전이나 다름없는 국회의 정치적 폐습에는 침묵하면서 대통령에게만 정치적 폐습의 올가미를 씌워 이를 청산하기 위해 파면 결정을 했다는 논리가 형평성 차원에서 온당한 일인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 더 독(Wag the dog)'현상의 본말전도를 보는 듯 쓴 웃음이 나온다.

이 같은 일각의 시각과 논리는 모순적 법체계와 불공정 법 운영의 문제점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주문이나 다름없다.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재 심판은 공정하고 불편부당하게 이뤄졌는가. 불공정했고 편향적이었다면 바로잡는 방법을 찾아야 할 일이다.

형법 상의 확정 판결이 없는 상태에서 국회가 의혹과 감정만으로 국가수반인 대통령을 직무정지 시켜놓고 탄핵을 진행하고 국정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 대통령에 대해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은 재심 없는 단심 심판으로 파면시킨 것에 대한 시시비비는 그래서 계속 될 수밖에 없다.  군사재판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여겨져서 그렇다.

관련법 개정 등 제도개선을 위한 통열한  반성과 심각하고 거침없는 토론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민주주의 가치인 법의 정의나 법치주의 실현은 공정하고 치우침 없는 법 집행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번 특검 수사결과와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은 이러한 법의 양심과 정의의 법치주의에서 이뤄졌는지, 아닌지는 후일 역사가 평가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 결정상의 잘못은 비판받고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그러나 헌재 결정문에서는 이로 인한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는 소추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 파면’이 법치주의 승리인가, 여론조작에 의한 마녀사냥인가, 여간 헷갈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 아닐 수밖에 없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