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복 제주신광교회 전도사

"나만한 여자가 없고, 또 내가 이 만큼이나 당신을 위해 섬기니까 당신이 그 정도는 내게 해 줘야 해요."
"당신이 내게 약속했고, 또 성품이 좋으시니 그 정도는 내게 해 주실 거 믿어요."

부탁을 들을 때, 둘 중 어떤 말에 더 큰 기쁨으로 응할까? 전자는 요구의 근거를 요구자 자신의 자격과 공로에 두었고, 후자는 요구의 근거를 제공할 자의 약속과 성품에 두었다. 인간적으로도 후자에 마음이 열린다. 하나님도 그러하시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도 응답의 근거를 자신의 열심이나 정성이나 선행이나 기도의 분량에 두기 쉽다. 틀렸다. 모세의 기도는 후자와 같았고 하나님은 흔쾌히 응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 앞에서 통곡하며 반역할 때였다. 백성들은 출애굽부터 홍해의 기적을 거쳐 시내산의 선민계약까지 하나님의 기적과 임재를 오감으로 절절히 체험하고서도 언약을 믿지 못했다. 지도자를 새로 뽑아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자는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돌로 치려고까지 했다. 그때 영광으로 현장에 나타나신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버리고 모세만 남겨 언약을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민수기14:12)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모세 개인은 안도의 한숨을 쉴 만도 한데 모세는 일체 사사로운 말을 안 했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민수기14:15~19)
15.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하나 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여러 나라가 말하여 이르기를
16.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17.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18.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9.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
 
모세는 하나님의 명예를 염려했다. 그리고 이미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들이대었고, 하나님의 성품을 의존하며 백성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장면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곧 "네 말대로 사하노라." 하셨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 이  말씀은 모세가 1년 전에 하나님께 들은 말씀이다. 그것을 기억했다가 이렇게 위급할 때 말하여 하나님이 꼼짝없이 들어줄 수 밖에 없도록 근거로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지도자다.

그런데 가만히 다시 들여다 보면 이 장면에 은근히 빛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다. 실은 하나님이 모세를 유도하신 것이다. 모세로 하여금 중재하도록 그것을 1년 전에 예비하신 것이다.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가 액면 그대로 아무 의도가 숨겨져 있지 않다면 1년 전에 무어라고 말씀을 하셨어야 하는가? 여호와는 반역을 용서치 않고 전염병으로 쳐서 멸한다고 경고만 깔아 두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1년 전 금송아지 우상숭배 사건 직후에 십계명 돌판을 두 번째로 주시며 하신 말씀이 이것이다.  

(출애굽기 34:6~7)
6. ...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그 심각한 반역 직후에 주시는 그 말씀을 들을 때 지혜로운 모세는 즉각 알아들은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또 다시 반역을 행할 것이고, 하나님은 또 다시 용서하실 것이지만 그 때 중재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중재자인 모세가 내세울 명분이 자기 귀에 제공되고 있다는 것을. 약속도 주시고 은근슬쩍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 보이신 것은 기도의 근거를 삼으라는 힌트다. 모세와 하나님은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모세는 유일한 중재자였다.

천대와 삼사 대는 그 크기가 비교할 수 없는 차이다. 그만큼 인자는 영원히 베푸시고 징벌은 짧게 행하신다는 뜻이다. 죄인들은 생전에 죄의 징벌은 받더라도 영원한 구원을 소망할 수 있다.

하나님은 중재자 모세와 같은, 그러나 모세와는 비교할 수 없이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인류의 유일하고 영원한 중재자로 역사 속에 보내셨다.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백성을 위해 중재했고, 예수님은 자신의 피를 남김없이 십자가에서 흘려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의 근거로 삼으셨다. 죄 없으신 그분이 자신의 피를 들고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드리며 중재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구약 2000년 역사 내내 어린 양의 피를 제물로 드리며 올리던 속죄제사의 원형이었다. 제사 방식을 지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제물을 받으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2000년 동안 하나님은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용서하리라는 약속을 한없이 거듭하신 셈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용서받을 근거를 한없이 제시하시고 나서 죄인들을 위해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 그 사실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믿는 자는 받게 되는 구원이다. 민수기의 이스라엘도 그랬듯이.

응답 받는 기도의 절대적이고 첫째 되는 근거는 예수님의 피의 중재를 믿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동기,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성품에 의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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