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

봄햇살은 바깥으로 등을 떠민다.

이 맘 때면 오름 등성이마다 수줍은 듯 기지개를 펴는 봄처녀 '산자고'가 떠올라

망설임없이 산책하기 좋은 민오름으로 향한다.

 

오라 민오름은

연동과 오라동의 경계에 위치해 있고, 

신제주 신시가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이 쉽다.

오름 중턱과 정상에는 체육시설이 조성되어 있어 체육공원으로 손색이 없고

산림욕과 잘 정비된 산책로는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제주시 오라동에 위치한 민오름은

높이 251.7m, 말굽형 굼부리 형태를 한 나지막한 오름이다.

나무가 없는 풀밭오름이라 하여 민오름(民岳, 戊岳),

옛날에는 오름이 민둥산이었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소나무, 천선과나무, 예덕나무, 보리수나무, 밤나무 등

조경수로 심은 나무들과 계절마다 들꽃들이 자라고 있어

민둥산이라는 의미는 퇴색된지 오래다.

오름 들머리에는

소나무와 송악이 긴 시간 햇빛과의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소나무에게 송악은 참으로 귀찮은 존재겠지만

송악에게 소나무는 정말 귀한 존재다.

'애완견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지켜야할 기본적인 에티겟'

애완견과 함께 할 때 지켜야하는 규칙을 설명하고 있다.

민오름 둘레 숲길이 만들어져서

운동시간이 모자란 분들은 둘레길을 걷고 오름 정상으로 오르지만

바로 정상으로 향한다.

오름 중턱에는 금잔옥대가 수수하지만 우아한 자태로 반긴다.

 

발 아래에는 작은꽃들의 봄꽃 잔치가 열렸다.

누구를 먼저 담아야 될지 발은 동동, 손은 떨려오고, 마음은 급해진다.

청색의 '큰개불알풀'은 봄하늘을 가득 담고,

개구리발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도 별난 '개구리발톱',

귀를 쫑긋 세운 진분홍토끼 모습을 한 어릿광대 '광대나물'은 봄바람에 흥이 났다.

오름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체육시설이다.

언제부터 이 곳으로 이사를 왔는지

햇살이 살짝 비치는 곳에는 황금접시 '세복수초'가 벌과 사랑을 나눈다.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군락을 이루었던 등성이는

소나무 재선충으로 베어져 나가 군데군데 헝하니 정상까지 훤히 들여다 보인다.

가파른 262개의 돌계단을 오르니 정상이 바로 눈 앞에 와 있다.

정상에서는 한라산이 시원스레 조망되고

이웃한 광이오름과 남조순오름이 형제처럼 다정하게 보인다.

제주 시내도 한 눈에 들어온다.

사라봉~별도봉~원당봉으로 이어지는 오름은 한달음에 달려갈 듯 가깝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소나무로 둘러 싸여 있어서 조망이 막혔었는데

잘려 나간 소나무탓에 시원스레 조망됨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헷갈린다.

모든 것은 다 제자리에 있는데 재선충 피해로 잘려 나간 소나무들이

군데군데 흉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기분은 착잡하다.

경방초소에는 건조한 봄철이라 오름지킴이가 근무하고 계신다.

통나무 위에 누우니 파란 하늘이 눈이 부시다.

새소리, 바람소리, 봄이 오는 소리,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여린 들꽃들이 들려주는 정겨운 소리..

재선충으로 파헤쳐진 오름 등성이에는 봄 햇살 아래 하얀 속살을 내보이는 산자고가

땅에 바짝 붙어 기지개를 편다.

산자고가 무더기로 피었던 자리에는 흙이 파헤쳐 흉한 모습이고

이때 쯤이면 속살을 내보이며 유혹하던 그 많던 산자고는 보이지 않는다.

봄처녀 '산자고'는

봄 햇살이 강렬해지면 육각형 별꽃이 되어 기다려 줄까?

오름 북동사면에도 재선충으로 소나무가 잘려나가

한라도서관과 제주아트센타 뒤로 동부의 오름군락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신제주 지역에 민오름과 광이오름(한라수목원)이 있어서

시민들의 산책, 휴식공간과 체육공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제주 시내에는 붉은노을이 온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사봉낙조) 사라봉과

오름 전체를 시민을 위한 체육공원으로 조성된 별도봉은

산림욕코스로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화구는 정상인 서쪽 봉우리와

동쪽 봉우리 사이 북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이루고 있고,

이름 모를 묘가 자리하고 있다.

오름 능선 따라 산책로와 비탈길에는

울창하던 소나무가 너무 많이 베어졌고, 그 자리에는 흉하고 충격적인 모습이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 혹은 산책하며 지나는 길이 익숙한지

종종 걸음으로 먹이를 쪼아먹는 비둘기

인기척이 있는데도 비둘기가 도통 움직이질 않는다.

아직까지도 재선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민오름이지만

봄이 더디게 갔으면 좋겠다.

 

하루가 지나면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연북로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에 발걸음이 무겁다.

연북로가 생기기 전 민오름까지 가는 오솔길이 그립다.

제주는 오늘도 공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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