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 맞은 4.3, '사건 아닌 '정명(正名)'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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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 맞은 4.3, '사건 아닌 '정명(正名)'이 필요
  • 김동현 책임 에디터
  • 승인 2017.04.0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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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배보상, 미국 책임 반드시 물어야

오늘 4월 3일이다. 1948년 4월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봉홧불이 올랐다. 해방정국에서 제주 4·3은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가장 비극적 사건이다. 사실 사건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제주 4·3진상조사보고서에는 4.3을 1947년 3.1절 발포사건 이후 남로당 제주도당의 봉기 이후 군인과 경찰의 무력적인 진압으로 3만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올해 69주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4.3은 사건이다.

특별법이 제정되고 대통령의 사과도 있었지만 여전히 제주 4.3은 사건이다. 내년이면 70주년. 제주 4.3에 올바른 이름을 부여하는 일이 남았다. 우리세대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4·3의 정명(正名)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오랫동안 제기되어왔다. 하지만 국가 차원의 공식보고서 조차도 일부 극우세력들은 좌편향되어있다면서 4.3 흔들기를 계속하고 있다.

국정교과서는 4.3을 단 몇줄의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다. 당시 발생한 수많은 학살은 서술되지 않았다. 내년은 70주년. 1948년 태어났다면 고희의 나이다. 70년의 세월 그동안 제주 4·3은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 2000년 제주 4·3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 제주 4·3은 비합법적인 저항의 방식으로 기억되어야만 했다. 제주 4.3의 기념비적 작품인 현기영의 「순이삼촌」이 발표된 때가 1978년이었다.

어제, 그제 관덕정 광장에서는 제주 4.3 해원상생굿과 제주 4.3 예술제가 열렸다. 예술제에서 현기영의 순이삼촌이 낭독됐다. 소설이 쓰여졌던 78년만 하더라도 30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비로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제주 4.3이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고,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할 수 없었던 세월동안 제주 사람들의 가슴에는 한이 쌓여만 갔다. 하지만 그 세월동안 제주사람들은 소설로, 시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4.3을 이야기해왔다. 잊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런 몸부림이 있었기에 2000년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이제 4.3은 비합적인 저항의 대항에서 합법적 추념의 광장으로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4.3은 사건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을 때 우리들은 그것을 사고라고 부르지 않았다. 세월호는 국가가 국민을 구하지 않은 참혹한 비극의 참사였다. 세월호가 사고가 아니듯 4.3도 사건이 아니다. 4·3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그것은 앞으로 우리 세대에게 남아있는 과제이다.

그날로부터 69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제주 4·3을 상징하는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부를 수 없다. 대통령이 파면되고 세월호는 인양되었지만 여전히 노래를 부를 수 없는 현실. 그것은 제주 4.3의 오늘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제주 4.3평화공원에는 백비가 있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비.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제주 4.3을 살아야 하는 제주도민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늘 추념식에는 대선주자들도 대거 참석한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참석한다. 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될 때 많은 사람들은 기뻐했다. 이제 드디어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내와 아이들의 죽음을 기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4.3 추념일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의도적인 외면이었고 여전히 4.3을 불편하게 여기는 정부의 태도였다.

추념식은 제주 4.3 당시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날이다. 그야말로 제주도 전체가 커다란 제사를 지내는 날이기도 하다. 제사에서 상주는 유족들이다. 하지만 지금 추념식은 정치인들의 의전을 우선한다. 제단의 맨 앞자리도 유력 정치인들이 앉는다. VIP라도 참석하면 유족들이 비석 앞에 바쳤던 제물마저도 걷어가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작은 것부터 바뀌는 일이 제주 4.3의 의미를 온전히 기리는 일이다

특별법 제정과 대통령 공식 사과가 이뤄졌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2000년 만들어진 특별법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지닌 한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철저한 진상규명,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배·보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원수의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사과를 했지만 정작 제주 4·3 당시 대량 학살의 집행자였던 국방부와 경찰은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 경찰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이뤄져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쉽지 않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많다. 직접적 책임을 묻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잘못을 철저히 기록할 필요가 있다. 기록되지 않은 비극은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 문제는 제주 4·3 진상규명 운동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현재 특별법에는 이에 대한 조항이 없다. 필요하다면 특별법을 개정해서라도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문제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또 하나는 제주 4·3 당시 아무런 영문도 끌려간 수형인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 제주 4·3 당시 사법부의 재판을 받고 실형을 받은 제주도민만 수천 명에 이른다. 이들은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인, 경찰들은 수형인들을 잠재적 위협요소로 간주하고, 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대전 골령골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총살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의 숫자는 아직 정확하게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의 진상조사 과정에서 수형인들이 적법 절차 없이 불법 감금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공소장이나 판결문 등 최소한의 재판 절차를 기록한 자료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1948년 12월, 그리고 1949년 7월 군사재판에 의한 수형인 2350명, 그리고 일반재판에 의한 수형인 1306명은 지금도 4·3 수형인이라는 낙인이 찍혀진 채 국가기록원에 남아있다. 죄인이 아니데 여전히 죄인으로 기록되고 있는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제주 4·3특별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4·3 트라우마 치유센터도 건립되어야 한다. 국가폭력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삶에 커다란 상처를 줬다. 아직도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분들이 부지기수다. 지난 2008년 김문두 제주대학교 교수팀은 ‘4·3 후유장애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보고서에서는 응답자의 68.6%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제는 희생자와 유족들의 상처를 치료할 전문 기관이 필요하다.

또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제주 4·3의 직간접적 원인을 제공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일이다. 제주 4·3은 미군정 시기에 일어났다.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에는 당시 미군정이 미군 대령을 제주지구 사령관으로 파견했다는 기록이 있다. 제주에서 발생한 모든 진압작전의 책임이 미국에 있었다.

제주 4·3을 초래한 3.1절 발포사건 3.10 총파업도 바로 미군정 시기에 발생한 일이다. 3.10 총파업은 공무원, 경찰들도 함께 한 전 도민적 저항이었다. 당시 군과 경찰은 대규모 검거 작전을 벌여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했다. 사망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이 모든 사건들이 발생한 시기에 군과 경찰의 작전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집단이 바로 미군정이었다.

이제는 미군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친미반공정권을 세우기 위한 미국의 대외정책이 사실상 제주 4·3을 묵인했다. 미국이 보관하고 있는 자료가 있다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당시 미 군사 고문관들의 증언도 별도로 수집해야 한다. 그러려면 미국 정부의 전향적 태도가 필요하다. 이를 압박하기 위한 한국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

이제 제주 4·3은 70주년을 앞두고 있다. 무고한 희생이라는 희생담론 속에서 슬퍼만 해서는 안 된다. 제주 4·3 당시 그들이 왜 분연히 일어설 수밖에 없었는가를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왜 수많은 도민들이 3.10 대규모 총파업에 가담했는지, 그들이 과연 무엇을 원했는지, 어떤 세상을 꿈 꾸었길래 산으로 올랐는지를 이제는 말해야 한다. 그것이 ‘사건’으로만 기록되고 있는 제주 4·3의 정명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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