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재 봉사활동을 이어온 정태민씨(79세). 백발의 노인이 됐지만 여전히 중증 장애인들을 돕고, 독거노인의 벗이 되는 바쁜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이 나이 되도록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하고 말했다.@제주투데이

여든을 앞둔 백발의 정태민씨(79세)는 하루가 늘 바쁘다. 단체 봉사활동은 물론 평일에도 개인 자격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곳을 누비기 때문이다. 인터뷰로 만났던 4일도 정 씨는 제주장애인요양원에서 중증장애인들의 오전과 점심 일정을 곁에서 도왔다. 황혼의 일상을 편안히 누릴 만도 한데 정 씨는 “80 고개에 접어 들었는데도 이렇게 봉사를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한다. 봉사활동을 시작한지 올해로 36년째다. 그에게 봉사는 삶이었다.

제주장애인요양원에서 자원봉사하는 정태민씨

그 옛날 어르신들 삶이야 다 녹록치 못 했지만 정 씨의 어린시절은 유난히 배고프고 힘들었다. 정 씨는 하도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이라 “굳이 그 시절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하면서도 “굶고 배고팠던 그 고통의 시절이 있어 진심으로 누군가의 힘듦을 공감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신문배달을 해야 했던 중학생 시절이었다. 정 씨는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주위 사람에게 눈을 돌릴 때가 된다면 꼭 도움을 주자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가졌었다.”고 말했다. 잊어본 적 없던 스스로와의 그 약속이 정 씨의 봉사로 이어진 삶을 지탱했다.

개인적으로 봉사한 시간을 제외한 단체에 공식 기록된 그의 봉사시간을 합치면 1만4000여시간이 넘는다. 굳이 시간을 따질 필요가 없이 그의 삶은 '봉사의 삶'으로 기록되고 있다. 정 씨는 "마음을 다해 나와의 약속을 지켰을 뿐"이라며 봉사로 얻는 보람은 "봉사는 남을 위한 게 아닌 스스로를 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주투데이

첫 봉사는 1981년도였다. 당시 제주의 한 일간지를 통해 신문배달하며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는 소년에게 장학금을 전했다. 그 소년의 삶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매해 어려운 형편의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연탄공장을 운영하던 때도 독거노인과 생활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몇 트럭의 연탄을 날랐다. 자원봉사라는 개념도 자리하지 않았던 그 시절, 굳이 ‘봉사’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봉사란 남을 위한 게 아닙니다. 진심을 다해 봉사해 본 사람은 알지요. 나를 돌아보게 되고, 보람을 얻게 되는... 봉사란 결국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해요.”

마음 맞는 이들과 1993년 새제주적십자봉사회를 만들기도 했고, 2003년엔가는 제주시자원봉사센터를 통해 만난 봉사자들과 한울봉사회를 꾸렸다. 단체 회장을 맡기도 하면서 안 해본 봉사활동이 없다. 환경에서부터 사회복지시설, 불우이웃 돕기, 지역행사 봉사활동 등 정 씨는 힘이 닿는 데로 시간이 되는 데로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개인적으로 이어오고 있는 독거노인 방문과 요양원 봉사활동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그의 봉사이력에는 ‘제주 최장 봉사자, 최고령 봉사자’가 붙는다.

“14년째 도움을 드리고 있는 독거노인은, 처음 만났을 땐 유난히 어려웠지만 이제는 가족과 다름없습니다. 매주 하루든 이틀이든 꾸준히 가서 도움도 드리고 이야기 벗도 해드립니다. 서로 신뢰를 갖는 관계인거지요. 진심을 다해 대하니 그 어렵던 마음도 움직이더군요.”

정태민씨(79세)-2004년 제주시자원봉사센터 명예의전당 등재. 제주시 자원봉사센터와 적십자회 공식 기록된 봉사시간 14000여 시간 이상(개인 봉사활동 제외). 2002년 김대중 대통령 표창. 새제주적십자봉사회 회장, 한울봉사회 회장, 대한적십자사봉사회도협의회장 역임 @제주투데이

여태껏 중증장애인의 거동과 식사를 돕는데 여든을 앞둔 몸으로 힘들지 않느냐 여쭈니 “힘들다 생각하면 봉사가 아닙니다. 갈 때도, 나올 때도 즐겁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든 마음은 겉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니까요.”하고 정 씨는 답한다. 오로지 마음, 그의 봉사는 그 시작과 끝이 항상 ‘마음’이다. 작든 크든 도움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마음에서 시작한 봉사를 꾸준히,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이어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정 씨는 강조한다.

제주장애인요양원에서 자원봉사하는 정태민씨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약속’입니다. 수혜자에게 한 봉사자의 약속은 반드시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해요. 또 마음을 다해 대하는 것. 손을 하나 잡더라도 어떻게 잡아드릴지 고민하고 대하는 것. 그런 마음이 있다면 봉사의 삶은 어렵지 않은 일이에요.”

그의 일주일은 토요일 하루를 빼곤 단체로 함께 하는 봉사활동과 개인적으로 하는 봉사활동으로 채워져 있다.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고, 기꺼이 도움을 줄 수 있어 고맙고 다행이라는 정 씨. 당연히 내일도 그 다음 날에도 봉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제는 옛날보다 훨씬 나아졌지요. 봉사활동 인구도 크게 늘고, 규모도 커지고, 영역도 다양해졌고요. 하지만 겉으로 성장하는 것 말고도 우리가 깊게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이 많아요. 행사성으로 그친 봉사활동들은 없는지, 누가 하니까 한 번 두 번 하다 만 것들은 없는지. 몇 번을 하더라도 진심을 담고, 지속적으로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마음’, 마음이 우러나면 그 이후야 자연스레 봉사활동이 이어지는 거지요.”

자원봉사하는 정태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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