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생생한 304개의 비극, 304개의 울음

2014년 4월 16일 304명이 차가운 바다에서 숨졌다. ‘전원구조’라는 자막에 안심했던 것도 잠시였다. 제주로 수학여행을 오려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 제주와 목포를 오고갔던 화물차 기사들, 제주 이주를 준비하며 제2의 삶을 꿈꿨던 사람들이 바다 속에서 숨져갔다. 세월호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국가가 국민을 구하지 못한 비극이며, 참사이다. 304명이 바다에서 한날한시에 숨진 비극이 아니라 304개의 세계가 침몰해 간 304개의 비극이고 304개의 울음이었다.

비극은 갑작스럽게 우리의 일상을 흔들었다. 세월호 이후, 우리의 삶은 변했다. 사건으로서 세월호는 일차적으로 선박침몰과 구조실패에 있다. 연세대학교 박명림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마치 실황중계처럼 전개된 충격적 사태”였다고. 나아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국사회의 경제, 사회, 정치, 국가공동체, 관료기구의 능력과 행태, 가치와 윤리가 집약적으로 표출된 압축구조(박명림, 「‘세월호 정치’의 표층과 심부」, 역사비평, 2015, 2.)를 보여준 사태였으며 기성세대의 오만함을 드러낸 비극”이었다고.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 최첨단 정보기술을 자랑하는 정보통신 선진국가라는 호칭은 침몰해 가는 세월호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했다. 국가는 무능했고 정치는 실종했다. 세월호가 비극인 이유는 누구라도 똑 같은 비극을 당할 수 있다는, 비극의 일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 위험한 삶을 국가도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함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제 2017년 4월 16일이다. 벌써 3년이다. 침몰됐던 세월호는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 직후 인양되었고 이제 뭍으로 올라왔다. 그 처참한 모습을 보며 우리는 또 다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세월호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침몰의 원인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구조는 왜 실패했는지.

비극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 우리의 질문은 계속되어야 한다

또 하나는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묻는 일이다. 재난은 언제나 닥쳐올 수 있다. 재난이 재앙이 되지 않기 위해 국가 재난 구조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 그날 온 국민이 304명의 생명이 수장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봐야만 했다. 고통이었다. 수많은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보내온 객실 동영상을 아직 볼 용기가 없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서는 안 된다. 고통스럽더라도 보고 또 보고 왜, 그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숨져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묻고 물어야 한다. ‘이제 그만하면 됐지 않느냐’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더 나아가 대통령의 사태 인식과 판단, 관료들의 책임문제도 따져야 한다.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따져야 한다.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세월호 이후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할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에 그토록 무감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많은 국민들은 분노했다. 여전히 세월호 7시간은 규명되지 않고 있다. 진실을 밝혀야 할 책임이 있는 박근혜 씨는 감옥 안에서도 여전히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양식과 책임의식은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면서 권력의 단물을 빨아먹었던 사람들도 여전하다. 어떤 정치인들은 박근혜 사면을 이야기한다. 안될 말이다. 국가의 실종과 국가의 실패를 보여준 사건이 바로 세월호 참사다.

그리고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보여준 모습은 더욱 끔찍했다. 추모와 공감도 이어졌지만 한 쪽에서는 비아냥과 조롱이 계속됐다. 유공자 지정, 대학특례입학 등 유족들이 주장하지도 않은 내용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극단적인 혐오가 커져갔다. 심지어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공격성을 보이는 사례들도 있었다. 세월호 사태에서 인명구조에 실패한 것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체포와 처벌에 실패한 것도 국가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책임이 없다. 국가는 가해자이고 유가족들은 피해자였다. 하지만 오히려 피해자인 가족들이 공격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일베의 유족 비하와 조롱. 그리고 그것을 부추긴 일부 정치세력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일그러져있는지, 사회의 부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세월호 참사 직후 초동 대처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대한민국이라는 한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신속하게 구조작업이 이뤄졌다면... 304명의 죽음 앞에서 이러한 가정은 쓸모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물어야 한다.

무책임한 국가와 실종된 정치

언론의 책임은 더 통렬하다. 사회적 공론장에서 유가족들을 조리돌림하는 일들이 자행됐다. 확인되지 않는 유언비어를 유통했던 보수 종편의 선정적 보도 태도도 문제였다.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나오게 된 이유를 언론도 뼈아프게 통감해야 한다.

우리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비극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비극을 그들이 온몸으로 슬퍼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유가족들의 싸움이 있었기에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을 수 있고, 안전한 국가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유가족들은 생업을 포기해가면서 특별법 제정과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했다. 길거리에서 잠을 자고, 목숨을 건 단식을 하면서 그들은 외쳤다. 우리는 그들의 외침을 외면할 수 없다. 그들의 외침은 어쩌면 우리에게 닥칠 또 다른 비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철저한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책임자 처벌도 이뤄져야 한다. 승객을 버리고 퇴선한 선장 개인의 잘못만을 물어서는 안 된다. 국가가 국민을 구하지 못한 이 끔찍한 무능과 무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 유가족에게 씌운 혐오와 조롱의 발언들도 그에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 또 기념과 추모가 필요하다. 당시의 기록을 낱낱이 모으고 망각에 저항하기 위한 기억의 바벨탑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치유와 회복을 위한 사회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정치가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위로해야 할 때다.

소설가 박민규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기울어가는 그 배에서 심지어 아이들은 이런 말을 했다. 내 구명조끼 입어.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기울어진 배에서. 나는 그 말이 숨져간 아이들이 우리에게 건네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는 정치의 문제도 아니고 경제의 문제도 아니다. 한 배에 오른 우리 모두의 역사적 문제이자 진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세월호는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고 우리의 아픔이다. 세월호는 우리의 문제이다. 세월호가 정상적으로 운항을 했다면,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은 제주에 도착해서 제주의 봄을 만끽했을 것이다. 오늘부터 16일까지 제주에서는 다양한 추모 행사가 열린다.

이제 기억은 우리들의 몫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제는 그만하자고. 하지만 그만둘 수 없다. 세월호는 앞으로 10년, 50년, 100년 계속해서 말해지고 기억되어야 한다. 제주 4·3이 그랬듯이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않은 참혹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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