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25일) (사)제주도 해녀협회(해녀협회)의 창립 기사를 읽고 필자는 놀랬다. 지금까지 필자는 이러한 해녀협회가 오래 전부터 조직이 되어 활발히 활동하는 줄 알았었다.

필자의 무지도 그렇지만 제주도 애환의 역사 중심의 하나였던 해녀들의 조직 단체가 여태 없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랬었다.

물론 지금까지 제주 마을 곳곳에 자생 단체로서 제각기 활동은 하고 있었겠지만, 이렇게 대대적으로 횡적인 연관성을 도모하고 해녀협회 단일 조직체로서 창립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해녀로서 현직 4,005명은 정회원, 전직 5,495명은 준회원으로서 모두 9,500명의 회원을 두었다.

해마다 줄어드는 해녀의 감소 기사를 대할 때마다 제주 해녀문화에 불안감을 느꼈던 필자로서는 1만명에 가까운 회원의 등록 속에 창립된 해녀협회의 출발은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만이 아니고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제주토박이들은 해녀가 제주만이 갖는 독특한 삶의 구성 요소가 아니고 어디에나 있는 일상생활의 하나로 여겼을 것이다.

해녀의 신선함을 모른 채 일상의 하나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제주인들에게 있어서 해녀문화가 올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해녀에 대한 새로운 일깨움이었다.

해녀의 삶과 해녀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아서 그 위상이 높아졌다고 평하고 놀라는 필자 역시 해녀에 대한 인식의 저변에는 부정적 요소도 있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객관적 요소로서 해녀의 삶과 문화면에서 조명할 때 그 희귀성은 다른 지역에는 전혀없는 엄청난 파워를 갖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해녀들의 활동으로 인한 농.어촌에의 기여도는 물론 무사 기원의 바람과 전승되는 노래 가락들은 또 다른 토속종교와 민요를 낳게 했다.

제주를 떠나 외국에서 제주해녀들을 조감할 때, 해녀의 삶과 문화에 대한 이 긍정적 요소들은 더욱 자랑스럽고 가슴 뭉클하게 한다.

4월 17일자 한라일보 문화란에 진선희 기자가 쓴 <전쟁으로 섬 밖 내몰린 해녀들이 있다>의 기사를 읽었다.

홍경찬 씨의 <뭍으로 간 해녀>를 소개한 기사였다. 통영 등 출항해녀의 기록을 담은 내용인데 저자 어머니 역시 출항해녀였다. 발췌 기사만 읽어도 해녀의 본질적 삶을 엿볼 수 있었다.

해녀에 대해 이렇게 다각도로 재조명 되고 있는데 제주문인들이 쓰는 해녀상은 아직도 제자리 걸음 상태이고 구태의연한 인상을 씻을 수없어서 언제나 아쉬움을 주곤 한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해녀에 대한 비하와 부정적 측면이 많고 작품의 매너리즘에 혐오감마저 들 때가 있다. 역설적 발상이 없는 신선함의 결여이다.

해녀의 작품에는 숨비소리, 태왁이 꼭 나와야 하고 그것은 한과 고통으로 연결된다. 한숨으로 대비되는 숨비소리와 삶의 고통의 태왁과 같은 혹으로 묘사되는 등 모두가 우려먹기 식이다.

가냘픈 여성 몸매로서 바다 속을 유영하는 그 모습을 우주 공간의 유영처럼, 숨비소리는 자신은 해냈다는 환호의 휘파람 소리처럼, 태왁은 생명의 파수꾼처럼. 왜 새로운 차원의 비유가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결코 과장된 미화가 아니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해녀협회 강애심(서귀포수협 법환어촌계) 회장은 기념사에서 해녀들과의 소통, 유네스코 정신과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제주해녀문화를 세계화하고 후배 해녀 양성에 힘쓴다고 했다.

해녀협회에는 "제주도 해녀문화보존 및 전승위원회 부위원장" 김순이 시인이 고문으로 추대되었는데, 김순이 시인이 쓴 <해녀 금덕이>를 해녀협회 창립을 축하하면서 소개한다.

해녀 금덕이

바다가 운다/ 우렁우렁운다/ 뒤척이며 밤새도록 운다/ 마을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데/ 금덕이기 있는 성산포 앞 바다/ 소용들이치며 운다/ 하얗게 거품 일며 운다/ 성산포 사람들은 알고 있다/ 금덕이여가 울면 며칠 없어 태풍이 들어닥친다는 걸/

금덕이는/ 200년 전 성산읍 신풍리에 살았던 대상군 해녀/ 아기 낳고 사흘 만에 바다에 나갔다가/ 어지름증에 그만 정신을 잃어/ 파도에 실려 먼 바다로 떠밀려갔다/ 문득 정신이 들고 보니 바다 한 복판/ 몸은 바다 속으로 가뭇없이 잠겨갔다/ 아들 낳았다고 좋아했는데/ 핏덩이를 두고 이렇게 죽는구나/ 그런데 이게 웬 조화인가/ 발바닥에 바위의 감촉이 닿았다/ 바위를 딛고 서보니 물은 겨우 허리께에 찼다/ 허리에 묶은 태왁을 잡아당기니/ 구명보트 같은 태왁이 저만치서 이끌려 왔다/ 이렇게 금덕이는 살아났고/ 그 여:礖에는 금덕이여라는 이름이 붙었다/

금덕이여는 바다 속의 보물창고/ 최상품의 미역밭이었다/ 한양 임금님 수랏상에 올리는 진상품 미역은/ 금덕이여에서 캐낸 것이 최고/ 금덕이여 자리돔은 성산포 일대에서는/ 물회로 젓갈로 크기는 작아도 사랑받는 물고기/ 전복도 구쟁기도 금덕이여에서 잡은 건/ 크기도 크거니와 맛도 깊어 진미 중의 진미더라/ 

금덕이는 신풍리 대상군 해녀/ 뙤약볕 아래서 콩밭 검질 매다가도/ 물때가 되면/ 안장도 얹지 않은 말을 타고 바다로 내달렸다/ 

불턱에서 잡은 구쟁기 손 크게 내놓아/ 허기진 동료 해녀들 군입거리로 주고/ 언제나 걸쭉한 입담 푸짐한 웃음으로/ 모두의 가슴을 훈훈하게 덥혀줬던/ 진정한 대상군 해녀 금덕이/ 금덕이여에서 캐낸 해산물로/ 집도 장만하고 밭도 사서 다들 부러워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장부/ 해녀 금덕이는 갔어도/ 금덕이여는 남아/ 저 바다 속 보물창고로 남아/ 지금도 해녀들 먹여 살린다/ 

태풍이 올라치면/ 성산포 마을에 퍼져나가는/ 우렁우렁 바다의 울음소리/ 금덕이여 물결이 우는 소리/ 해녀 금덕이가 알려주는 태풍경보/

해녀협회 감사에는 필자의 초등학교 동창인 김갑선(제주시수협 신흥어촌계) 씨가 선출되어서 반가웠다. 김갑선 씨에 대해서는 제주투데이에 <해녀가 된 우리 동창 김갑선씨>라는 기사를 썼었다.

그녀에 대해 쓴 기사와 강방영 시인이 해녀에 대해 쓴 시의  시집 기사도 함께 참고 자료로 첨부한다.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61658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205

<김길호의 일본이야기>해녀가 된 우리 동창 김 갑선씨 - 제주투데이
www.ijejutoday.com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참가를 위해 2월 24일 오사카에서 서울에 갔다. 일본 전국 민단 조직에서 약 1,200명 중에 필자가 속해 있는 이쿠노 ...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