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2018년 6월 13일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여러 인물들이 자천타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제주는 선거 때만 되면 정책보다는 궨당 선거가 판을 뒤흔든다. 내년 지방선거는 지역의 미래를 바꿀 기회가 될 것이다. 당을 떠나 진정 지역의 시각에서 지역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지방선거 1년을 앞두고 서울의 시각이 아닌 지역의 시각에서 새로운 정치의 그림을 그릴 후보가 탄생하길 고대하며 지역 정치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기사를 연재한다.>

제주공항에서 신제주로 올라오는 도로 옆에 도령마루가 있다. 공항에서 내린 관광객들은 도령마루를 지나 신제주로, 애월로 차를 타고 지나간다. 4차선 도로로 둘러싸인 이곳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다. 소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는 이곳에서 1948년 11월 3일 주민 7명이 토벌대에게 총살당했다. 당시 미군정보고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1월 3일, 7명의 민간인 시체가 제주읍에서 발견됐다. 그 피해자들은 제주읍의 공산주의자들인 것으로 보고됐다.

보고서 내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민간인들의 시체를 발견한 미군이 토벌대에게 그들이 누구인지를 물었고 토벌대가 ‘공산주의자’라고 대답했다는 의미이다. 가해자들이 말한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미군은 의심하지 않았다. 도령마루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아니었다. 그들은 평범한 주민들이었다. 현기영은 이 도령마루의 학살을 「도령마루의 까마귀」라는 단편에서 자세히 그리고 있다. 도령마루는 1948년 11월을 전후해 시작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상징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이 제주 4·3의 비극을 증언하는 장소라는 사실을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은 잘 모른다. 자동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그곳을 지나갈 뿐이다.

제주에서 1948년 속칭 ‘초토화 작전’으로 인명 피해를 입은 지역은 셀 수 없이 많다. 피해인원만으로 따진다면 도령마루는 다른 지역과 비교되지 않는다. 하지만 도령마루는 제주 4·3의 대학살을 상징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공항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도령마루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가듯 한국에서 제주 4·3은 오랫동안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유령의 비극이었다. 제주 4·3특별법이 제정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 원수의 자격으로 당시 국가폭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에게 공식 사과했지만 아직도 제주 4·3의 진실은 미완의 섬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도령마루를 지나서 신제주 초입에는 제주중국성개발이라는 중국계 회사가 세운 중국어 간판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金海岸別墅 开盘了’, 굳이 번역하자면 ‘돈 되는 해안별장 개장 예정’ 쯤 된다. 제주 4·3의 비극을 상징하는 도령마루에서 중국어 입간판까지 차를 타고 채 1분도 되지 않는 거리는 제주가 지나온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절멸’ 수준의 대학살이 끝나고 제주는 빠르게 근대화의 길로 접어든다. 반공을 국시로 한 쿠데타 세력들은 정권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변방’ 제주의 개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지역에서는 아직도 박정희에 대한 신화가 곳곳에 남아있다. 대표적인 것이 제주와 서귀포를 잇는 횡단도로인 5·16도로이다. 제주 4·3이 반공과 친일을 내세운 정치세력에 의한 무자비한 학살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들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계승한 박정희의 이름을 딴 도로가 버젓이 남아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제주에서 열렸던 ‘태극기 집회’(언론의 이러한 명명법은 분명 문제가 있다. 정확히 하자면 친박 집회라고 하는 것이 맞다.)에 참석한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는 삼다수 병을 들고 이렇게 외쳤다. “삼다수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어승생 댐을 만들지 않았다면 삼다수는 만들 수 없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전직 지사의 발언을 단순히 개인의 정치적 소신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1960년대 제주에는 ‘관광낙원’이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제주개발특별법에서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에 이르기까지 제주는 대한민국의 변방에서 누구나 한번 쯤 오고 싶어 하는 섬이 되었다. 하지만 근대에 대한 지역의 자생적인 열망은 중앙 정부가 의도한 기획의 범위 안에서만 승인되고 용납되었다. 지역 공동체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정신들은 전근대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지역을 버려야 지역이 살 수 있다는 역설은, 한 마디로 중앙의 일원이 되어야만 지역에서 목소리 높일 수 있고 출세할 수 있다는 지역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러한 지역의 한계는 단순히 지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과도한 중앙중심주의가 남긴 한국 사회의 폐해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지역에서 지역의 가치를 지니고 산다는 일은 때로 서울로 대표되는 중앙의 권력과 대립해야 하는 일종의 숙명같은 것이다. 지역에서 나고 자라 지역에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면서 살아내야 하는 이들에게 중앙은 이해할 수 없는 권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로지 당선가능성만을 염두에 둔 중앙 정치 세력의 낙점이 있어야만 거대 정당의 후보로 나설 수 있는 현실에서 지역의 가치를 오롯이 지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2010년에도 민주당은 성추행 전력이 있었던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의 복당을 거론한 적이 있다. 당시 제주 지역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명백한 허물이 있는 사람을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민주당이 영입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제주도민을 모욕하는 처사라는 지적이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우근민 전 지사는 3년 뒤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도령마루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것처럼 중앙 정치는 선거철만 되면 지역의 유력 후보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들의 과거 행적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중앙당이 낙점만 하면 당의 지지기반을 업고 무난히 당선할 수 있다는 정치적 셈법만이 우선시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도령마루에서 중국어 입간판까지 오는 짧은 도로를 지나며 제주의 가치가 무엇인지, 지역의 문제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상 초유 현직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광장의 목소리들은 단순히 대통령 한 사람 바꾸자는 함성이 아니었다. 박정희-박근혜로 이어지는 유신 체제를 바꾸자는 촛불이었고 지역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왜곡된 정치 구조를 무너뜨리자는 거대한 파도였다. 이제 우리는 광장의 함성 앞에서 다시 물어야 한다. 촛불로 타올랐던 수많은 민주주의 불꽃들은 과연 무엇을 위한 외침이었던가.

20차례 열렸던 제주 촛불 집회의 한켠에는 5·16도로의 이름을 바꾸자는 시민들도 함께 했다. 5·16 쿠데타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반역사적 범법 행위였다. 제주의 촛불은 대통령 박근혜만을 탄핵하자는 외침이 아니었다. 지역에 뿌리 깊게 박힌 박정희의 그늘을 지워야 한다는 선언이고 행동이었다. 촛불의 의미는 대통령 한 사람만을 바꾸는 것에 있지 않다. 그것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정강정책은 묻지도 않고 중앙 정치에 줄을 대는, 우리 안의 박정희-박근혜를 응징하자는 함성이었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과거 전력은 문제 삼지 않는 중앙 정치의 몰염치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외침이었다.

촛불의 광장에서 우리는 투창과 비수를 한 손에 들었다. 투창이 대통령 탄핵을 향해 던지는 날카로움으로 빛났다면 비수는 우리 안의 적폐, 지역의 모순을 정면으로 바라보자는 반성의 피로 물들었다. 

선거철만 되면 개발지상주의가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지역 정치의 판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오라관광단지개발, 예래동 휴양 단지 조성 등 제주 사회의 갈등은 많은 부분 개발주의의 맹신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18년 지방선거가 탈성장, 탈개발의 새로운 시험대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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