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18일) 아침, 삼양동 선사유적지 인근에 사는 독거노인 A씨의 작은 방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13평 되는 작은 방과 부엌의 세간살이들을 조심스럽게 마당에 내놓고, 두꺼운 이불들도 볕 좋은 옥상에 널어두면, 이들의 작은 마법이 시작된다.

지난 18일 제주희망봉사단 회원들이 제주시 삼양동에 거주하는 한 독거노인의 집을 찾아 주거환경개선 봉사를 하고 있다. 13평 되는 작은 방 한 칸, 부엌 하나이지만 적지 않은 세간살이를 내놓고 눅눅한 벽지와 장판을 드러내 청소한 뒤 새로 도배를 하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회원들은 호흡을 맞추며 능수능란하게 어르신의 집은 새단장 해드린다. @제주투데이

해묵은 집안 먼지들이 빠져나가고 묵은 내 나던 벽지와 장판이 거침없이 떼어진다. 도배지에 풀 먹이는 봉사자들, 꼼꼼히 방안 치수를 재고 도배지를 잘라내는 봉사자들, 손발 맞춰 구석부터 슥슥 새 장판과 새 벽지를 붙여내는 봉사자들... 이날 현장에 투입된 제주희망봉사단 회원은 총 30여명, 그 중 벌써 17년째 힘을 보태고 있는 이민철씨를 만났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바로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을 살피는 일입니다. 전 그래서 봉사를 하나의 종교처럼 인생의 중요한 축으로 여깁니다. 종교를 믿듯, 봉사를 믿는 거죠.”

제주희망봉사단 회원인 이민철씨는 지난 2012년도부터 2016년까지 봉사단 단장을 맡기도 했다. 현업은 자동차 정비로 바쁘지 않은 날이 없지만 '봉사는 종교다'라는 일념으로 봉사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올해 17년째 봉사에 접어든 그는, 고향의 작은 터에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며 봉사하는 게 꿈이다. @제주투데이

이민철 씨에게 봉사는 종교다. 봉사를 통해 나누는 삶이야 말로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첫 봉사의 시작이 2001년, 30대 중반이었다.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한 때지만 사실 그 전부터 그에게 봉사는 익숙한 일이었다. 화북바르게살기운동에서 지역을 위한 봉사도 마다하지 않았고 자동차 정비일을 하는 그의 재능이 쓰일 수 있는 곳이면 때마다 봉사를 해왔다. 어렸을 적부터 모친의 ‘나눔’을 보고 자란 그에게 봉사는 당연했다.

“제가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봉사’가 당연하다 여기듯, 우리 아이들도 헌혈이며 요양시설 봉사를 찾아서 합니다. 아내도 요양원에서 복지사로 일하고요. 가족이 ‘봉사’를 중요하게 여기니 행복도도 절로 올라가지요.”

이민철 씨는 제주희망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지만, 단체 재원의 한계로 주거환경개선 사업을 보다 폭 넓게 시행하지 못 할 때도 있다고 얘기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려운 이웃의 집을 더 좋게 단장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제주투데이

이 씨는, 자신에겐 기계를 만지는 재능이 있으니 누군가에게 이 일이 도움이 됐으면 했다. 그러다 보일러 시설일을 하는 사람과 인연이 닿고, 또 도배 일을 하는 사람과 인연이 닿고, 그렇게 서로 인연이 닿아 시작된 게 ‘제주희망봉사단’이다. 이 씨를 포함 10여명의 전문가들로 시작된 제주희망봉사단은 현재 회원수만 100여명이 넘는다. 현재 제주희망봉사단은 매월 셋째주 일요일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주거환경개선을 주요 활동으로 하고 있다.

“날씨가 아무리 궂더라도 태풍이 오지 않은 한, 간이천막을 이용해서라도 이날만큼은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봉사합니다. 휴일이라 가족이 함께 와서 봉사하기도 하고요. 언제나 즐거운 날이죠. 서로 도우면서 웃으면서 하는 봉사라 힘든 점이 없습니다.”

2000년대 초반 10여명의 회원으로 출발한 제주희망봉사단은 처음에는 전문가들의 재능 기부 형태로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 현재는 회원수가 100여명으로 매월 셋째주 일요일마다 봉사활동을 하는 정기 회원은 50명 내외다. 현장에 못 오더라도 회비와 자재공급 등으로 도움을 주는 회원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지자체나 나라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을 찾아 봉사하고 있다. @제주투데이

다만 재원이 넉넉지 않아 한계를 만날 때는 어려움이 있다. 주거환경개선이라는 게 도배와 장판만 새 것으로 바꾸는 게 아닌 페인트 작업과 지붕 누수공사까지 웬만한 것들에 손을 붙이려면 끝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지자체의 지원과 봉사단 회원의 회비로 운영되고 있어 한정된 재원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가능한 조금 더 어려운 이웃의 집을 살기 좋게 손봐드리고 싶지요. 아마 함께 봉사하는 회원들의 마음도 그럴 겁니다. 언젠가 지원이 더 넉넉해지고 폭이 넓어지면 그땐 보다 튼튼하고 깨끗하고 꼼꼼하게, 집을 고쳐드리고 싶어요.”

매달 정기적으로 하는 봉사로 회원들의 손발은 따로 맞추지 않아도 척척 잘 맞는다. 집안 정리부터 수거된 도배지 정리, 재단과 풀칠, 마감까지 능수능란한 회원들의 움직임에 이날 주건환경개선사업으로 보수한 2곳의 집은 금새 새단장을 마쳤다. @제주투데이

이 씨는 제주희망봉사단 활동 외에도 한울봉사회 활동으로 매달 정기적으로 제주장애인요양원을 찾아 원생들의 생일을 챙긴다. 생업인 자동차 정비일을 하면서도 가능한 봉사하는 삶의 박자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렇게 봉사의 폭을 넓히며 곳곳에서 만나는 선배 봉사인들의 삶은 항상 귀감이 된단다.

“여든이 다 되어 가는 데도 매일 같이 봉사하는 선배도 계시고요. 자기만의 열정을 갖고 항상 봉사하는 삶을 사는 선배님들도 계십니다. 이분들은 남에게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짜 봉사의 삶을 살고 계시죠. 언제나 모범이 되는 그런 선배 봉사인들을 보며 배우는 점이 참 많습니다.”

이민철 씨는 봉사의지가 있어도 쉽게 적응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아 중도 포기하는 봉사인들이 많다며, 선배 봉사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후배들을 이끌어주고 잘 적응하도록 서로 도움을 주는 지역 봉사사회가 되길 바랐다. @제주투데이

자신도 17년이 넘는 짧지 않은 봉사의 삶을 살아왔는데도, 더 헌신적인 선배 봉사인들이 많다고 소개하는 이민철씨. 그에게 소원이 있다면 고향의 자그마한 땅에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다. 이미 아내와도 상의한, 삶의 목표 중 하나다. 그 소박하지만 큰 꿈을 이야기하는 이 씨의 눈빛이 반짝인다.

“봉사는 혼자만 하는 게 아니죠. 대부분 서로 도우며 이끌어주며 함께 하게 됩니다. 봉사하시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아요. 처음 봉사를 시작하는 분들의 적응을 함께 돕고,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 봉사인들의 삶을 함께 이야기하며 봉사인들의 공동체를 넓히면 그만큼 우리가 사는 지역이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제주희망봉사단의 땀방울로 혼자 사는 어르신의 방 한 칸과 부엌이 새단장을 마쳤다. 이날 봉사한 회원들은 날이 더운 와중에도 즐겁게 작업을 마치며 새롭고 따뜻한 기운이 어르신의 집안에 늘 머물기를 바랐다. @제주투데이

틈틈이 인터뷰를 마친 이 씨가 서둘러 도배지 재단 작업을 시작한다. 아침 시작된 작업이 정오를 향해가면서, 뜨거워진 햇볕에 회원들의 땀도 더 두꺼워진다. 호흡을 척척 맞추며 진행된 이들의 작업으로 어느새 독거노인 A씨의 작은 방 한 칸이 새 기운을 품는다. 모쪼록, 그 기운이 오래 오래 이어져 어르신이 건강하고 밝은 삶을 누리셨음 하는 봉사인들의 마음이 가득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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