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신관홍 제주도의회 의장, 더불어 민주당 강창일.오영훈 국회의원 12일 '3자 회동'이 가져온 파장이 만만치 않다. 그동안 논외되어온 행정체제 개편, 선거구획정 방안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3자 합의가 가져올 복잡한 정치적 셈법의 승자는 누구인가.

먼저 3자 합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합의 핵심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적용할 제주특별자치도의원 선거구 획정 문제 관련 의원정수 조정방법을 결정하기 위해 빠른 시일 내에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이 결과를 담은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의원입법으로 발의한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제주도선거구 획정위원회의 권고안은 당장 시급한 과제로 '도의원 41명 정수를 43명으로 2명 증원하는 것으로 특별법을 개정'하고, 향후 7단계 제도개선 과제로 '도의원정수 결정 권한을 제주특별자치도로 권한 이양'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실상 도의원 정수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결론이 나온 배경에는 최근 10년간 제주인구가 8만 여명 이상 증가하면서 2007년 헌법재판소가 정한 시도의회의원의 상한인구 35,444명을 초과하는 지역이 생겼기 때문이다. 제6선거구인 삼도1동, 삼도2동, 오라동은 196명, 제9선거구인 삼양동, 봉개동, 아라동은 16,981명을 초과했다. 인구 증가로 인한 대표성 문제가 거론되었다.

3자 합의는 선거구 획정 무력화한 야합

그런데 이번 3자 합의에서 선거구 획정논의 원점으로 돌리고 도민 여론 조사를 재실시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당장 선거구 획정 위원회 권고를 무력화하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기존 민의수렴 논의 구조를 뒤엎는 심각한 절차적 민주성 훼손이라고 지적한다. 도내 정치권도 이번 합의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당 제주도당 “시장을 직접 뽑고자 하는 제주도민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발끈했고, 정의당은 여론조사를 통한 의원정수 조정에 대해 “비례대표와 교육의원 정수를 줄이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서 논의되어왔던 시장 직선제 실시 등 행정체제 개편 논의마저 3자 합의 과정에서 뒤집히면서 이런 반발은 충분히 예상됐던 부분이기도 하다.

3자합의 배경은 무엇...도민 여론보다 정치적 셈법만 계산

우선 3자 합의가 나오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의원 정수를 늘리는 문제, 시장 직선제 등은 국회 입법이 필요한 부분이다. 제주도 차원에서 논의된다하더라도 현행 특별법을 개정해야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현재 특별법 제36조(도의회의원의 정수에 관한 특례)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원(이하 "도의회의원"이라 한다)의 정수(제64조에 따른 교육의원 5명을 포함한다)는 「공직선거법」 제22조제1항·제3항 및 제4항에도 불구하고 41명 이내에서 제38조에 따른 도의회의원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정하는 바에 따라 도조례로 정한다”고 되어 있다. 의원 정수가 41명 이내라고 되어 있어서 인구 증가로 인한 표의 대표성이 문제가 된다하더라도 입법 절차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특별법 개정과 관련해서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더불어민주당 3명의 국회의원들의 입장이 중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 수준으로 격상하고 자치권과 자치재정권을 부과해서 실질적인 지방 분권을 이룰 수 있도록 개헌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제주출신 국회의원들은 개헌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제주도만을 예외적으로 해서 특별법을 개정해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한다 하더러도 국회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논리 개발이 필요한데 현재 제주도 내에서 논의되어 온 과정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이번 합의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개헌 논의는 사실상 블랙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을 덮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개헌 이슈를 던졌던 점을 생각해보자. 개헌은 그 자체로 모든 논의를 빨아들이는 정치적 힘을 지니고 있다. 또한 현재 권력 체제에 대한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사회 진영에서도 권력 체제에 대한 개헌뿐만 아닌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개헌에 대한 다양한 요구들이 잠재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개헌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여소야대 정국에서 개헌을 위해서는 국민의당, 바른정당 나아가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까지도 설득해야 한다. 현재 장관 임명, 추경안 협상 과정만으로도 문재인 정부는 연일 힘든 싸움을 해왔다.

물론 '3자 회동'에서 결정된 내용은 조속히 여론조사를 실시해 이달 25일쯤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받아들여 의원입법 발의로 11월까지 제주특별법이 개정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합의는 그야말로 합의에 불과하다.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른 변수가 많다. 법적 구속력도 없는 합의가 과연 그동안 도민사회의 여론과 논의, 의견 수렴 과정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특히 기존 선거구 획정 위원회의의 여론 조사 과정 자체를 불신하면서 새로운 여론조사를 하겠다는데 그 명분도 빈약하다.

입법권은 분명히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권한이다. 하지만 그 권한의 행사는 민주적 절차성을 지녀야 한다. 의원 입법이라 하더라도 상임위 차원에서 여러 차례 공청회를 실시하고 위원회 전문위원들의 검토 의견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의적 법률 해석이나 특정 정파나 이익단체를 위한 입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법률 제정과 개정의 공공성 문제가 여기에서 파생한다. 그런 점에서 지역 국회의원이 주도가 되어 결정한 여론조사 재실시 방침은 기존에 운영되어온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절차적 민주성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선거구획정위는 도의회, 학계, 법조계, 언론계, 시민단체에서 추천한 10명과 선관위 추천 1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됐다. 정치권에서 개헌논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이 과정 자체를 없던 것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한 지난 2월 결정된 사항을 이제와서 3자 합의를 통해 무력화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의원 정수는 그대로 두고 분구를 하면 당장 비례대표 의석이 줄어든다. 독일식 정당 명부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도의원의 비례대표 의석을 줄인다면 그 자체가 대의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합의가 이뤄졌는가.

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정치적 책임 모면하려는 꼼수 지적도

그 이면에는 국회, 도의회, 제주도지사의 복잡한 정치적 셈법이 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국회입장에서는 행정체제 개편과 의원 정수 확대가 입법 대상이라는 점에서 논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고도의 계산이 숨겨져 있다. 명분은 실질적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특별법을 재개정해야 하는 일을 막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내는 제주도가 그동안 제주특별자치도 헌법적 권한 부여 등을 요구해왔는데 이러한 논의 자체가 중앙 정치권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일종의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경우도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행정체제 개편이나 의원 정수 확대 같은 민감한 문제와 결부되어 선거를 치르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이 있을 수 있다. 가뜩이나 현재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행정체제 개편이라는 민감한 문제가 불거지면 자칫 정치적 책임을 도지사가 져야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특히 행정체제 개편 문제는 사실상 특별자치도의 출범 초기 전직 지사들의 정치적 판단을 물어야 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우근민, 김태환 전 지사는 지난 총선에서도 사실상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아직 두 전직지사 정치적 퇴물 취급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김태환 전 지사는 지난 13일 ‘제주특별자치도의 헌법적 지위확보 방안’ 세미나에 참석했다. 두 전직 지사가 여전히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상황에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원희룡 지사도 이 두 전직지사와 정치적으로 척을 지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신관홍 의장이다. 제주도의회 의원들 사이에서도 여러 이견이 있는 상황에서 서둘러 이런 3자 합의를 한 상황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역 정치권에서 도의회 의장으로서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신한 결정이라고 한다면 정치적 패착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번 3자 합의는 국회의원, 원희룡 지사, 의회 모두에게 정치적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위험한 화살을 날렸지만 과연 그 화살의 방향은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당장 국민의당 제주도당의 반응만 보더라도 그렇다. 국민의당은 이 같은 결정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은 “시장직선을 가능하게 하는 자치조직권 특례 규정을 담은 제주특별법 개정을 막연히 개헌과 지방분권 이후로 미룬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주장”이라고 공격했다.

원희룡 지사에 대해서는 “지역 국회의원과 도지사가 공식적인 회의를 진행하면서 의제를 국회의원이 일방적으로 선정한 적이 있는지 점검해보라”며 “국회의원들이 논의 유보를 선언하더라도 논의를 요청하는 진정성과 추진력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라고 공격의 화살을 날렸다.

제주도의회 의원들에게도 “의장이 도의회 수장인 것은 맞지만 개별 의원들의 의견을 모두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의원들 모두 독립된 기관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3자 합의 당사자 모두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소수 정당인 정의당은 비례대표 축소될 수도 있다는 정치적 꼼수라고 지적한다. 정의당은 “지난 2월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도의원정수를 41명에서 43명으로 2명 증원하는 권고안을 확정하고, 제주도와 제주도의회에 전달했다. 이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정당과 이해관계자 의견청취, 도민공청회, 16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도 진행했다”며 “이를 무시하고 또 다시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것은 제주특별법에 의해 보장된 선거구회정위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른정당,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합의의 당사자이기에 별다른 논평이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3자 합의는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최악의 합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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