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는 현재 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돌고 돌아 제자리라는 말이 있다. 제주행정계층구조 개편과 관련해서 하는 말이다. 우근민-원희룡 도정에 걸쳐 행정시장 직선제로 가면 어떤가의 시도가 거의 불발로 가고 있다. 행정시장 직선이 만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왕적 도지사를 조금이나마 견제하기 위해서, 아니면 도지사 업무의 과잉부담을 덜어주려는 취지에서, 우선 시장만이라도 선거하게 해 달라고 여기저기서 요청되었다.

그러나 행정시장 직선제는 팔자가 센 모양이다. 이래저래 시장 선거는 물 건너 간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보수적 정부라 기초자치단체 부활은 언감생심이고 행정시장 직선제마저도 중앙정부에서 거부할 것 같아 못하더니만,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문재인 정부에서는 행정시장 직선제 정도가 아니라 2018년 분권형 개헌 때 제주특별자치도의 헌법적 지위를 확보하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요청된다며 유예되고 있다.

그동안 제주도민 다수가 아쉬운 대로 행정시장이 안정적인 임기와 권한을 갖고 업무 수행을 잘 해 주길 원하고 있었음에도, 유독 제주의 유력 정치권에서는 마이동풍이었던 게 시장 직선제였다. 며칠 전에는 원희룡 지사가 10개월도 남지 않은 서귀포 시장을 전격 교체하자, 행정시 시장이란 게 특별자치에서 어떤 위상과 역할을 갖는지에 대해 새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애초에 특별자치도를 설계했던 참여정부의 분들은 행정시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행정시를 갖는 특별자치도가 민주주의의 발현이 아니라 효율성 증진이라는 미명하에 도지사의 전횡 가능성만을 높여주는 것임을 정말 몰랐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알았다면 사기이고, 몰랐다면 무능이다.

행정시는 처음부터 태어나서는 안 될 것이었다. 이름부터가 눈에 적절치 않다, 시 앞에 행정을 갖다 부친 건, 그만큼 행정 중심적인 접근으로 특별자치를 기획하였다는 것일 게다. 그러나 이왕 특별자치로 갈 요량이었다면, 도만 제주특별자치도일 게 아니라 시도 제주특별자치시-서귀포특별자치시로 명명해야 했었다. 아니면 4개의 동서남북 특별자치시로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행정시를 안은 채 출범한 제주특별자치도가 졸속이었다는 건, 출범 이후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던 걸로 보면 더욱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행정시라는 이름과 기능이 준연방제 수준의 특별자치 취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장치인데도, 앞으로 몇 년간 더 이름만 번지르르한 제주특별자치도의 도민들은 잘못 만들어진 행정시 체제에서 살아가야 한다니, 답답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조급하기도 하고 또 도민 다수가 원한다는 민주적 입장에서, 주민자치연대 등 일각에서는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권고한 행정시장 직선제 안을 놓고 주민투표 하자는 의견도 있다. 시장 직선이 꼭 분권형 개헌을 한 이후에야만 할 것은 아니라는 주장에 더 눈길이 간다. 특별시장만이 아니라 아예 특별읍면동장 선거까지도 하여 제주특별자치=주권재민의 실현으로 가는 게 더 제주다움적 행정체제 개편이 아닌가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면, 행정시장을 선거로 할 거냐 임명할 거냐 혹은 도지사 런닝메이트로 할 거냐의 쟁점은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행정시로 존치할 것인지 아니면 특별자치시로 할 것인지 그리고 제주도의 시를 몇 개로 할 것인지가 정해진 연후에 그 책임 맡을 장을 어떻게 위촉할 것인가로 논의가 이루어져야 했다. 이 점에서 이번 행정체제개편 위원회가 행정시를 제주도 동서남북 4개로 제시한 것은 향후 4개 특별자치시 체제로 행정체제 개편을 할 때 논거로 잘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번에 우선 제주도 2개 행정시를 4개의 특별자치시로 바꾸는 특별법 개정은 필요해 보인다. 그 이후 4개 특별자치시 체제로 가는 길목에서 많은 조율과 조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제주도가 지난날 2시-2군 체제하에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가운데 두고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이 지리적으로 나누어져 있었던 기형성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바로 잡으면서 동시에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제주도 동서남북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살려나가는 지혜가 요청된다.

2018년 분권형 개헌 때 제주특별자치도가 기초자치단체 부활로 가든 아니면 어떤 제3의 어떤 창의적 준연방제가 도입되든 관계없이, 4개 특별자치시 체제를 미리 준비하는 건 유용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동안 연동-노형과 일도지구 등 구 제주시로 쏠려있는 제주도의 중력을 4개 특별자치시 체제를 통해 조금이나마 더 제주도 동서남북으로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고 또 각 특별자치시 별로 고유성과 전향성을 담아내면서 주민자치의 수준과 역량을 높여나가도록 하는 데에 특별자치의 원 취지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수준에서만 분권과 균형발전이 요청되고 있는 게 아니라, 제주도 지역 차원에서도 분권과 균형발전이 크게 요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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