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끝나면 폭염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숨이 턱에 찼다. ‘평화야 고치글라 강정에 평화를’를 외치며 걷는 걸음에 땀냄새가 짙게 배어났다. 2017년 강정평화대행진 첫날. 강정 해군기지 앞에서 출정식을 한 평화대행진 참가자들은 동진과 서진으로 나눠 각각 길을 떠났다. 출정식이 채 끝나기 전에 하늘에선 난데없이 폭우가 쏟아졌다. 참가자들은 내리는 빗줄기를 온 몸으로 맞았다.

강정 주민들은 2008년 강정 해군기지 반대를 외치며 처음 길을 걸었다. 오로지 두 다리만으로 제주 땅을 밟았다. 10년 동안 흘린 땀방울들은 길 위에서 단단하게 다져졌다. 해군기지가 준공되고 이제 싸움은 끝났다고 말하는 냉소는 그들의 길 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길은 걸어가는 자의 몫이고 걸어가는 자의 흔적이었다. 그 10년의 흔적은 제주 땅 곳곳에 지층처럼 굳게 각인되었다. 이제 다시 10년의 발걸음이 지나가는 자리. 걸어가는 길마다 다시 깃발은 노랗게 피어났다.

주최측이 밝힌 참가인원만 400명. 5박 6일간의 대행진 기간에 일부 구간만 참여하는 사람들을 모두 합치면 연 인원 3천 여명이 함께 길을 걸을 예정이다. 65만명 중에서 3천 명은 얼마나 작은가. 하지만 그 작은 걸음이 모여 연대의 함성을 만드는 기적을 강정은 보여주었다. 지칠법도 하지만 끝내 지치지 않는 걸음들이 한 여름 뙤약볕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강정을 출발해 월평을 지나, 법환리를 지날 때 길은 길게 동쪽으로 뻗어있었다. 저 길에서 강정 해군기지의 반대 10년의 싸움이 시작됐고 이어질 것이었다.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며 싸움을 계속하는 성주의 주민들도, 용산 참사 유가족들도, 제주의 대안학교 보물섬 학교 아이들도 모두 한 마음으로 묵묵히 폭염의 한낮을 견뎌내고 있었다. 남녘의 마을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은 목청을 모아 외쳤다. “평화야 고치글라” “강정에 평화를 평화가 길이다”

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해 군사기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었다. 국책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기도 했다. ‘좌파들’을 색출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마치 전쟁을 벌이듯 강정을 ‘접수’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그 폭력 앞에서 강정 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무너짐은 패배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결기였고 종소리였다. 강정에서 벌여졌던 국가 폭력의 실상을 알리고, 오키나와와 용산과 세월호와 연대했다. 그 연대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져놓았다.

오키나와 다카에와 헤노코에서 미군기지 반대를 외치고 있는 오키나와 활동가들은 휠체어를 끌면서 첫날의 일정을 완주했다. 그들에게 강정은 오키나와였다. 싸움은 바다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었다. 그렇게 바다를 건넌 행진의 연대는 폭염과 폭우를 뚫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갔다.

문규현 신부도, 강정마을 강동균 전 마을회장도 평화라는 깃발을 들고 폭염의 한낮을 느리게, 그러나 정확히 걸어가고 있었다. 8시를 조금 넘어 시작된 행진은 오후 5시 30분께 1일차 목적지인 남원 체육관에 도착하면서 끝이 났다. 길에서 먹는 식사는 달고도 맛있었다. 길이 만들어낸 성찬이었다. 저녁의 성찬을 축하라도 하듯 제비는 저녁 어스름의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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