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서 펼쳐지는 일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이라면, 그래서 분명 현실은 현실인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현실을 뭐라고 해야 할까. 진실과 거짓이 착종된 채 진실이 거짓으로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지옥 속에서 정의와 진실에 눈 감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위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정의와 진실을 위해 죽은 자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택시운전사」는 또 다시 이러한 물음을 우리에게 묻는다. 그런데 「택시운전사」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동안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문화예술 작품들의 대부분이 한국사회 내부자의 시선에 의한 것, 즉 광주 시민, 지식인 및 민중의 시선에 의해 탐구됐다면, 「택시운전사」의 경우 한국사회 내부자의 시선뿐만 아니라 외부자의 시선도 함께 어우러져 1980년 5월 광주를 뚜렷이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귀에 익숙한 독일 기자 힌츠페터의 시선이 「택시운전사」의 주요한 서사를 이룬다. 이미 알고 있듯이, 힌츠페터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자행된 한국군에 의한 광주의 민간인 학살을 외신으로 보도하지 않았다면, 광주의 참상뿐만 아니라 광주민주화항쟁의 실체가 어쩌면 역사의 강요된 망각의 늪 속에 오랫동안 묻혀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무리 치외법권이 인정되는 외국인 기자라고 하지만 냉엄하고 위협적 정치현실의 사위에서 언론보도의 자유가 극도로 억압되고 위축되는 처지에서 힌츠페터의 진실을 향한 언론 정신의 숭고성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힌츠페터가 증언했듯이 그를 광주까지 태우고 간 한 택시운전사의 존재를 잊을 수 없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택시운전사」는 이처럼 독일 기자 힌츠페터의 시선과 그의 곁에서 광주를 목격한 택시운전사의 시선으로 구성돼 있다. 이 두 개의 시선은 동일한 사안에 대해 포개지는가 하면, 갈라지기도 하고, 서로 다른 것을 주목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들 사이에 형성되는 갈등과 대립 및 충돌 그리고 화해와 만남 및 공유의 과정은, 단순히 외국인과 내국인으로 설정되는 표면적 이유를 넘어서 1980년 5월 광주에 대한 이해 자체를 성찰하도록 한다. 따라서 「택시운전사」에서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광주민주화항쟁 안팎을 이루는 것들을 어떻게 접근해가는지 그 도정 속에서 우리가 망각했거나 심드렁히 지나쳐왔던 것들에 대한 정동(情動)을 ‘함께 느끼고[同感]’, ‘그 정동을 움직이도록[動感]’하는 데 있다. 이것은 광주민주화항쟁의 역사의 생동감을 추상화한 채 기념하는 것과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래서 광주민주화항쟁을 역사에서 기억할 기념일로 화석화함으로써 때가 되면 으레 관성적으로 기억의 한 자락을 끄집어내야만 애도에 동참하는 것과도 거리를 둔다. 우리가 정작 경계해야 할 것은 광주에 대한 제도화 자체가 아니라 이 제도화가 고정되고 정태적인 광주를 정형화한 나머지 지속적으로 씌어져야 하고 탐구돼야 할 광주민주화항쟁의 역사를 봉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의 생성을 보증하는 제도화가 아닌 역사의 화석화를 기념하는 제도화를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광주민주화항쟁 안팎을 이루는 정동을 동감(同感/動感)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택시운전사」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한 역사를 생성하는 감각으로 다가온다. 여기에는 힌츠페터를 실제 도운 택시운전사의 역할이 있다. 영화 속에서 ‘서울 택시운전사’로 주목되는 김만섭은 아내와 사별한 후 외동딸과 함께 개인택시 영업을 하면서 궁색한 삶을 살고 있는 민중이다. 서울에서 억척스레 살고 있는 민중처럼 그는 개인택시를 타면서 돈을 많이 벌어 딸과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있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단적으로 보이듯 그의 삶은 역사와 정치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아니 진보적 정치와는 애시당초 거리를 둔 친정부 성향의 정치감각을 지닌 평범한 민중에 불과하다. 그러던 그는 서울과 전남 광주를 왕복하는 고가의 택시비를 벌기 위해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에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충격적 현실을 체험한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국군이 무고한 광주 시민을 대상으로 총을 쏘고 폭력을 가하면서 숱한 생목숨들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서울에서 택시운전을 하며 친정부 성향을 지녔던 김만섭은 도저히 자신의 상식으로 믿을 수 없는 현실이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켜본 광주 시민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대로 빨갱이나 공산폭도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독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민주시민일 뿐이다. 비록 광주의 거리는 혼란스럽고 시내의 시스템이 온통 마비돼 있지만, 광주 시민들은 비참한 죽음을 서로 애도하고 위무하면서 서로의 상처와 슬픔을 나눠갖고, 정의를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모습을 김만섭은 지켜본다. 힌츠페터는 기자의 시선으로 광주의 이러한 모습을 기록하고 촬영한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하지만 김만섭은 이 모든 것이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 김만섭에게 광주의 역사적 정동은 좀처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힌츠페터를 남겨둔 채 혼자 광주를 벗어난다. 공포의 도가니인 광주를 벗어나 딸이 있고 평범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는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김만섭은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서 다시 광주로 돌아간다. 광주로 돌아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힌츠페터와 애초 약속했듯, 그를 다시 태우고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물론, 이것은 표면적 이유로, 기실 그가 광주로 핸들을 돌린 이유는 짧은 시간 동안 그의 눈으로 보고 직접 체험한 광주의 역사적 정동에 ‘동감(同感/動感)’했다는 것이 맞다. 바로 이 장면, 김만섭이 핸들을 돌리기 전 건널목 신호등 앞에서 입술을 앙다문 채 눈은 갑자기 충혈되고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눈물을 흘리며 핸들을 돌리는 순간이야말로 역사의 정동을 온몸으로 껴안는 민중의 각성 그 숭고성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이제 각성한 김만섭의 시선에 비쳐진 광주는 예전의 광주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비쳐진다. 광주 시민의 일방적 희생과 민중의 덧없는 죽음으로 점철된 광주가 아니라 역사적 정의가 살아 숨쉬는 광주와 그곳에서 억울한 죽음이 희생당하는 광주로 다가온다. 때문에 김만섭은 힌츠페터가 취재한 광주의 진실이 광주의 바깥―한국과 전 세계로 알려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가까스로 광주를 벗어나고 힌츠페터는 광주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린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돌이켜보면, 1980년 5월 광주는 섬이었다. 외부와 단절된 고립된 섬으로, 힌츠페터와 택시운전사의 목숨을 건 정동이 없었다면, 광주의 역사적 정동은 더 늦게 그리고 왜곡된 형식으로 어떻게 다가올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택시운전사」는 힌츠페터와 택시운전사 두 영웅을 부각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힌츠페터는 죽을 때까지 자신을 도운 택시운전사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택시운전사 역시 아직까지 세상에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힌츠페터는 지식인으로서 택시운전사는 민중으로서, 광주민주화항쟁의 숱한 서사를 구성하고 역사를 생성하는 정동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1980년 5월 광주는 지금, 이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고명철>=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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