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유근/ 한국병원과 한마음병원 원장을 역임하시고 지역사회 각종 봉사단체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는 아라요양병원 원장으로 도내 노인들의 의료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

요즈음 책이나 글을 읽을 때에 마음에 갈등을 일으킬 때가 많아졌다. 필자의 직업이 영상의학이라 그런지, 잘못 된 게 자주 눈에 띈다. 모르는 사이이면 그냥 모르는 척 지나가버리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이것을 얘기 해줄까 말까 망설이게 된다.

이조 말엽의 유학자이신 유중교 선생께서 삼가희(三可喜)란 글을 남기셨다. 다른 사람이 나의 잘못을 지적하여 주는 것은 나에게 세 가지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첫째는 나의 잘못을 깨닫고 고칠 기회를 주는 것이고, 둘째는 그 사람이 나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셋째는 그 사람이 잘못을 지적하면 고치는 사람으로 나를 인정하여 주었다는 것이다. 참 옳은 말씀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 후로 다른 사람이 나의 잘못을 지적하면, 이 사람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한결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러다 문득 나는 다른 사람이 나의 잘못을 지적하여 주는 것을 고맙게 여기면서, 나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꺼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 것이, 유중교 선생님의 기준으로 보면, 혹 내가 그 사람을 속이는 것이고, 그 사람을 잘못을 지적해도 고치지 않는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번 용기를 내어 친구의 잘못을 지적하여 주었다. 우리 모임 중에 내가 보기에 혼자 너무 말을 많이 하는 친구가 있어 말을 좀 줄이도록 권하였다. 그랬더니 모임이 끝난 후 전화로 30분이 넘게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해 무척 섭섭해 하였다. ‘괜히 말했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 후로 잘못을 지적해 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저 잠잠히 있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의 전통 유교사상에서는,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그리 권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며칠 전 국제학교 학생들이 자원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영어로 된 동화집을 내었는데, 거기에 “Where did the stone came from?”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do 동사 다음에는 동사의 원형이 와야 하므로 “Where did the stone come from?”이 맞을 것 같았지만, 국제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들이 만든 책이고, 또 지도 선생님까지 계시다는데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지도 선생님께 전화 드렸더니, 흔쾌히 잘못을 지적하여 주셔서 고맙다는 얘기를 들어 흐뭇해 한 적이 있다.

또 언젠가 대학병원의 의료원장으로 계신 분이 자서전을 겸해서 의료계의 현황을 알려주는 책을 내셨는데, 경상도 출신이어서 그런지 “힘껏” “정성껏”이라고 써야 할 것을 계속 “힘 끝” “정성 끝”이라고 하고, “법석을 떤다”라고 하여야 할 것을 “법석을 뜬다”라고 쓰셨다. 앞으로 많은 독자들이 읽어야 할 책으로 여겨져 다음 인쇄할 때에는 고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되어 내 의견을 보내드렸다.

오래 전에 의료계의 내로라하는 분이 신문에 칼럼을 쓰면서 human dock(선박 수리를 할 때에 도크에 올려 검사하는 것처럼, 사람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것. 지금의 종합검진을 의미)을 human dog으로 오해하셨는지 “사람을 개처럼 검사하는 것인가?”하는 글을 쓰신 것을 본 적이 있다. 무식의 폭로나 다름없다 하겠다.

이처럼 공개된 자리에 글을 쓰는 것은 무척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나의 잘못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필자도 40여 년 전에 방사선 필름 판독을 하면서 “Increased density is decreased in the left upper lung field”라고 썼더니, 아일랜드 계 수녀님께서 ‘decrease’는 자동사이므로 ‘has decreased’로 해야 한다고 지적받은 적이 있다. 무척 고마웠다. 그 뒤로는 여러 해 동안 저지르던 그런 잘못을 다시는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들을 수 없는 곳에서 나의 잘못을 말하는 것은 나에게서, 유중교 선생님이 얘기한 세 가지 기쁨을 앗아가는 행위다. 우리가 진정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면, 앞에서 말씨를 가려가며 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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