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발걸음 빨라지고 있다. 원희룡 도정의 한 축을 담당했던 김방훈 전 정무부지사는 자유한국당 제주도당에 입당한 지 엿새 만에 도당위원장에 선출됐다. 원희룡 지사는 하반기 들어 부쩍 현장 도시사실, 읍면동 마을 투어 등 소통 행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14일 제주도의 핵심현안보고회 자료에는 민선6기 30번의 현장 도지사실 운영, 17번의 읍면동 마을투어, 2차례의 행정시 연두방문, 도, 행정시, 읍면동 도정정책협력회를 23차례 했다고 밝히고 있다. 제주도는 이를 근거로 적극적인 대화행정으로 신뢰행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소통행보는 의욕이 넘쳐 과욕이 되기도 했다. 16일 원희룡 지사는 서귀포시 동지역 마을 회장과의 간담회에서 “서귀포 출신 도지사 있을 때 발전계기를 잡아야 한다”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대중교통 체계 개편을 설명하기 위한 자리에서 말하기에는 다소 부적절한 내용이었다. 이 점을 의식해서인지 원 지사는 취재진에게 서귀포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다는 부분을 이야기하기 위한 취지라며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발언은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원희룡 지사의 발언이 알려지자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은 “선거용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원희룡 지사의 발언은 청산돼야 할 적폐”라고 몰아세웠다. 누가 보더라도 바른정당 소속인 원희룡 지사를 의식한 정치적 메시지였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이 원희룡 지사의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에도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은 문재인 정부의 제주공약 추진과 관련한 원희룡 지사의 행보를 ‘언론플레이’이라고 몰아 세운 바 있다. 강정 구상권 철회, 제주 4·3해결, 제주특별법 문제 등 문재인 정부의 제주 공약을 원희룡 지사가 자신의 치적처럼 언론에 발표하고 있다는 불편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원희룡 지사는 사실상 재선 출마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 입장에서는 현역인 원희룡 지사가 강력한 경쟁자일 수밖에 없다. 총선에서는 12년 동안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독식했지만 제주도지사 선거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던 패배의 기억이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나오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 일각에서는 ‘해볼 만하다’면서 ‘전투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여당이지만 지방정가에서는 야당 역할에 그치고 있는 당의 위상을 이참에 되찾아오자는 계산도 작용할 수 있다.

이미 당내에서는 김우남 도당위원장, 문대림 청와대 제도개선비서관, 강창일 국회의원 등의 이름이 자천타천 거론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제주시 갑 예비후보로 출마했던 박희수 전 도의회 의장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장관급인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장에 임명된 송재호 제주대 교수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당내 인사뿐만 아니다. 원희룡 지사와 맞서기 위해 새로운 인물을 영입할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다. 제주도당 고위 인사가 여러 인물들을 만나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다만 지방선거와 관련한 의사 타진인지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누가 원희룡 지사의 대항마가 되든 어느때보다 치열한 당내 경선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탄핵 정국 과정에서 ‘적폐’ 낙인이 찍힌 자유한국당 제주도당의 사정도 복잡하다. 일단 김방훈 전 정무부지사가 도당위원장에 선출되면서 내년 지방선거까지 도당을 단도리 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방훈 도당위원장이 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3개월 전 도당위원장 직을 사퇴해야 한다. 김방훈 도당위원장이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할 컨트럴 타워에 그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원희룡 도정에서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던 김방훈 전 정무부지사가 도당위원장에 나설 정도면 어느 정도 입장 정리가 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는다.

최근 지방 정가에서 각종 현안마다 논평을 내며 활발하게 움직하고 있는 국민의당 제주도당도 만만치 않다. 일단 장성철 도당위원장이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 지지 선언을 했던 강상주 전 서귀포시장도 내년 지방선거에 내심 욕심을 낼 수도 있다. 2006년과 2010년 두 차례 도지사 도전에서 본선 진출에 실패했던 강상주 전 서귀포시장에게는 2017년 지방선거가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제주도내 주요 정당들의 셈법이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해지고 있다.

정치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센터 이사장을 지낸 김한욱 전 이사장의 이름도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제민일보 김택남 회장도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지역 언론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최근 제민일보 임직원들에게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공식화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한편으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후보 추대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최근 SNS를 중심으로 현재 제주도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 후보를 찾아보자는 모임이 결성되고 있다. 이들 시민들은 지금까지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이 제주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 개발과 성장 만능주의, 환경 파괴 등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추진되어온 주요 제주 정책들이 제주 시민들의 삶의 질과 무관한 ‘그들만의 리그’였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특히 지난 해 촛불 광장을 경험한 시민들은 중앙의 적폐 뿐만 아니라 지방의 적폐청산이 필요하다면서 시민 후보 물색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고성환, 고봉수 씨 등이 SNS를 중심으로 주도하고 있는 시민 후보추대론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제주에서도 새로운 정치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 그동안 자유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과 더불어민주당 등 주요 정당을 중심으로 제주의 정치가 좌지우지 되면서 지방 토호 세력들이 기득권을 강화해 왔다는 판단이 새로운 정치 실험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촛불 광장이 보여줬던 시대정신을 실현할 새로운 후보를 시민의 손으로 직접 찾아보자는 것이다. SNS라는 새로운 소통 구조를 통해 시민 후보를 찾으려는 시도가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시도가 성공한다면 제주 정치사상 혁명에 가까운 새로운 실험이 현실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민적 열망에도 불구하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공학적 계산이 사람들의 입방에 오르내리고 있다. 모 인사는 지역적 기반이 있어 해볼만 하다, 모 인사는 전직 지사의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등 그야말로 ‘설(說)’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왕적 권력에 가까운 제주도지사라는 직위에 대한 욕심은 촛불로 대변되는 시대정신과 맞지 않다는 점이다. 내년 지방선거는 중앙에 기대 지역의 기득권 챙기기에 몰두해 왔던 지역 토호들의 카르텔을 깰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실험이,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이 필요하다. 장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각에서 일고 있는 시민후보 추대론이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 있을지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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