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백승주 박사/ 서귀포시 대정읍 출신으로 재경 대정포럼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고려대 지방자치법학연구회장과 C&C국토개발행정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지난 6월 13일 도의회 요청에 따라 제주자치도가 오라관광단지 조성사업에 대한 자본 검증을 먼저 실시하겠다며, 자본검증위원회 설치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 발표 후 2개월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아직 검증위원회 설치조차 못하고 있다. 객관적이고 투명한 자본 검증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 선택 또한 문제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게다가 자본 검증의 방법과 기준, 절차 등을 설정하는 것 자체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듯하다.

장하성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 자본주의>에서 “우리나라는 시장경제를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고 일갈한 바 있다. 우리의 상식을 뒤엎고 있다. 그는 “정부수립 후 오랫동안 경제현상 모두를 정부의 결정·통제나 조정 하에 두는 계획경제 체제를 경험했고, 1995년에야 시장주의 경제체제가 들어섰다”고 했다. 이어 그는 “그것이 서구의 시장주의 행태와 일치하는 것 또한 아니다”라고 했다.

사실 지난 20여 년 동안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을 기조로 하는 우리나라 시장경제 체제는 자유화·민영화·개방화 등의 일련의 관련 정책들을 꾸준히 추진했으나, 실질에 있어서는 서구의 그것들과는 그 배경이나 과정이 다르게 진행되었다. 게다가 1995년 이후 시장경제 체제로 급전환되었으나 종전 계획경제 하의 경제 권력이 정부에서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지 못함으로써 우리 경제 질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즉, 시장주의 근간인 공정 경쟁이 보장되지 않고 계획경제의 관행이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명분으로 하는 제주경제의 질서는 어떤 상황인가? 국가경제와 전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얽히고 섞여 있다. 비정상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즉, 아직은 국제화나 세계화를 기치로 하는 국제자유도시 조성 기준에 부합되는 투자유치 행정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의 몇 가지 점들에 비추어 합리적 시장주의 경제 질서로 환골탈퇴하지 않은 한, 뭔가 새롭게 다듬지 않은 한, 제주국제자유도시 조성은 불가능한 환상이 될 개연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첫째, 합리적 시장주의 경제체제를 온전하게 만들기 위한 조치로서의 자유화·민영화·개방화 등에 대한 제주개발 행정주체의 정책적 의지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독자성· 자주성·자율성을 본질로 하는 자치도의 위상을 크게 훼손하면서까지, 막연하게 정부 하명에 따라 정부재정에 절대의존하고 있다. 또한 다양성보다는 획일화된 단일 개발사업구상에 매달려서 시장의 수급조절 기능보다는 도정과 인맥간의 비밀스런 막후협상(투자의향서 제출)을 우선하는 행정 일방주의적 계획경제 체제 사고가 투자유치 정책을 지배하고 있다. 게다가 큰 그림 하나 그려 놓고 요란 법석하다가 임기 끝나면 그만인 식이 반복되고 있다.

둘째, 현재의 전환기 경제상황 하에서 제주지역 경제의 합리적 작동이 가능한 투자환경 또는 여건조성에 매우 소극적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 결과 제주역내에서 다양한 산업군이 자생할 수 있는 건전한 국내-외 자본의 직접투자가 크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 중국자본 등과 같이, 제주특별법상 과도한 특혜가 주어지고 부동산을 매개로 한 관광시설개발을 명분으로 한 투기성 포트폴리오 투자행태가 일반화되고 있다.

셋째로 세계화·개방화를 천명하여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제주개발을 추진한 지 10여년 이상 경과했음에도 제주의 국제화 및 개방화 수준은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관광 이외에 다양한 산업군의 성장잠재력이 우세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니다. 크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생각건대 최근 대중관광시대가 열리면서 관광산업 선호 추세는 세계적이다. 특히 중국의 1억여 명의 중산층이 해외여행을 선호하면서는 그 도(度)는 하늘을 찌를 듯하고 있다. 국내 각 자치단체 또한 제주 못지않게 관광산업진흥에 목을 걸고 있다. 제주도 또한 그동안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로 중국인 관광객을 타킷 삼아 중화권 자본을 끌어들여 관광시설개발에 박차를 가해 왔다. 주구장창 막무가내로 관광만이 제주가 살길이라고 우겨대기도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3월 15일 이후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제주지역에서의 중국인 관광객 특수가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 특수가 다시 회복될 가능성에 대하여 외신은 전혀 긍정적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지역 경제 기조는 합리적인 시장주의 체제가 자리 잡아야 한다. 물론 시장지상주의 보다는 우리가 기대하는 체제는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면서 국제자유도시로 나아가기에 적합한 바탕을 만드는 방향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종전 계획경제 체제하에서 익힌 안이한 습관적 경제정책들은 과감하게 청산했으면 한다. 국제자유도시조성을 도정 혼자 할 수 있는 것 또한 절대 아님도 인정하여 성실히 대처했으면 한다. 특히 콘트럴 타워(control tower)에 경제전문가를 배치하는 등 개발행정의 기본시스템부터 혁신했으면 한다.

어떻든 이번 투자자본 검증위원회 논란은 그 대상이 외국자본이라는 점에서, 물론 그 자본의 투명성 여부와는 별개로, 제주도가 검증위원회 설치를 발표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외자본거래의 신인도(信認度)를 크게 떨어뜨리는 원인자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어 보인다. 더욱이 앞으로 이 위원회가 설치되어 기능할 경우 이미 인·허가 과정에서 논란이 되고 있었던 외국자본들, 예컨대 신화련금수산장, 애월국제문화복합단지, 제주사파리월드, 프로젝트에코 개발사업 등 사업장 규모가 50만㎡ 이상인 대규모 관광 개발에 투자하는 자본에 대해서도 사후적으로 그 적격성 심사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스스럼없이 천명했다는 사실 또한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이는 그동안 역대 도정에서 외부자본 투자가 이루어질 경우 자본 검증에 대한 객관적이고 실효적인 표준모델 없이 도지사의 주관적 의향에 따라 투자신청 접수가 적법하게 둔갑되었던 상황, 즉 후진적 상황을 여실히 방증해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를 아연 질색케 하고 있다. 더 심하게 말해서 그동안 자본검증을 대충 해 왔다는 사실을 대외만방에 이실직고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그간 외부투자 자본 사후관리가 왜 부실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분명한 것은 어떤 투자자본이든 투자신청서 접수가 즉시 이루어진 후에 인허가 절차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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