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의 끝자락..

오래 머물것 같았던 지칠줄 모르던 늦더위도 서서히 이별을 준비하고

언제 들어도 정겨운 풀벌레소리, 누리장나무의 화려한 외출은 가을로 가는 길목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울퉁불퉁한 숲길

짙은 녹음으로 숲터널을 이룬 숲에서 뿜어내는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때 마다 느껴지는 상큼함과 맑은공기,

코 끝에 와 닿는 흙냄새와 풀잎향기, 짝을 찾는 새들의 지저귐,

초록세상이 만들어낸 여름향기에 빠져들어간다.

나뭇잎 사이로 살짝 들어오는 햇살

이 세상에 너만큼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꽃이 또 있을까?

검은색의 껍질에 쌓여있는 갈대같이 생긴 줄기때문에 '여로'라 불리는

참여로의 아름다운 자태에 숨이 멎었다.

참여로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여로 중 가장 키가 큰 고산성 식물이다.

습하고 반그늘 부엽질이 풍부한 곳이 자람터다.

짙은 빛깔의 검은 자주색꽃이 원뿔모양꽃차례에 밀생하며 8~9월에 피고

살충제로 쓰였던 유독성식물로 약재로 쓰였다.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수직의 정원 삼나무 사열을 받으며

사각거리는 제주조릿대 소리에 섬짓하고 밀림에 서 있는 듯 낙엽활엽수림대가 이어진다.

파란하늘과 한라산 치맛자락 아래 겹겹이 이어지는 오름군락

정상에서는 열두폭 병풍에 수채화를 그려내듯 마법같은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사라져버린 파란여로는 어디로 갔을까?

시들어가는 파란여로 하나가 그나마 위안이 되어준다.

나무는 바위를 땅으로 삼아 뿌리를 내리고

봄과 여름을 즐겼던 작은 꽃들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동안

또 다른 여름꽃들은 부지런히 계절을 전한다.

가뭄으로 말라버렸던 비밀의 습지

가을을 재촉하는 가을비에 산지 습지는 살맛나는 세상을 만났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애쓰는 작은 아이들

무심코 지나버리면 존재조차 없지만

사랑스런 마음으로 보면 숨결이 느껴진다.

숲 속에 자리잡은 묘

얼마전에 벌초를 한 흔적이 있지만

묘 주위에는 연보랏빛 무릇이 자람터가 되어버렸다.

익은 열매가 껍질이 벌어질 때 하얀 속살이 차가운 얼음처럼 보인다는

숲 속 여인 임하부인 '으름'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하다.

너무 작아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애쓰며

계절을 부지런히 전해주는 가슴 설레게 하는 작은들꽃과 나무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면 숲 속으로 들어오는 햇살

이방인의 침입에 경계를 하는 숲의 주인들

아쉬움을 남기는 여름의 끝자락 숲에서

숨 쉬며 머물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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