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 만에 한국 땅을 밟은 노작가의 얼굴은 붉게 상기됐다. 제1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시식이 열린 파주 DMZ 캠프 그리브스 유스호스텔. 시상식을 가득 메운 청중들 앞에서 김석범 작가는 “어찌 세상이 돌아가서 이렇게 되었는지 어리둥절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미리 준비한 수상연설문을 차분히 읽어가기 시작했다. 해방공간에 역사적 재심이 필요하다고 밝힌 김석범은 제주 4·3의 정명(正名)이 필요하다면서 “4·3의 역사 자리매김은 8·15 이후 한국 해방공간의 역사 바로 세우기, 역사 재검토, 재심과 불가분의 과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해방공간 안에서 학살을 동반한 폭력 행사로 세워진 이승만의 정통성을 꾸며내는 데 온갖 술책이 동원되었으며 그 중 대학살을 당하고 이승만 정부 수립의 희생양으로 바쳐진 것이 제주도”라고 규정했다. 제주 4·3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묻기 위해서는 이승만 정권의 정통성과 4·3 대학살의 관계를 밝혀야 한다는 노작가의 일갈에는 힘이 서려 있었다.

17일 파주 DMZ에서 열린 제1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시상식에서 김석범 작가가 상패를 받고 있다.

내년 70주년을 맞지만 아직도 제주 4·3 평화공원에 백비가 눕혀진 채 있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그는 “제주 4·3 사건, 교통사건도 사건, 이웃 사이의 폭력 싸움이 일어나도 사건”이라고 한다면서 “이름 바로 짓기, 역사 바로 세우기, 내외 침공자에 대한 정의의 방어 항쟁이 왜 이름 없는 무명비로 제주 평화공원 기념관에 떳떳한 이름을 새기지 못한 채 아직 고요히 누워있는가”라고 물었다.

제1회 이호철 통일로문학상 시상식에서 김석범 작가가 상패를 들어보이고 있다.<사진=미디어제주 제공>

이어서 그는 “이승만 정부가 임정의 법통을 계승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3·1 운동을 탄압하는 일제와 더불어 행동한 친일파, 해방 후에는 친미파로 변신한 민족 반역자들이 토대가 세워진 정부”라고 이승만 정권의 성격을 규정했다. 그는 제주 4·3의 역사적 의미를 “정통성 없는 이승만 정부가 국제적으로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 제주도를 어린아이까지 다 포함한 빨갱이의 섬, 소련의 주구라는 구실을 붙여 철저한 멸공통일의 단독 정부를 세우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만행을 벌린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승만 정권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물을 때 제주 4·3의 의미, 그리고 정명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제1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시상식에서 김석범 작가가 심사위원장인 염무웅 문학평론가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미디어 제주 홍석준 기자>

그는 “해방공간은 반통일, 분단의 역사 형성이기도 하다”면서 “이승만 정부의 가짜 정통성 꾸미기 해명과 4·3의 진상규명, 역사 바로 세우기는 불가분의 역사적 요구로 이제 나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제주 4·3 진상조사보고서 결론에 4·3학살을 국가 범죄로 규정하고 최종 책임은 미국과 이승만 대통령에게 있다고 명기하고 있다”는 점을 들면서 “진상조사보고서 결정 이후 십 수 년이 경과되었지만 국가 범죄의 책임 추구는 수수방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망각 속에 사라지고 말 것 같다”면서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제주 4·3은 70주년을 앞두고 4·3 문제와 더불어 해방 공간의 총체적인 역사 청산, 재심의 단계에서 들어섰다”면서 “해방공간의 역사 재심, 청산은 앞으로 남북 평화 통일의 든든한 담보, 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은 평생 분단문제를 형상화했던 이호철 작가의 문학 세계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차별·여성·분쟁·폭력·전쟁·난민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사유하고 형상화한 세계적 작가에게 수여된다.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후보에는 칠레 아리엘 도르프만, 소말리아 누르딘 파라, 러시아 고려인 작가 박 미하일, 팔레스타인 작가 사하르 칼리파,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 독일 작가 잉고 슐체. 김석범 작가 후보로 올랐으며 평생 4·3과 재일 디아스포라 문학을 형상화한 김석범 작가가 최종 수상자로 결정됐다.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특별상에는 김숨 작가가 선정됐다.

이날 시상식에는 염무웅 심사위원장을 비롯해, 소설가 김승옥, 한승헌 변호사와 문인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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