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양재 (李亮載) / 20세 때부터 고서화를 수집한 민족주의 경향의 ‘애서운동가’로서, 서지학과 회화사 분야에서 100여 편의 논문과 저서 2책, 공저 1책, 편저 1책 있음. 현재 ‘포럼 그림과 책’ 공동대표, ‘고려미술연구소’ 대표.

제주에는 여러 곳에 공연무대(公演舞臺)가 있다. 그러나 ‘제주아트센터’나 ‘제주문예회관’ ‘서귀포예술의전당’ ‘설문대여성문화센터’ 등등의 장소는 임대용(賃貸用) 공연무대이지 전용(專用)무대가 아니다. 전용무대가 있기는 있지만, ‘난타(亂打)’나 ‘서커스’ 등등에 불과하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난타’나 ‘서커스’ 등은 제주에서 창작되거나 계발(啓發)된 공연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제주에는 제주다움을 보여 주는 특정 공연물 전용무대는 거의 없는 것이다.

제주는 관광지이다. 여행(旅行)과 관광(觀光)이란 것은 구별되는 단어이다. 여행이란 대체적으로 “나그네 되어 먼 길을 다니는 것”을 말하고, 반면에 관광이란 “경치나 명소를 구경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사업 목적의 출장을 관광이라기보다는 여행이라고 말하는데, 즉 여행이라는 말에는 관광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관광이라는 말 보다는 포괄적 의미가 더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경우 유명 관광지에는 그 지역 특유의 전용무대가 있다. 파리나 라스베이거스에는 ‘리도 쇼’가 있고 뉴욕 브로드웨이 42번가에는 ‘레미제라블’이라든가 ‘캣츠’ 등등이 장기 공연물 전용무대가 있다. 쇼든 오페라든 연극이든 풍물이든 그 지역에 알 맞는 전용무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제주에는 제주다움을 보여 주는 제주만의 무대가 없다. 제주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건전한 밤 문화를 즐길 수가 없다. 제주나 서귀포의 도심 일부를 제외하고는 술 마실 곳조차도 없는 적막(寂寞) 산해(山海)가 제주의 현실이다. 낮에는 좋은 자연을 만끽하지만 밤에는 방콕 신세의 반쪽이 관광지가 제주이다.

제주에도 가수를 포함한 무대 공연가나 배우를 지망하는 분들이 상당수 있다. 극단도 10여 단체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설 수 있는 전용무대는 노천(露天) 조차 마땋지 않다. 해외의 유명 관광지 명소들 가운데, 특히 ‘마이애미’에는 다운타운의 ‘베이 사이드(Bay Side)’라는 상가를 주말에 가면 요트 마리나의 노천 무대에서 흥겨운 음악 공연을 하는 모습을 쉽사리 목격할 수 있다. 그러한 노천 무대는 연예인 지망생들의 데뷔 장소이자, 기존의 무명 팀들이 기량을 뽐내는 끼 발산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살아 움직이는 노천 무대가 제주에는 찾아 없다. 탑동에 노천 공연장이 하나 있기는 한데, 공간이 닫힌 공간이라서 관람객들을 끌어 모으기가 어려워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아름다운 제주도는 판소리 열두마당에 들어가는 [배비장(裵裨將) 타령]의 무대(舞臺)이다. 18세기에 생성된 [배비장 타령]이 20세기초에 고전 소설화된 [배비장전]은 1965년에 신상옥 감독이 영화로 제작하기도 하였고, 한때는 MBC 마당놀이로 공연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배비장 타령]은 [춘향가]에 버금가는 수준의 고전 판소리였으나, 어느 틈엔가 전승되지 않고 사라졌다.

[춘향전]은 이본(異本)이 크게 나누어도 5~6종이 넘고, 세분하면 100여 종이 넘는다. 반면에 고전소설 [배비장전]은 [춘향전]에 비하여 이본(異本)이 매우 적어 대략 3종 정도이다. [한국민속문학사전(판소리 편)]에 의하면 “현재 전하는 [배비장전(裵裨將傳)]의 이본은 활자본으로 1916년 신구서림본, 1950년 국제문화관본(김삼불 교주본), 1956년 세창서관본 등”이 있다. 이들 중 “국제문화관본과 세창서관본은 문체가 판소리 사설체로 되어 있고, (중략) 국제문화관본은 배비장이 망신을 당하고 난 후의 후일담이 생략되어 있고, 세창서관본은 신구서림본을 바탕으로 한자를 빼고 다듬은 것이다. 이로 볼 때 가장 빠르게 간행된 것은 1916년에 간행된 신구서림본으로 그 이전의 사설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대략 당시까지 전하던 판소리 사설이 소설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상의 것 이외에도 소설가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이 1941~2년도에 [가정의 우(家庭の友)]라는 잡지(‘조선금융조합연합회’ 발행)에 [배비장]을 새롭게 재창작하여 연재한 바 있고, 1943년에는 박문서관에서 채만식의 [배비장]을 단행본으로 출판한 바 있다. 현재에도 [배비장]을 현대문으로 윤색(潤色)한 [배비장] 또는 [배비장전]이 수십 종 유포되고 있다.

작곡가 윤이상(1917~2017)은 효를 주제로 한 오페라 [심청]을 작곡하였으나, 이는 서구에서 흥행을 하지 못했다. 동양의 효를 서양인들은 감성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랑을 주제로 한 오페라나 연극은 흥행에 크게 성공하였다.

우리나라의 판소리나 고전소설 가운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춘향전]은 사랑을 주제로 한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배비장 타령]이 판소리 열두마당 가운데서 쇠퇴되어 현재는 전승되지 않은 대표적인 타령이지만, 소설로 각색되어 전해지는 [배비장전]은 [춘향전]에 못지않게 흥미롭다.

전승이 끊어진 [배비장 타령]을 현대의 작곡가가 오페라로 창작한다면 혁신적인 창달을 구사할 수 있다. 판소리에 크게 구애됨이 없어 자유롭고 풍부하게 할 수 있어 흥행의 가능성도 매우 높다. 필자는 [배비장전]이 오페라나 팝페라로 거듭 나기를 기대해 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데 최근에 누군가에 의하여 [배비장전]이 제주에서 오페라로 만들어져 공연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음악계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어떻든 필자는 “제주에는 [배비장] 전용무대가 만들어져야 하고, [배비장]은 연극 오페라 팝페라 가요 무용극 등등으로 다양하게 창작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제주의 배우들이 주도하여 공연하는 최소 200석이 넘는 규모의 [배비장] 전용무대가 제주 시내의 관광객들의 접근이 용이한 장소에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배비장]이라는 아주 훌륭한 고전소설의 예술화와 상업화를 시도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특정작품 전용무대는 3~4개가 인근(鄰近)에 몰려 있는 것이 좋다.

5~6년 전 필자에게 해외의 어느 지인이 [춘향]을 팝페라로 작곡할 테니 작사하여 달라는 부탁을 해 온 적이 있다. 그는 필자가 서지학(書紙學) 전문가로서 여러 <춘향전>을 참고하여 가정 적합한 가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적임자라고 본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배비장]을 팝페라로 만드는 것도 검토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한편, 제주에서 연기학원이나 음악학원이 여럿 있다. 제주에서도 연기학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출연 기회가 별로 없어 이대로 간다면 제주의 연기학원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 제주도를 무대로 제주에서 촬영하는 영화나 연속극에서 조차 대부분 육지에서 보조 출연자를 데려다 쓴다. 필자는 제주도 지방정부가 지원하는 영화나 연속극에서의 보조 출연자는 제주 현지인으로 못 박아 지원하였으면 한다. 이것은 배타성의 문제가 아니다. 제주에서의 공연 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정책적 배려는 있어야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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