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가까스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되었다. 짧으면서도 길게 느껴졌던 대법원장 임명동의 과정이었다. 이 글은 국회의 동의를 거치기는 하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제도가 과연 3권분립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하는 필자의 고교동창 한동완 사장의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이다.

우리는 입법-행정-사법으로의 3권분립을,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는 민주주의 정부의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로 배워왔다. 실제 정부의 권력은 견제가 없으면 남용되기 쉬운 법이어서, 견제 장치를 많이 둘수록 국민의 권리 보장이 그만큼 더 많이 이루어질 터이다. 3권분립은 프랑스의 몽테스키외가 1748년 <법의정신> 책에서 주창한 바에서 시작되어, 이를 1787년 미국연방헌법이 받아들였다. 미국식 대통령제를 수용하고 있는 우리도 자연스럽게 3권분립을 존중하고 중시여기고 있다.

논점은 사법부의 독립성과 관련하여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그리고 국회 동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은 흔들릴 수 있는 건 아닌지 이다. 이 두 가지 차원에서 사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외부적 개입을 차제에 한번 점검해 보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종 김명수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의 적나라한 개입과 국회에서의 공방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임명된 대법원장이 얼마나 독립적 위상과 권위를 가질 수 있을까의 문제의식을 갖게 되는 건,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번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 동의 과정은 적폐청산이라는 촛불정부의 과제를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라는 측면이 크다. 그렇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진두지휘하고,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기를 쓰고 반대하는 건, 일면 이해가 된다. 대법원장을 누구로 할 것인가가 이렇게 정치적 공방이 되는 것은, 사법부의 장에 대한 인사가 곧 정치 과정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사법부 역시 정부의 중요한 3권 가운데 하나인 만큼 그 수장을 누구로 할 것인가는 그냥 쉽게 대통령의 임명권에 맡겨서는 안 될 중차대한 사안이다. 실제 누구를 대법원장으로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정치세력간의 힘겨루기가 펼쳐지는 건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대법원장 자리가 정치적 논쟁을 일으킬 만큼 중요한 것이라면, 아예 대법원장 직을 놓고 임명이 아니라 선출에 맡기는 게 더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내 친구의 지적처럼,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합당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법부의 새 수장 선임을...3권분립 관점에서 봐주길 바란다”는 언명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다. ‘선임’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장을 누구로 할 것인가가 여야간 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탈정치화 내지는 대통령 임명권의 절대화에 다름 아니다. 3권분립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은 3권 분립을 해친다고 보아 무방하다.

그렇다면 3권분립 관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할 일은, 국회 동의를 부탁하는 게 아니라 통 크게 대법원장을 선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의 경우는 시간이 없기에, 전국의 판사들 또는 변호사들의 직선에 의해 1순위로 선출된 분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는 게 이른바 ‘선임’이고 또 3권 분립에 더 잘 들어맞는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굳이 국회 임명 동의를 구하느라 힘 쓸 필요도 없다.

지난 며칠간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을 둘러싸고 여당과 야당 그리고 청와대가 샅바 싸움 하는 걸 보면서, 더욱 더 대법원장도 선거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국회 동의를 위해서 야당 지도부에 부탁 전화했다는 기사를 보면서는, 우리 정치에서 사법부의 독립은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내정한 이후 국회동의를 위해 애쓰는 만큼이나 사법부의 독립성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임명된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눈치로부터 벗어나 그야말로 ‘법과 양심’에 따라 사법부의 역할을 제대로 얼마나 할 수 있을는지 염려도 크다.

대한민국의 대내-외적 대표이면서 행정부를 책임지는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선거로 국민들 중의 한 사람이 선출된다. 입법부의 장인 국회의장은 국회의원들 가운데 국민이 뽑은 의원들에 의해 선출된다. 그런데 3권 가운데 하나인 사법부의 장은 왜 선거에 의하지 않고 국회의 동의를 받는 조건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도록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은 제왕적인데. 사법부의 장도 대통령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 직을 맡도록 해야 진정으로 사법부의 독립성이 확보되는 건 아닐른지.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선호와 국회의 힘겨루기라는 두 축의 산물인 한, 사법부의 독립은 요원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내년 개헌 때는 우선 대법관을 일정한 경력, 예를 들면 20년 이상의 판사들 가운데서 전국의 모든 판사들의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되도록 하고 나서 이어 9명의 대법관들의 호선에 의해 대법관 가운데 1인이 대법원장을 맡도록 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건 어떤가 하는 생각이다. 혹은 대법원 판사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전국의 모든 변호사에게로 확대하는 것도 보다 많은 인력 풀 확보를 위해서 나을지 모르겠다. 더 파격적으로는 대법원장 후보 자격은 전문성을 고려하여 일정한 경력의 판사나 변호사로 한정한다고 하더라도 선출은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대법원이 판사와 변호사들만의 폐쇄적 공간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생각과 선호가 반영되는 만큼이나 더 양질의 대법원 판사가 대거 선출될 가능성이 많다고 볼 것이다.

물론 선거가 만능이 아니다.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차피 민주주의에 따른 비용이다. 다행히도 그러한 비용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지면 상당부분 해결될 사안이기도 하다. 국회의원들을 보면, 선거로 뽑혔다고 해서 다 이른바 선량(選良)인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항변도 가능하다. 그러나 1987년 이후 30년에 걸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대한민국이 대표적으로 작년 촛불정국에서 보듯이 크게 변하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 대법원장과 감사원장 혹은 검찰총장까지도 선거를 통해 직을 맡도록 함으로써 행정부를 감시하고 감찰하는 부처들에게 독립성을 부여한다면, 우리 사회가 보다 더 정의롭고 밝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해 본다. 임명보다는 선출이 더 많은 독립성과 자긍심 그리고 책임감을 갖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치르게 되면, 코드 인사라는 말은 없어질 것이고, 또 이번처럼 대법원장 후보를 두고 국민후보니 좌파니 하는 여야간 정치적 공방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모든 건 최종적으로는 주권재민의 유권자 몫이 될 것이기에.

사법부의 독립성 얘기를 하다보니, 제주특별자치도 감사위원회의 독립성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특별자치 하면서 제주에 도입된 대표적 제도적 장치가 감사위원회이다. 그러나 뜻있는 논평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감사위원장을 도지사가 임명하는 한 감사위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크게 제약받을 것으로 보아 무방하다. 그런데도 감사위원회를 제도적으로 독립시켜 도정에 대한 감시체계를 확립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별로 없다. 감사위원장도 도지사처럼 4년 임기로 도민에 의해 선출되도록 하는 특별자치도 법 개정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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