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조용한 대정골~

보성리, 인성리, 안성리의 세부락으로 이루어진  대정고을은

왼쪽 단산과 산방산, 오른쪽에 모슬봉, 뒤에는 넓게오름이 외곽을 이루고

지형은 용암평원으로 되어 있다.

대정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대정현을 설치할 당시 대정고을 서쪽에 '한괴'라는 이름에서

'한'은 크다, 많다의 뜻이므로 '대(大)'자로 하고

'괴'는 조용하고 정숙한 곳이므로 '정(靜)'을 사용하여 '대정'이라 정했다고 한다.

조선 태종18년 현감 유신이 백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대정성을 축성한 후 주민들이 성을 중심으로 부락이 형성되었으며

동쪽마을을 동성리, 서쪽마을을 서성리라 하였다.

현재 안성리, 인성리, 보성리, 신평리, 구억리

5개 마을을 합쳐서 대정고을이라 불린다.

 

구름모자 쓴 산방산

오락가락 내리는 가을비와 가을빛이 내려앉은 농로길

마침 오늘이 대정향교에서

공기 2568년 추기석전대제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석전대제는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인과 성현들을 추모하기 위해

성균관과 전국 향교에서 매년 춘기와 추기에 각각 한번씩 봉행된다.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과 교화를 목적으로 세운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성균관과 더불어 오늘날의 중등학교에 해당하는 향궁으로

조선왕조때 현에 있는 공자의 문묘와 거기에 부속된 중등교육기관인 관립학교로서

대정향교는 조선조 태종 16년(1416년)에 처음 설립되었다.

 

대정향교는 명륜당이 북향하여 자리잡고

그 북쪽에는 대성전으로 가는 삼문(三門)이 있으며, 이 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이 남쪽을 향하여 서 있다.

경내에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의전당, 내삼문, 전향문, 퇴출문, 대성문, 동정문, 전사청 등이 있다.

'의문당(疑問堂)'은 동재에 걸려 있는 현판으로 추사 김정희가 나무판에 새긴 현판이다.

배움을 찾아가는 순례지 '대정향교'

봉행하는 석전대제을 바라보며

공자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뜻깊었던 자리였다.  

준비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단산이 있는 농로길 따라

수월이못까지 마을길로 들어가본다.

대정향교를 빠져나오니 금산이 보인다.

밭담 안으로 자생식물들과 외래식물들이 뒤섞여

자람터를 넓혀가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새로운 모습으로 바꿔버린 새미물

옛날 주변 마을에서 물을 길어 먹었던 곳으로

'세미물 또는 돌세미(石泉)'라 불리기도 하고

추사 김정희가 이 곳의 물을 길러다가 차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인성리 알벵디 농로길에 있는 못

방사탑은 마을 공동체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지역 주민이 공동으로 돌을 쌓아 세운 소중한 향토유산이다.

지역에 따라 '방시탑, 방사탑, 거욱대, 거왁'

등으로 부르며 인성마을에는 4기의 방사탑이 세워져 있다.

(도내에는 30여기의 방사탑이 있다.)

 

단산(바굼지오름)은 대정향교의 뒷동산이다.

마치 박쥐가 날개를 펼친 모습이라고 하여 '바굼지오름'이라 불렀고

부드러운 능선의 다른 오름과 달리

바위 봉우리가 수직의 벼랑을 이루는 뾰족한 모습이다.

원래의 못은 우마급수장으로 활용하였던 못으로

외부의 침략을 막고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축성작업을 하던 중

모슬봉의 화기가 비치니 남문앞에 연못을 파서 화기를 누르면

백성들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하여 설치된 못으로

지금까지도 마을 주민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연못이다.

아스팔트 위로 위험하게 수레를 끌고 가시는 어르신

차가 오는 줄도 모르고 쉬엄쉬엄 걸어가신다.

다행히 지나가던 차들은 잠시 멈추고

어르신이 길을 건너실 때 까지 약자를 위한 기다림의 배려에

아직은 살맛나는 세상... 훈훈함이 전해진다.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등으로 불려지며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의 성문 입구에 세워졌던 것이다.

현재는 제주대학교, 시청, 삼성혈, 관덕정 등 제주시내 21기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12기

대정읍의 인성, 안성, 보성 12기 등 도합 45기가 있다.

 

석상의 형태는 대체로 벙거지형 모자,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

큼직막한 주먹코, 꼭 다문 입, 배 위아래로 얹은 두 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석상은 성문 앞에 세워지면서 수호신적, 주술종교적, 경계금표적 기능을 지녔듯이

육지의 장승과 같은 역할을 맡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헌터는 대정현성의 동헌에 있던 자리라 해서 불려진 이름으로

지금의 보성초등학교에 있다.

돌하르방은 대정현성 내 보성초등학교 입구 좌우에 있다.

주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 주며 기원하는 수호신적· 주술종교적 의미와

도읍지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경계 금표적 기능을 한다.

이 못은 두레박으로 떠올리는 물이라는 데서

'두레물'이라 불리던 것이 후에 한자표기에 의해서 '거수정' 이라 호칭하며

이 물은 옛날 대정골의 유일한 못으로

유력한 명관이 추대되면 물이 말랐다가도 용출하고

만약에 그렇지 못한 이가 추대되면

용출되던 물이라도 금새 말라붙어 버렸다고 한다.

추사적거지기념관을 지나 수월이못으로 향하는 농로길~

 

가을하늘이 그리웠을까?

흐린 날씨탓에 문 닫을 준비를 서두르는 나팔꽃

잎 부분에 끈적이는 액체가 요술을 부리듯 옷에 잘 달라붙는 진득찰

밭담 안으로 튼실하게 자란 고개숙인 조 이삭은

일상이 바쁘다는 이유로 회색빌딩에 갇혀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안타까웠을까  

철없이 놀던 어린시절의 추억을 끄집어내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마음의 위안을 준다.

안성리 마을 북쪽에 위치한 수월이못은

구전에 의하면 관기(기생) 수월이가 살던 집터로 수월이가 죽은 뒤

주민들의 분노로 집터를 파 버렸고 그 곳에 물이 고여

못을 이루어 '수월이못'이라 부른다.

조선시대 후기에 만든 대정골에서 가장 큰 인공연못으로

큰 연못과 2개의 작은 연못으로 되어 있고

작은연못은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안성리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여름 아름다웠던 수월이못은

퇴색된 모습으로 부들과 마름만이 못을 채우고 있다.

습지 한 켠에 흰꽃여뀌가 군락을 이루며

여름꽃들의 빈자리를 채워준다.

역사가 숨쉬는 대정골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는 제주의 이야기가 있는 곳

향교에서 봉행하는 추기석전대제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례에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아름다운 전통이 잘 보존되고 전승하길 바라며

대정향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신

대정향교 전교 이자신님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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