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 행복한 추석 연휴 되세요’.

추석 연휴 첫날, 또는 그 전날, 지인들과 주고받았던 명절 덕담이 그랬다.

전화를 통해서든, 카톡을 통해서든,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시라”는 메시지 였다.

그런 덕담을 주고받았던 이른바 ‘황금연휴’의 끝자락이다.

오늘(9일)이 연휴 마지막 날이다.

열흘간의 추석 연휴, 사람들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명절을 보냈을까.

처지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오랜만의 만남이 반가웠고 서로 나누었던 관심과 배려가 고맙고 즐거웠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행복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지치고 고단한 시간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만남의 관계’가 서먹했거나 부담스러웠고 뭔가 부족함에 주눅 들었을 수도 있다.

비록 저마다의 생각과 느낌은 다르더라도 추석 연휴 열흘 동안 오고 가며 주고받았던 소소한 이야기는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민초들 관심의 일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추석 밥상머리에서 ‘전쟁 이야기’는 국토최남단 ‘마라도’가 보이는 바닷가 마을에서도 스스럼없는 화두(話頭)였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의 김정은의 거칠고 막나가는 입씨름은 이 시골 마을에서도 안주 감 이었다.

대부분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전제였지만 “만약 전쟁이 나더라도 제주도는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김정은의 외가가 제주이기 때문에 공격의 사정권에서 벗어 난다”는 논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서 안전한 제주도의 땅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집 팔고 나갔던 사람들이 또 다시 제주에 오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논리는 황당했고 상황분석은 어이가 없었다.

제주땅값 폭등과 관련한 관심이 이 같은 ‘황당 논리’를 생산해 낸 것이다.

정치 이야기는 뒷전이었다. 배척의 대상이 되어버린 꼴이었다.

간혹 국회의원 등 정치인 이야기가 나올라 치면 한 마디로 ‘죽일 *들’로 매도해 버릴 정도였다.

정치 불신이 얼마나 심각하고 정치인에 보내는 미움이 어느 정도인지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관심은 역시 삶의 문제였다. 먹고 사는 이야기였다.

노는 자식의 일자리걱정, 젖먹이 아기를 놔두고 떠나버린 야속한 며느리, 치매부모의 안타까운 봉양 이야기는 시골마을의 슬픈 현주소다.

예전에는 몇 마지기 밭뙈기 소출로 그럭저럭 연명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했다.

감귤 따기, 마늘 심기 등 남의 집 일당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나마 있었던 땅은 다 팔려나가고 결국은 남의 집 종살이 노릇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탄식도 나왔다.

시골 마을 사내들 사이에서는 세태변화에 따른 입지 추락에 한숨이 깊고 길었다.

여자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는 것이었다. 남성위주 세태가 여성 우위로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는 소리다.

설거지·청소·빨래는 물론이고 식사준비·육아 등 가사 노동 분담은 일반화 되고 있다.

“서서 보면 냄새 난다”는 타박에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는 예사로운 일이 되었다.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업신여겼던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은 박물관으로 간지가 이미 오래다.

우수개지만 이러한 ‘남존여비’를 일컬어 ‘남자의 존재는 여자의 비위를 맞추는 것’으로 각색(脚色)된지 오랜 세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례를 지낸 후 밥상머리 분위기는 넉넉하고 유쾌 했다.

술을 채워 부딪치는 정겨운 술잔에서는 겨웠던 시름이 시름시름 녹아 내렸다.

행복은 그렇게 근심과 걱정을 녹여 내는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은 ‘조금은 부족한 것, 약간의 결핍에서 행복을 채우는 것’이라 했다.

약간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 부분을 채워갈 때 기쁨과 행복을 느낄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조금 부족한 것’이 플라톤의 ‘5가지 행복의 조건’ 출발점이다.

차고 넘치면 들어갈 공간이 없다. 비워 있어야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교훈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욕심을 내지 않고 적당히 부족한 삶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마음이 행복이라는 뜻이다.

재산 싸움으로 형제들 간에 불목하여 연을 끊고 사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와는 달리 “적당한 가난이 오순도순 형제들을 사랑으로 엮고 가족들을 뭉치게 하는 힘이 된다”는 말도 있다.

‘왕은 모든 것을 가지고도 행복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입으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마법사의 말을 듣고 신하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찾아오도록 했다.

신하가 천하를 두루 다니며 돈과 권력과 명예 등 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행복하다’는 사람은 없었다.

낙담하여 어두워가는 들녘에 앉아 걱정하는 데 피리소리가 들렸다.

아름다운 소리였다. 피리소리에 점점 행복감이 넘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소리를 따라 가다가 ‘피리 부는 사내’를 만났다.

“당신의 피리소리가 너무 아름답고 들으면서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데 당신의 마음도 행복합니까?”.

“그럼요 나는 너무 너무 행복 합니다”

신하는 제대로 사람을 찾았다고 기뻐했다.

“그럼 돈은 얼마든지 드릴 터이니 당신의 속옷을 제게 팔아주십시오”.신하가 간청했다.

사내는 말했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아무 것도 입지 않았다오. 저물 녘 발가벗은 거지가 지나가기에 입고 있던 속옷까지 모두 주고 말았다오”.‘

초등논술카페(Cafe.naver.com/nonnon)에서 옮겨온 이야기다.

‘풍족 속에 불행’을 느끼는 왕과 발가벗어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하다는 사내의 ‘빈곤 속 행복’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가진 것 없어도 넉넉한 마음이 행복’이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추석 연휴는 행복했었습니까? 불행했었습니까?”

"그래도 우리는 행복했었다”고 말 할 수 있다면 그 것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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