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희 박사

1948년 10월 여순항쟁은 바다 건너 제주에서 불어오는 동족의 피울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오동도 붉은 동백꽃은 총과 칼에 목숨을 빼앗긴 제주도 유채꽃 넋들에 대한 핏빛 그리움이었다. 무작정 던진 돌멩이에 수많은 사람이 짓밟히고 죽어갔다. 하룻밤의 눈먼 총소리에 참으로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1948년 10월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들은 조선 인민의 아들 노동자, 농민의 아들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사명이 국토를 방위하고 인민의 권리와 복리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제주도 애국인민을 무차별 학살하기 위하여 우리들을 출동시키려는 작전에 조선 사람의 아들로서 조선 동포를 학살하는 것을 거부하고 조선 인민의 복지를 위하여 총궐기하였다. 1. 동족상잔 결사반대 2. 미군 즉시 철퇴

 

1948년 10월 19일 여수주둔 제14연대 병사들은 “조선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면서 제주도 출동명령을 따르지 않고 봉기하였다. 그리고 지역주민이 동조하고 지지하면서 항쟁으로 발전하였다. 제14연대 병사에게 부여된 제주 동포 학살 명령은 군인의 사명에 부합하지 않은 잘못된 명령이었다. 권력자의 오판이 부른 부당한 명령이었다. 그러나 군인이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고 하여 지금껏 ‘반란’으로 간주하며 터부시하였다. 국가와 군의 관점에서 말이다.

당시 제14연대 병사들과 지역주민의 관점에서 또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우리 주위에 맴돌고 있는 빨갱이라는 낙인 때문에 다른 이의를 제기할 용기가 없었다. 우리 스스로 권력자의 문서로 남은 역사에 순응하며 살았다. 아니 순응을 넘어 스스로 반공주의자를 자처하며 충실한 국민이 되기를 원했다. 정부와 국군은 심판자로 돌변하였고 지역사회와 지역주민은 반도․폭도의 굴레를 떠안았다.

어느덧 여순항쟁 69주년. 내년이면 70주년이다. 여순항쟁을 아픈 역사로만 기억한다. 무고한 죽음, 억울한 죽음으로만 기억하기를 원한다. 여순항쟁은 부당한 권력과 잘못된 명령에 맞섰던 대한민국 항쟁의 역사에 서막을 열었다. 부당함에 맞섰던 동서고금의 역사와 비견하여 부족함이 없는 우리의 역사이다.

제주4․3은 여순항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제주4․3은 대통령의 사과가 두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여순항쟁은 국가로부터 그 어떤 사과도 정상적인 진실규명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69년이 흘렀다. 특히 제주에서도 여순항쟁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4․3연구소 홈페이지의 제주4․3사건 일지에는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발생’으로 표기되어 있다. 최근 들어 제주4․3평화재단이 여수 모 인사의 항의를 받아들여 ‘여수․순천 10․19사건 발생’으로 교체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제주4․3평화공원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제주도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어김없이 “여수의 군인이 반란”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상당히 불쾌하고 속상함이 밀려왔다.

‘반란’은 체제전복이나 정권찬탈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제주토벌출동거부병사위원회가 발표한 ‘애국인민에게 호소함’의 성명서 어디에도 반란으로 간주할만한 행위가 없다. 오로지 제주도 동포를 학살하라는 명령이 군인의 사명에 부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봉기하였다. 그런데도 ‘반란’이란 족쇄를 채운다. 그것도 제주도에서 말이다.

1948년 10월 11일 제주도경비사령부가 설치되었다. 제주도경비사령부는 경찰중심의 진압작전에서 군이 주도한 토벌작전으로 전환을 의미한다. 즉 초토화 작전이다. 이 작전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독립군을 소탕하기 위해 간도특설대가 저지른 만행이다. 이 만행을 제주도에서 실행하기 위해 여수주둔 제14연대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다. 제14연대 병사들은 이 명령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기에 제주도 토벌 출동을 거부한 것이다. 그런데도 제주도에서는 여순항쟁을 ‘반란’으로 터부시하고 있다. 제주도 출동 거부 행위를 ‘반란’으로 몰아세웠던 정치 권력자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제주4․3도 여순항쟁도 내년이면 70년을 맞는다. 세월이 무수히도 흘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격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4․3은 내년 70주년을 맞이하여 “역사의 정의를, 4․3정명을!”이라는 슬로건 아래 ‘제주4․3범국민위원회’를 출범하여 활동 중이다. 제주4․3의 정명을 위해서는 그동안 국가의 관점에서 서술되었던 제주4․3의 원인을 항쟁의 주체와 제주도민의 관점에서 새롭게 밝혀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무고하고 억울한 죽음만을 강조하는 피해 중심의 역사로는 제주4․3의 정명은 요원할 수 있다. 제주4․3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제주4․3의 성격을 명확히 하는 역사 연구가 반드시 필요함을 상기하고자 한다. 역사로서 제주4․3이 제주 지역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

제주4․3과 여순항쟁이 70주년을 앞둔 시점이다. 그 역사가 제대로 기록되었는지 의문이다. 역사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험난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져 우리 곁에서 호흡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고 말한 독립운동가의 외침을 그저 외침으로만 기억할 때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역사는 행동이며 실천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동서고금의 역사가 우리를 깨우치고 있다. 1948년 제주4․3과 여순항쟁이 역사로서 제대로 기록되고, 그에 합당한 정명(正名)이 될 수 있도록 제주도민의 고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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