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KBS의 파업이 54일째를 맞았다. 두 공영방송의 파업이 장기화 되면서 도민들의 불편 또한 가중되는 상황이다. 지역 자체 프로그램들은 물론 뉴스마저 제대로 제작되지 못하고 있다. MBC·KBS의 구성원들은 갈등 현장을 취재하던 입장에서 투쟁하는 당사자로 직접 거리로 나와 도민들을 만나고 있다. 이에 제주투데이는 공영방송사인 MBC·KBS 노조의 파업 계기와 현재 상황, 제주 지역사 내부의 문제점 등을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전하고자 한다. 두 방송사 지역사 구성원들이 어떤 MBC와 어떤 KBS를 꿈꾸고 있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담는다. 이영재 제주 KBS 새노조 지부장의 얘기를 들었다.

이영재 제주 KBS 새노조 지부장(아나운서)

-현재 상황은 어떻게 보고 있나.

MBC 쪽이 먼저 성과를 올리고 있다. 국민들의 지지나 전체적인 상황을 볼 때 승리는 멀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국민들의 기대와 다르게 몇몇 이사와 사장의 고집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김경민 이사 한 명이 더 퇴진하면 사장 등이 잇따라 사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적폐 세력들이 버티기에 들어갔다.

고대영 사장이 200만원을 받고 불보도를 약속한 것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다. 최소한 KBS 사장까지 했으면 버틸수록 망신을 당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KBS 전체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 자기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진작 나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차라리 빨리 나가는 것이 본인에게도 더 좋지 않을까.

 

-MBC와 상황이 다르다 들었다.

MBC 같은 경우는 파업 참여도가 상당히 높다. 그에 비해 KBS는 내부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파업 중이지만 본사 쪽 무노조인 분들이나 간부들이 직접 방송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파업 중임에도 비정상적으로나마 방송이 나가긴 하고 있는 상황이다.

거리로 나가 KBS의 문제를 알리는 선전전도 하고 있지만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총파업에 동참해달라고 독려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우리가 파업을 하는 이유는 방송을 너무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송이 나가고 있다 보니까 파업의 효과가 떨어진다. 파업이 길어지고 방송 복귀가 늦어지고 있다.

 

-현재 방송 상태는 어떤가.

로컬방송은 9시 뉴스만 나가고 있고 그 마저도 축소, 아주 변형된 형태로 방송되고 있다.하루 네 번이었던 지역 뉴스를 9시에만 내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뉴스에 지역 현안을 제대로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합원인데도 불구하고 방송에 개입하고 있는 분들도 계셔서 다소 갈등의 여지도 있다. 실무선인 부장 급에서 방송에 참여하고 있어 파업의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파업중인 KBS 새노조 조합원들이 27일 저녁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1주년을 기념하는 도민문화제에 참석했다. 문화제 2부는 'MBC, KBS 정상화와 언론 적폐청산을 위한 도민문화제'로 진행됐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윗선으로부터 압박을 느낀 적은 없었나?

지역 방송이라 그런지 직접적인 프로그램 압박은 그렇게까지 심했던 것 같진 않다. 아나운서라 잘은 모르지만 제주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은 눈치를 많이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부분은 PD 쪽이 더 잘 알고 있고 있을 것이다.

다만 박근혜 시절에 내려온 ‘적폐’라 말할 수 있는 낙하산 인사인 총국장이 자화자찬 프로그램 같은 것을 만들어서 문제가 되었던 적은 있다. 본인 가문의 성현들을 다룬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그처럼 허탈하게 웃기는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꼭 하려는 프로그램을 강압적으로 못 하게 막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예전 조합원들의 역할도 컸고, 새노조가 생기면서 제주KBS는 다른 지역에 비해 강성이라는 얘기도 듣고 있다. 그런 부분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제주 언론의 적폐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직접적으로 타격을 준다기보다는 혈연, 지연, 학연 때문에 우리가 취재를 들어간다고 하면 아는 사람에게 연락이 와서 살살 봐주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지역 사회가 좁다보니까 발생하는 일인데 방송이 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혈연, 지연에 얽매인 것이 뻔히 보이는 방송의 소재가 될까 하는 것이 방송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것을 ‘정’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적폐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도 지역 KBS·MBC는 노력을 해왔다 생각한다. 정권이 바뀐 만큼 지금의 사장과 이사가 물러난다면 우리는 더욱 좋은 방송을 만들 자신감을 갖고 있다.

 

-KBS 내부의 적폐라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철저하게 자기 이권을 위해 권력의 입맛에 맞춰 악랄하게 탄압하는 부류, 또 하나는 두려워서 눈치를 보는 부류. 첫 번째 부류는 싸워서 쫓아내기라도 하면 된다. 하지만 두 번째 부류는 설득하고 함께 더 좋은 방송을 만들어가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더 어렵다.

그들에게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간부나 국장, 부장 급이 직원들이 그 정도 위치에 있으면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귀를 닫는다. 후배들의 목소리도 듣지 않는다. 더 높은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을 언론인의 자세라고 생각하는 간부들이 있다. 그게 훨씬 더 큰 적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도저도 아닌 입장을 취해 더 설득하기 어렵다. 방송이 정상화 되면 후배들을 어떤 낯으로 볼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파업 54일째인데 경제적인 타격은 없나.

파업을 9월 4일 시작했다. 이번 달부터 조금씩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고 있다. 생활비나 주택 담보대출 등 매달 지출해야 하는 돈이 있다. 모두 샐러리맨이기 때문에 별다른 방법은 없고 아껴 쓰면서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조합원들 모두가 경제적인 곤란을 이유로 파업을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MBC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합원들이 서로를 걱정하지만 내색은 잘 하지 않는다.

 

MBC, KBS 정상화와 언론 적폐청산을 위한 도민문화제 무대에 오른 두 회사의 노조원들.

 

-파업에 대한 도민들의 반응은?

선전전에 나가보면 예전보다 호의적인 것을 느낀다. 제주도민들이 응원하는 마음은 있어도 잘 표현하지 않는다.(웃음) 예전에는 거리에서 빨갱이 같이 뭐하는 거냐고 그러는 분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힘내세요’, ‘KBS 파업 노동자들을 응원합니다’라고 말해주시는 분들이 제법 많아서 거리로 선전전을 나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파업을 빨리 승리로 이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죄송하다.

 

-낙하산 인사 문제는 없나?

지역 총국장도 검증을 받는 단계가 필요하다. 대전과 광주 같은 경우는 그로 인한 갈등이 첨예한 상황이다. 예전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질타를 받았던 사람이 대전 총국장으로 가 있다. 발령난 것이 얼마 되지도 않았다. 총국장 후보가 정해지면 검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물론 해당 지역의 의견도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그런 것 없이 발령하는 것으로 끝이었고 해당 지역에서는 그에 따라 맞출 수밖에 없었다. 고대영 사장이 내려가면 사측과 시스템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야 한다.

27일 열린 촛불집회 기념 대회에서 시민들이 언론 적폐 청산을 외치고 있다.

-언론인으로서 자괴감이 컸을 것 같은데.

처음부터 언론인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KBS에 오신 분들은 정말 존경스럽다. 나는 언론인이라는 생각보다 단지 방송이란 걸 하고 싶어서 21년 전 KBS에 들어왔다. 노조 지부장을 맡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다. KBS에 입사한 뒤 말도 안 되는 적폐들, 정권과의 결탁 등이 해가 갈수록 더 심해지는 걸 보았다. 순수한 마음으로 오직 방송만을 위해서 에너지를 쏟던 직원들이 많이 힘들어졌다. 그런 것들을 감시하고, 고발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며 징계까지 받다보니 직원들의 에너지 낭비가 심했다.

역량이 뛰어난 조합원들이 많은데 그 뛰어난 역량을 적폐를 제거하는데 다 쏟아부어야 했는지 너무 안타깝고 억울하다. 그럴 시간에 더 좋은 방송을 만들 수 있고 기자와 PD들은 필요한 곳에 취재 다니며 보람되고 재미있는 방송을 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 힘들었다. 이제 그런 일을 끊고 방송에 전념할 수 있는 원년으로 돌아간다는 그 기대 하나로 버티고 있다. KBS·MBC인들이 싸워왔다는 것을 요즘 국민들이 알아주시는 것이 정말 고맙다.

 

-끝으로 제주도민들께 남기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거리에 나가서 항상 듣는 말이 방송을 빨리 보고 싶다. 요즘 로컬방송이 없다는 말을 말이 듣는다. 최선을 다해서 각 지역 KBS 조합원들이 싸우고 있다. 방송 정상화를 빨리 하기 위해서는 파업의 강도를 높이는 방법 밖에 없다.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조합원들은 정말 잘 하고 있다. 회사 내부에서 더 철저히 뭉치면 파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도민들께서 조금만 더 참아주시길 부탁드린다. 파이 체제가 끝나고 방송이 정상화되면 정말 필요한 곳으로 찾아가겠다. 파업을 계기로 제주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4,3 현장을 둘러보고, 강동균 전 강정마을회장을 만나 얘기를 듣기도 했다.

KBS는 순환근무제로 직원들의 이동이 있기 때문에 제주를 잘 모르는 직원들도 많은데 그들이 제주를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방방송이 정상화 되면 아이템으로 써야겠다면서 체크해두는 조합원들도 있다. 파업을 승리로 이끌고 도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방송을 만들어 도민들의 응원에 보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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