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성우(李成宇)/ 미국 노스텍사스 주립대학교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7년 부터 제주평화연구원에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세기의 대결로 알려진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시합은 대중들에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래 변화의 방향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래를 연구하는 세계적인 학자들이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이나 컴퓨터, 인터넷 기술과 관련이 핵심인 것처럼 자주 언급되지만, 사실 새로운 산업혁명의 핵심은 새로운 에너지원과 관련되어 있다. 설명하자면 기존의 산업혁명이 화석에너지인 석탄과 석유에 기초했지만, 새로운 산업혁명은 화석연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신재생 에너지”의 일반화에서 산업혁명이 시작한다.

대중은 물론 국가가 새로운 산업혁명에 민감한 이유는 석탄을 사용한 증기기관의 발명이 가져온 1차 산업혁명이 봉건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시켰다는 학습효과에 기인한다. 새로운 산업혁명이 가져올 사회적 변화의 핵심은 에너지와 관련되어 있다. 화석 연료에 기초한 경제구조로서의 이른바 탄소경제는 석탄과 석유의 채굴과 운반 그리고 가공과 사용에 있어서 대자본이 투여되는 만큼 사회구조가 위계적이고 서열적이며 중앙집중형으로 조직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서 신재생에너지는 개별 주택이나 마을과 같은 소규모 집단에서 분산되어 생산하고 소비하며 개별생산 주체는 네트워크를 통해서 연계되는 구조를 가지기 때문에 사회구조도 수평적, 협력적, 지방분권적으로 조직될 수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산업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형태가 경제구조를 결정하고 이는 나아가서 사회구조와 정치구조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경제구조가 위계적이고 서열적이며 중앙집중적인 사회에서는 정치구조도 동일한 방식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경제구조가 수평적이고 협력적이고 분권적으로 변화하면 정치나 사회구조도 그렇게 변화될 것이다.

물론 미래에 대한 논의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 부정적 효과도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기계에 의해 대치되는 노동력으로 실업이 증가하고 국내적으로도 고급기술자와 자본가 그리고 비숙련 노동자로 나뉘는 소득의 양극화 그리고 국제질서에도 기술의 양극화로 테러와 분쟁 가능성의 증가와 같은 부정적이고 암울한 전망이 다수 제시되고 있다.

부정적 시각에 반해서 긍정적인 비전도 상당수 있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을 통해서 새로운 기술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가능성의 확대는 비즈니스 모델이 사회공동체의 수준에서나 시장의 수준에서 수평적인 사회구조, 공동이익 추구,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이른바 민주주의형태의 기업 또는 경제모형이 가능하다는 긍정적 전망도 가능하다. 어떻게 기술과 인간을 결합하는가에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의 미래는 유토피아일 수도 디스토피아일 수도 있다.

제주는 신재생에너지 대체율을 55%까지 끌어올리고 전기자동차 보급은 4만 7,000여대로 확산시키는 것을 2018년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로 설정할 만큼 국내의 다른 어떤 지방자치단체보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제주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재생에너지 보급과 연관하여 융복합산업의 육성을 위한 ‘제주 카본프리아일랜드’ 추진 전략 등을 모색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제주형 4차 산업혁명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그린빅뱅전략’은 단순히 전기자동차 보급의 확대나 풍력발전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대체비율을 높이는 양적인 보급만이 아니라 관련 산업의 육성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새로운 경제모델이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주의 미래가치를 생각한다면 제주가 신재생 사업의 선도적인 지방자치단체로 자리매김 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신재생에너지 산업 전략을 ‘환경보호,’ ‘일자리 창출,’ ‘에너지 효율제고’와 같은 부분적인 기술혁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가치의 구현이나 공동체의 삶의 질 향상과 같은 포괄적인 목표를 핵심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 제주가 추진하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인류가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공동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키고 개인의 안정된 삶을 보장해줄 수 있는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 및 정치적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새로운 실험의 장이라고 생각된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대안보다는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는 대안이 필요한 현 시점에서 제주의 전통가치가 신기술과 접목될 때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제주가 신재생에너지의 테스트 베드로 역할을 하는데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은 1회의 충전으로 도 전역에 도달할 수 있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수성이 아니다. 제주는 전통적으로 인간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전통가치로 삼무정신을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생각해 왔다. 제주의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불의를 용납하지 않고 상호신뢰와 공동체에 대한 헌신 그리고 협동심과 같은 사회적 책임감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21세기 알파고와 신재생에너지가 주도하는 산업혁명 앞에서 제주 전통의 가치를 이야기 하는 이유는 기술 그 자체는 특별히 선악에 대한 분별이 없다는 게 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불변의 객관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철제 칼을 만드는 기술은 살인과 같은 악한 일에 쓰일 가능성과 함께 요리와 같은 선한 일에 사용될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원자력 기술도 마찬가지로 에너지로 이용될 가능성과 대량살상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문제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인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제주가 세계에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 내는 것은 도전이자 기회이다. 삼무정신과 같은 전통적인 공동체의 가치가 새로운 기술을 통해 형성되는 시장질서, 사회질서, 정치질서 나아가서 국제질서에 접목하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실험에 성공하는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산업화시대에 남동해안의 연안공업 도시가 모범사례였다면,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제주가 새로운 도시의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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