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 폴리테(Mani pulite). '깨끗한 손’이라는 이탈리아 말이다.

정경 유착의 부정부패 고리를 끊는 반부패 운동을 말하는 용어로 이해되고 있다.

1992년 이탈리아 밀라노 지방 검찰청은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Antonio di pietro) 검사를 주축으로 고질적인 정경유착 비리 척결에 나섰다.

1년 반 동안 진행됐던 마니 폴리테의 ‘부패와의 전쟁’에서 현직 총리를 포함한 국회의원 25%(177명)가 검찰 조사를 받았다.

정관계 인사 3천여 명이 수사 대상에 올라 1천4백여 명이 체포됐으며 1천여 명 이상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반향(反響)은 엄청났다. 마니 폴리테를 주도했던 검사들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선거제도 개선 등 정치개혁 운동에도 회오리 쳤다.

당시의 정경유착과 마피아까지 결탁됐던 부패 사슬이 완전히 끊어지는 듯 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이탈리아의 현실은 어떤가. 부정부패가 없는 깨끗한 나라가 되었는가.

아니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청렴도 조사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청렴도 조사에서 이탈리아는 35개 회원국 중 32위였다. 최하위 수준이다.

되돌려 말하자면 가장 부패한 나라로 이탈리아가 네 번째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유럽 선진국 중 이탈리아 부패 지수는 계속 부끄러운 상위권이다.

이는 마니 폴리테가 ‘부패와의 전쟁’에서 실패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훗날 마니 폴리테를 주도 했던 디 피에트로 검사의 회고는 의미심장했다.

“우리는 병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찾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환자 격리와 함께 항체 개발 등 후속조치는 실패했다”고 했다.

‘병든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썩은 나무뿌리를 파헤쳐 불사르는 데는 실패 했다’는 고백인 셈이다.

지금 한국의 문무일 검찰총장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문재인정부의 부패와의 전쟁’도 이처럼 ‘시작은 거창했지만 끝은 보잘것없는 용두사미‘ 꼴이 되지 않을까 해서 인용해 본 것이다.

사정(司正)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이에 대한 정치권과 사회 일각의 공방도 날카롭고 거칠어지고 있다.

적폐청산’의 칼과 ‘정치보복’의 방패가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의 이른바 ‘국정원 특수 활동비(이하 특활비) 청와대 유입’ 관련 수사는 이러한 ‘칼과 창의 프레임’이다.

검찰은 박근혜정부 국정원이 특활비 40억원을 청와대에 상납했다고 했다. 그것은 뇌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에 흘러간 특활비는 대통령의 통치자금이거나 고도의 통치행위에 대한 지원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정원 특활비와 통치자금의 성격을 이해 할 필요가 있다.

특활비는 ‘비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나 사건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로 해석할 수 있다.

영수증 처리는 물론 사용처나 사용내역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예산이다.

이에 대해 ‘숨은 예산’이니 ‘깜깜이 예산’, ‘눈먼 돈’, ‘블랙 머니‘, ’묻지마 예산‘ 이라는 등의 비판을 받아왔다.

여기에는 정보기관의 장이나 국회의장단과 여야 지도부를 포한 각 부처 수장들이 수령하는 일체의 비용도 포함된다.

2017년도 예산안에 편성된 특활비는 8990억원이다.

국정원(4947억원), 국방부(1824억원), 경찰청(1301억원), 법무부(287억원), 청와대(265억원), 국회(81억원), 국민안전처(81억원), 미래창조과학부(58억원), 국세청(54억원), 감사원(38억원), 통일부(21억원), 국무조정실(12억원), 외교부(8억원), 권익위(4억원), 대법원(3억원) 등 총 19개 기관에 편성된 예산이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법무부에 편성된 예산에 검찰 특활비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특활비와 관련해서 완전 자유로울 수 있는 기관이나 부처장관은 없을 것이다.

40여년의 공직 생활 중 예산편성과 집행의 실무적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는 한 고위 공직자 출신은 지방자치단체장도 요소요소에 숨은 예산을 편성하여 사용한다고 했다.

‘숨은 예산’이라는 특활비 편성은 편법이기는 하지만 공적 기관의 관행이라는 것이다.

‘통치자금’은 법적 용어는 아니다. 사전에도 없다.

다만 관용어로 통용되고 관행으로 이해되는 용어다.

국정원 예산에 분식(扮飾)편성된 비자금이 대통령 통치자금으로 활용돼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관행적으로 내려온 것이며 예산당국과 국회에서도 묵시적으로 인정해 왔던 것이다.

현직인 문재인 대통령은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예외일지 모르지만 1962년 국가 정보기관 창설 후 역대 모든 정부 모든 대통령이 그래왔다. 공직사회에서는 이미 ‘알려진 비밀’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대통령도 모를 리가 없을 터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이를 ‘상납’ 또는 ‘뇌물’이라는 이름으로 몰아 ‘적폐청산’의 제물로 매스를 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일각의 시선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여 여론 몰이로 전임 정부세력을 괴멸시키고 반대 쪽 보수 세력의 숨통을 조이기 위한 고도의 정치 공학적 공작을 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의 편법적 통지자금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되는 모든 예산은 투명해야 하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써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소위 통치자금이라는 대통령 비자금도 마찬가지다.

국익을 위하고 국민을 위한 고도의 국정활동에 써야 하는 것이다.

만에 하나 흥청망청 사적 용도로 사용했다면 세금횡령이며 국민에 대한 배신이며 반역이다.

철저하게 파헤치고 확인된다면 엄정하고 무거운 법적 철퇴를 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수 십 년 간 내려온 관행을 한 칼에 쾌도난마식으로 내려치려면 앞뒤를 재어보고 파장을 고려하는 신중한 지혜도 짜내야 할 일이다.

거기에는 수많은 ‘불편한 진실’이 도사려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특정 정권만을 겨냥한 ‘적폐청산’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박수만 칠일은 아니다.

이른 바 통치자금의 적폐를 청산하려면 모든 특활비를 폐지하고 투명성을 강화하는 제도개혁이 선행되어야 옳다.

그리고 특활비를 쓰고 있는 기관들의 자기고백도 나와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돼온 역대 정부, 역대 대통령들의 관행적 통치자금 적폐는 놔두고 지난 특정 정권의 그것만을 파헤쳐 망신주고 응징하려 든다면 ‘적폐청산’의 명찰을 달고 새로운 ‘적폐생산’을 한다는 자기모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사정당국이 정권 눈치 보기나 알아서 기는 사정활동을 한다면 이 또한 ‘권력의 시녀’이거나 ‘권력의 사냥개’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부패와의 전쟁’으로 일컬어졌던 이탈리아의 마니 폴리테가 실패한 것은 부패의 뿌리를 제대로 뽑아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일이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