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강정마을에 위치한 민군복합형관광미항에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 미시시피함이 들어오고 있다. 사진=강정마을회

22일 미 핵 추진 잠수함 미시시피함이 강정에 있는 민군복합형관관미항(이하 강정 해군기지)에 입항했다. 청정과 공존을 외치는 제주도에 최첨단 공격용 무기가 들어왔다. 핵잠수함이 적의 눈이 아닌, 도민들의 눈을 피해 소리 소문 없이 들어왔다. 과연 그 성능이 뛰어나다고 감탄해줘야 할까.

제주도민들은 미시시피함이 입항하기 직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미강정 해군기지를 감시하는 평화활동가들이 미시시피함을 발견하면서 그 소식이 알려졌다. 강정 해군기지 관련 소식을 평화활동가들이 해군보다 더 빠르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해군은 미시시피함이 입항한 뒤에야 비로소 그 소식을 언론에 짤막하게 통보했다. 해군은 언론을 일시에 사후 공지용 게시판으로 만들어버렸다.

미시시피함의 입항이 비밀리에 이뤄진 뒤에야 해군으로부터 사후적으로 통보받은 제주도민들은 핵잠수함 입항에 대한 단 한 번의 의견을 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찾아보면 핵 잠수함을 환영하기 위해 강정 해군기지로 한 달음에 달려갈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고귀한 미제 핵폐기물을 제주에 버려달라고 애원할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왜 해군은 제주도민들이 미군을 환영하러 뛰쳐나갈 수 있는 그 '좋은' 기회를 자꾸 날려버리는 것일까.

핵잠수함 입항이 제주도민들과 담을 쌓은 해군기지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면서 여러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다. 유류 등을 공급받고 있는 미시시피함 옆에서 노란색 컨테이너 두 동이 확인되며 그 용도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방사성폐기물을 버리기 위한 용도일지도 모른다는 것. 이에 대해 해군 측 관계자는 노란색 컨테이너는 발전기와 발전기용 기름통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해군의 그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민들이 더이상 해군의 말들을 온전히 믿지 못 한다는 데 있다. 이와 같은 불신의 책임은 어느 쪽에 있을까. 모르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제주도민 쪽일까. 아니면 핵잠수함이 들어오는데도 입항 직전까지 함구한 해군 쪽일까.

제주 땅과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알권리는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 해군 당국으로부터 뒤늦은 보도자료를 받은 언론 종사자 입장에서도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한두 번이 아니지만 매번 충격이 크다. 핵 추진 항공모함이 들어오고나면 익숙해질지 모른다. 아니, 해군이 제주도민들과 언론을 존중해주는 것을 포기하는 쪽이 빠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은 조그마한 기대를 가져보고자 한다.

강정 해군기지의 공식 명칭은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다. 제주도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의 해소를 위해서는 저 그럴듯한 명칭에 걸맞은 항만 운영 시스템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 중 하나로 해군·제주도·강정마을회로 구성된 민군복합형관광미항 관리위원회를 제안한다.

민군복합형관광미항 관리위를 통해 해군·제주도정·강정마을회 삼자가 함께 항만의 오염 상태를 체크하고, 제주의 바다와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민군복합형관광미항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관리위는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의 명칭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해군 측에서 이 정도의 장치도 마련하지 못하겠다고 볼멘소리를 낸다면 강정 해군기지로 인한 갈등 해소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현재 건설 예정인 제2공항이 공군기지로 활용되고 미군기까지 마음대로 드나드는 곳이 될 것이라는 제주도민들의 우려가 크다. 미 핵잠수함이 쥐도 새도 모르게 들어오는 강정 해군기지의 현실을 목격한 제주도민들이 ‘민군복합형관광공항’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부와 제주도 당국은 장밋빛 미래를 감언이설로 늘어놓기보다 당장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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