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 저녁 6시 백여명의 사람들이 제주시청 광장에 촛불을 들고 모였다. 곧 음악이 들리고 춤이 시작됐다. 사람들은 그 춤을 보면서 목이 메는 자신을 추스르며 한 고등학생의 생일을 눈물로 축하했다.

▲23일 저녁 제주시청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추모의 연무가 진행되고 있다.@제주투데이

이날은 지난 19일 세상을 떠난 고(故) 이민호 군의 18번째 생일이었다.

‘현장실습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제주현장실습대책위)’는 이 군의 생일에 맞춰 ‘현장실습 사망 고등학생 추모문화제’를 거행했다.

“진상규명과 공식사과 전까지 떠날 수 없다”

지난 9일 ㈜제이크리에이션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중 이 군은 제품 적재기의 프레스기에 목이 눌려 중상을 입었고, 결국 생일을 나흘 남겨둔 19일 추운 새벽, 숨을 거뒀다.

뒤이어 일어난 일들은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제이크리에이션에서는 이 군이 정지 스위치를 작동하지 않고 설비 내부로 이동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즉 사고의 원인을 이 군의 잘못으로 몰아간 것. 게다가 회사에서는 진상규명 약속이나 공식사과조차 유가족에게 건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민장례식장에 마련돼있는 고 이민호군의 빈소@제주투데이

이에 유가족은 지난 22일 발인을 취소하고 모든 일이 해결될 때까지 부민장례식장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법률지원을 맡고 있는 성명애 노무사는 “현재 회사측에서 배상보다는 유족특별급여를 이야기하고 있다”며 “회사에게 더 유리한 조건이기 때문인데 위법이 명백해 형사처벌까지 받아야 할 상황이다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성 노무사는 “진상규명이나 안전한 조치에 대한 말은 전혀 없고 회사가 어려우니 정상가동을 해야 한다는 신세한탄만 하더라”며 답답해했다.

▲24일 저녁 제주시청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참석한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제주투데이
▲24일 저녁에 열린 촛불추모제에서 백여명의 사람들이 참석해 고 이민호군의 명복을 빌었다.@제주투데이

“어른의 탁상머리가 아닌 실습생의 목소리로 바꾸어야”

이같은 현실에 이날 문화제에 참가한 사람들도 안타까움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정영조 대책위 집행위원장

정영조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회사에서는 계속 공장을 돌리고 나서 이야기를 하겠다고만 하고 있다”며 “회사 대표는 자기 돈과 이익만 우선인 사람이며, 지금까지 분향도 사과도 안 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아울러 이민호 군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학교에서도 공식사과가 없다는 점,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지금까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도 정 집행위원장은 지적했다.

정 집행위원장은 “이번에 문제점을 막지 못하면 내년에도 4백여명의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하는데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며 “현장실습의 적폐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능을 마치고 자유발언에 나선 고민성 학생

이어서 발언에 나선 고민성 군(18)은 “그동안 수능을 준비하느라 제대로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이민호군의 이야기를 듣고 무척 안타까웠다”며 “세월호처럼 아이들의 죽음이나 불행이 물음표로 남아서도 안되며 어른들의 메카니즘에 묻혀서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 군은 “누구의 잘못이고 어찌된 일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삶과 사회는 이것보다는 더 나아져야 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서울에서 날아온 이상현 특성화고등학생 권리연합회 추진위원장도 발언대에 나서 다른 지역의 특성화고 학생들의 증언을 소개했다. 이상현 위원장은 “다른 학생들도 이 군의 이야기를 듣고 ‘맞다. 똑같다’, ‘표준협약서 7시간이라고 써놓고 야근시키고 잡일만 시키더라’고 했다”며 “이일을 계기로 반드시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며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들고 추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대책은 반드시 세워져야 하지만 ‘어른들이 해줄게’식의 탁상머리에서 나오는 대안은 참사만 반복할 뿐 아무 필요가 없다”며 “특성화고 학생들과 현장실습생의 목소리를 듣고 어떻게 바꿀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현 특성화고등학생 권리연합회 추진위원장

“우리 민호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추모식이 끝난 시간 부민장례식장에서는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이민호 군의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만나고 있었다. 연락 없는 갑작스러운 방문에 유가족들은 반기기에 앞서 아무 연락 없이 온 원 지사를 탓하기도 했다.

또한 이군의 생일이라고 해서 이군의 친구들과 단체 사람들이 빈소를 찾아, 축하의 선물 대신 국화꽃을 고인의 영정에 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원희룡 제주도지사(오른쪽)가 고 이민호 군의 유족들을 만나고 있다.@제주투데이

기자도 빈소를 찾아 이군의 영정에 절을 올리고 유가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모든 상황을 대책위에 맡겨두었다는 이군의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저같은 사람이 그저 이렇게 버티고 있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이 군의 부친은 “장례식 치르느라 정신없을 때 회사에서 와서 문서를 내밀고 가고 애가 잘못했다고 그러고 어디 사람이 할 짓이냐”며 “정식사과와 진상규명을 약속하기 전까지 여기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것은 필요 없어요. 우리 민호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이라도 분명히 밝혀지고 회사에서 사과했으면 좋겠어요.”

눈물을 삼키면서 내뱉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지금도 기자의 귀에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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