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섬이 넉넉하게 파도를 포옹할 때 홀연히 돌아본 한라산은 제주인의 자존심으로 버티고 있다'

지난해 2월 오랜 시간의 벽을 깬 서양화가 문행섭씨(43.남녕고 교사)가 다시 들고 나온 주제는 바다다.

그가 8년만에 붓을 들고 나온 '풍토빛 그림전-波'은 그의 창작 세계를 알리는 일련의 '서막'이었다.

제주의 자연 속에서 '파(波)'를 주제로 들고 나온 작품 40여점에는 섬의 끝 마라도의 병풍바위에서 부터 제주시의 용두암, 동쪽끝 종달리와 서쪽끝 수월봉의 파도 내음과 구엄 앞바다의 매서운 칼바람이 느껴졌다.

다시 1년을 넘긴 시간 끝에 지난 5월 바람곶에서 만난 파도와 들꽃의 서정시를 화폭에 담아 대면한 ''波-바람곶의 서정'에서 그는 다시 '波-일어서는 바다'로 옷을 갈아입고 서울로 나선다.

그에 있어 모든 이야기의 근원은 바다다.

섬을 에워싼 거대한 물줄기의 벽은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고, 때론 참담한 좌절과 저항은 바다에서 나고 자란 제주인의 심성을 차곡차곡 메워나갔다.

제주의 이야기가 풍부한 색채를 갖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평론가 김유정씨는 "유독 많은 신(神)들, 창조적 힘이 넘치는 신들의 이야기와 지리적 조건이 가져다 준 척박한 환경은 제주인들의 예술적 확장 가능성의 잠재력이 높였다"고 말했다.

작가의 '波' 연작들은 적막과 침묵을 깨면서 서서히 일어난다.

구체적인 형상보다 추상적 속필로 풀어내는 그의 묘사는 절제성과 간단성으로 자유로운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혼재된 듯한 단순함과 복잡함 사이에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격랑은 머뭇거리는 내면을 흔들어 놓는다"는 작가는 "바다는 나에게 감동을 가져다 주는 '창작의 텃밭'"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번에도 다시 외돌괴와 마라도, 섭지코지의 격랑을 찾아나섰다.

'석다(石多)의 바람곶에서 풍다(風多)의 길목을 지킨다'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담아낸 첫 '들풀전'에 이어 바다와 들꽃에 생명력을 담아낸 그의 작업의 끝이 과연 어디일까.

바람과 파도 속에서 자연과의 내면의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그의 붓 끝이 기다려진다.

전시=10-19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상

▲ 화가 문행섭은

제주대 미술교육과와 교육대학원을 졸업, 현재 홍익대 미술대학원 회화과에 재학 중인 작가는 1993년 문행섭 작품전을 가진 이래 문행섭 풍토빛 그림전 파(波)(제주도 문예회관), 문행섭작품전 波-바람꽃의 서정'(갤러리 제주아트) 등 이번까지 네번 째의 개인전을 치르고 있다.

제9회 중앙미술대전, 한국현대판화공모전, 2001 핀란드국제소형판화전에서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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