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도 전문성도 없는 영상위, 파이 키우는게 능사 아니다"
“영상․영화인과 대화도 없어”
기획개발․후반제작지원․배급․영화제작에 대한 비전 제시 촉구

▲제주시 용담동 근처 카페에서 고혁진 제주영상위원회 해산반대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제주투데이

내년에 설립될 예정인 제주문화콘텐츠진흥원(이하 진흥원)을 두고 제주 영상․영화인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상․영화인 단체에서 제주영상위원회 해산반대 대책위원회(이하 반대위)까지 만들고 투쟁 일변도에 들어갔다. 또한 이들은 지난 27일 저녁에 열린 진흥원 설립을 위한 제주 영상․영화인 간담회까지 보이콧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진흥원 통합으로 영상위의 독립성과 예산, 지위를 높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반대위의 반발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이에 영상․영화인들은 하나같이 “도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제주도의 영상․영화계의 발전과 독립성은 양쪽 다 똑같이 원한다. 하지만 왜 이처럼 양측의 골은 깊어졌을까.

현재 반대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혁진 제주독립협회장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존속시킨다더니 갑자기 말 바꾼 도정 어떻게 믿나”

Q. 반대위를 꾸리게 된 배경을 알고 싶다.

고혁진 반대위 위원장: 영상위를 진흥원에 합친다는 이야기는 3년 전부터 있어왔다. 2년 전 용역 1차 설명회를 하면서 도는 여러 가지의 통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영화인들의 반발이 거세다보니 당시 이중환 전 도 문화관광스포츠국장이 “영상위를 존속하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말했었다. 그 이후 진흥원 설립을 위한 설명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올해 초 영상위 이사회에서 도 공무원들이 지나가는 말처럼 진흥원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을 때, ‘아, 그러면 지난번 설명회에서 말한 것처럼 영상위는 유지되면서 가는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기사에서 제주영상위가 해산된다는 것이다. 제주도가 의견도 수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흥원으로 가려고 한 것이다. 15년간 영상위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데 논의 한번 없이 진행됐다는 사실에 영상․영화단체가 모여 반대위를 꾸리게 됐다.

Q. 영상·영화인들이 영상위 해산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 위원장: 영상위 해산은 제주도내 영상․영화인만이 아니라 국내 영화인들도 반대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영상위원회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게 추세다.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실질적으로 영상위를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의 문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은 서울이나 경기지역 영화인들에게 경쟁력에서 밀리다보니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혜택을 받기 어렵다. 지역영상위원회가 영진위의 역할을 해야 한다. 영화를 만들 때, 기획개발․후반제작지원․배급․영화제작 지원 이 네 가지가 매우 중요하다. 지역 영화인들은 대부분 자부담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제작기간도 오래 걸리고 퀄리티도 떨어지니 경쟁력도 뒤처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영상위 역할인데,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 해산과 통합만 이야기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지난 11월 27일 열린 제주문화콘텐츠진흥원 설립 관련 간담회의 모습. 이날 대다수 영상·영화인들은 참여를 거부했다.@제주투데이

Q. 최근 열린 영상․영화인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고 위원장: 도는 이미 진흥원으로 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영상위가 해제가 아직 안 된 상황이니 영상위를 존속하든지 해제하든지에 대한 논의가 먼저다. 그것없이 간담회를 나가봐야 도가 추진하는 진흥원의 방향만 듣게 될 것인데 참석할 이유가 없었다.

인적쇄신이 영상위 문제 푸는 키워드

Q. 도는 진흥원이라는 재단법인으로 파이를 키워서 영상위 발전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고 위원장: 인적쇄신도 되지 않았는데 파이만 키우면 무엇 하나. 도는 진흥원으로 가면서 현재 영상위의 인력도 승계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영상위 인력은 미안한 이야기지만 전문성이 떨어진다. 현 직원들의 대부분이 영상이나 영화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많다. 영상위에 들어와서 공부하고 연구했다면 모르지만 지금 영상위의 현실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현재 영상위의 교육 커리큘럼을 보면 기술위주 교육만 10년째 반복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 연속촬용 과정이나 조명 관련, 스마트폰으로 영화촬영하는 방법 같은 것들뿐이다. 영화에 대한 비전이나 철학을 담을 수 있는 인문학이나 융복합에 대한 강의는 없다. 지난 10년간 제주도에서 모아놓은 독립영화만 월별로 상영해도 도민들이 제주 영화를 접할 기회가 늘어난다. 이런 고민이나 노력도 안 하고 있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영상위는 전문가들 위주로 구성돼있는데 이곳을 따라갈 생각도 안하면서 진흥원 간다는 것은 놀고먹겠다는 이야기다.
지금 20억원의 예산으로도 영상위는 버거워하고 있는데 200억원이나 300억원짜리 사업이 들어오면 뭐하나. 결국 이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운 전문가를 데려와야 할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1년 단위로 인사가 교체될 것이다. 이것을 영상위 직원들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간적, 재정적 손실은 결국 도민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인적쇄신이 이뤄진다면 진흥원 설립에 대해 논의해볼 수 있겠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절대 찬성할 수 없다.

▲고혁진 반대위 위원장은 제주영상위의 해산과 진흥원 통합은 제주 영화의 발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제주투데이

Q. 최근 간담회에서 도는 예술극장과 대형 영상스튜디오 설립을 약속했다.

고 위원장: 10년 전에 제주영상위에서 수중스튜디오를 만든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미 고양시에서 수중스튜디오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어서 정부 지원을 받지 못했다. 결국 자연스튜디오 이야기도 나왔지만 예산이나 날씨 문제 때문에 무산됐다. 그래서 현재 영상위 건물 앞 대진애니메이션이 위치한 곳에 스튜디오를 만들었지만 활용이 잘 안됐다. 게다가 후반제작업체가 없는데 스튜디오만 있으면 뭐하나.
게다가 대전에서 700억여원을 들인 스튜디오 큐브가 오픈했다. 100억원을 들이는 정도로는 제주 스튜디오 활성화에 다시금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기획개발·후반제작지원·배급·영화제작 지원이 영화 활성화의 핵심

Q. 반대위가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고 위원장: 지금의 인력으로 가면 안 된다. 인력쇄신과 함께 부위원장 체제가 다시 들어서야 한다. 지금까지 영상위 부위원장이 공석이었던 이유는 연봉이 적고 사업을 하고 싶어도 예산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사무처장 체제가 아닌 전문적 식견과 추진력을 지닌 부위원장 체제로 돌아오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정말 제주 영화가 발전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가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 영화에서 중요한 지원은 기획개발과 후반제작지원, 배급, 영화제작 지원 등이다.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제주 영화인들이 기획할 기회를 주어야 하며, 후반제작할 수 있도록 마련해주는 게 급하다. 배급의 문제는 영상위를 다른 시도처럼 24시간으로 운영해서 제주내 수백편의 영화들을 상영해주면 영화인과 도민 모두에게 좋다. 제주도의 경우 다양성영화 지원을 3천만원으로 하고 있는데 부산처럼 1억원까지는 아니어도 5,6천만원까지는 높여야 한다.

Q. 앞으로 반대위의 향후 계획을 듣고 싶다.

고 위원장: 오는 12월 11일에 전문가 함께하는 설명회를 준비하고 있다. 영상위가 존치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영화생태계를 예로 들면서 설명할 것이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의 영상위 관계자가 내려와서 진흥원과 영상위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 다룰 예정이다. 또한 현재 콘텐츠진흥원이 가지고 있는 문제도 더불어 다룰 것이다. 1년에 45개의 콘텐츠를 제작해도 단 하나의 작품도 제대로 건지지 못하는 게 현재 진흥원의 모습이다. 이 문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고혁진 반대위 위원장은 앞으로 제주영상위 해산만이 아니라 문화콘텐츠진흥원의 문제점도 함께 이야기할 계획이다.@제주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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