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신수정/ 비전코리아 영억학원 원장, 국가국제회의 VIPP 영어통역사

환우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사는 경우가 많다. 고아원의 고아나 양로원의 노인 또는 교도소의 죄수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나환우이다. 한국의 나환우 위안 대표적 단체로는 익히 알려져있는 소록도 이외에도 성라사로 마을과 산청성심원 등이 있다. 이 글은 필자가 나환우 돕기 30년 후원회원을 모집하면서 가장 감명 깊었던 일과 30년 나환우 돕기 후원공로상 수상에 대한 회고의 글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사랑하는 고향 제주를 떠날 때 필자의 꿈은 외교관이었다. 그러나 영어강사와 국제영어 통역가로 한평생을 보내고 있지만, 그 가운데 영어강사 일 덕분에 산청성심원의 나환우들과의 만남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다.

영어강의를 잘 한다는 평가를 받아 한때 마산 기업체에서 영어회화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대학 영문과 강사보다 필자의 영어 발음이 더 정확하고 열정적으로 강의를 한다고 호평을 받던 때이기도 하다. 이 때 기업체 사장님 소개로 인도네시아의 미스디 해군장군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는 인도네시아 부대가 마산 코리아타코마에 와서 군함을 만들어 인도네시아로 가지고 갈 때이다. 필자는 미스디 장군 부부에게 병원 갈 때 영어통역 해주고 한국문화를 전달해 주기도 했다. 그게 인연이 되어 미스디 장군부부가 귀국한 이후에는 주한사 해군장군 부부인 경우에도 의사소통이 잘 안될 때는 필자에게 연락이 와서 이것저것 통역을 해 주곤 하였다.

인도네시아는 더운 지방이라 인도네시아 분들이 마산에 와서 살다가 갈 때는 비싸고 좋은 겨울옷을 그냥 놓아두고 간다. 그 때 문득 추운 겨울날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떨고 있는 산청성심원의 나환우들이 생각나, 친하게 지내게 된 마리아란 가톨릭 세례명의 장군 부인에게 버리는 옷을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당시에 필자는 산청성심원의 나환우 돕기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었던 때였다. 주한사 장군 부인이 상자에 곱게 모아놓은 옷이며, 생필품 그리고 신문지 등을 갖고 함께 산청성심원을 찾아갔다.

그 날 눈썹이 비뚤어지고 일그러진 얼굴과는 달리 맑고 고운 나환자들의 영혼을 만나 감동을 받았다. 아니 그보다도 이국에서 나환우들에게 정성껏 위로해 주는 주한사장군 부인의 모습을 보면서 더 큰 감동을 받았다. 나환우 숙소에 들려 인도네시아 노래도 불러주면서 오랜 시간 나환우를 위로해 주는 주한사 장군 부인의 모습은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게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참으로 고맙고 눈물겨웠다.

한국 사람들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 나환우들의 찌그러진 모습을 전혀 개의치 않고 그렇게도 정답게 웃으면서 친절한 모습으로 대우해 주는 걸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부끄러움과 함께 커다란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환우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미쓰 신 덕분에 오늘 나환우 만나게 되어 기쁘다’며 필자에게 고마운 인사를 하는 주한사 장군 부인은 하느님이 보내준 천사였다. 이 때의 감동은 필자가 30년간 나환우 봉사를 하도록 이끌어준 결정적 계기였다,

배가 다 만들어져 주한사 장군 부부도 인도네시아로 귀국하게 되었다. 완성된 건함 축하연도 있었는데, 그 때 다시 한 번 또 진한 감동을 맛보았다. 성대한 송별 파티에서 주한사 장군이, 아마도 부인 마리아님의 부탁을 받고 했으리라 짐작되지만, 그동안 베풀어준 호의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산청성심원의 나환우들을 위한 특별선물을 드리고 싶다고 얘기했다. 인도네시아 부하 해군 200명이 산청성심원 나환우를 위하여 헌혈을 선물로 주겠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환우를 위해 다리의족을 선물로 해 주었다.

남의 나라에 잠깐 와 살면서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나환우를 위해 선행을 하는 걸 보면서, 봉사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 분들이 인도네시아로 떠나는 날 김포공항까지 가서 헤어지는 슬픔이 무엇인지도 다시 한 번 절절히 느꼈다. 필자 덕분에 나환우를 만나 선물도 주고 가게 되어 기쁘다고 하는 주한사 장군 부인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 때의 감동이 생각나 눈시울이 붉어진다.

돌이켜 보면, 나환우의 인연은 1975년 나환우 노인요양원인 아록의 집 축성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나사로 마을의 계곡에 위치해 있는 성모님 상 앞에서 밤새도록 기도했던 때부터인 듯하다. 이경재 알렉산델 신부님을 통해 아록팀장이 되었다. 후원회원 모집을 위하여 전국으로 돌아다녔다. 정부의 장-차관님과 국장님들은 물론이고 평직원들과 성당의 어르신님들로부터 매월 후원회비를 받아 아록의 집에 송금시켰다.

성나사로 마을 운영위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건 나환우 위안 행사이다. 나환우돕기자선음악회 ‘그대 있음에’이 그것이다. 기업체와 변호사님들로부터 자선음악회 티켓비를 미리 받아내려고, 지금 생각하면 참 열심히 돌아다녔다.

필자의 가치관과 인생관은 나환우를 만나면서 크게 변하였다. 필자가 나환우를 위하여 베푸는 게 아니라 나환우를 통하여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을 바치는 게 기쁨이 되었다. 봉사하는 삶, 베푸는 삶, 나눔의 삶을 배우고 깨닫고 실천할 수 있음에, 나환우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정치외교관 꿈은 일찍이 접었다. 영어통역사이자 사업가로서 자리를 찾아갔다. 영어학원을 운영하면서 돈도 조금 벌었다. 대기업 간부들, 정부기관 간부들, 군대 영관급 장교들에게 영어 강의를 했다.

1986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영어통역시험에 합격했다. 돈 버는 것보다는 국가를 위하여 VIPP 영어통역으로 나섰다. 특히 1989년 세계성체대회는 영어통역사로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때였다.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이 방한하시자, 성남 공항에까지 마중 환영 행렬에 참가했다. 자연스럽게 여의도까지 따라 갔다.

그런 인연에 이어 2014년 8월에는 대전교구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총대리주교님 추천으로 프란체스코 교황님 주재의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와 세계청소년아시아대회 개막미사에 세계기자단 영어통역으로 봉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서울교구 총대리 조규만 바실리오 주교님 추천으로 8월 16일 서울광화문 시복식에서 청년 봉사자 500명과 같이 제대 앞에서 VIPP 영어통역을 맡았다.

고향 제주에 갈 때마다 한라산은 마치 주한사 장군 부인이 나환자를 대하는 것처럼 환하게 미소 지으며 필자를 가슴에 품어준다. 한라산처럼, 주한사 장군 부인 마리아님처럼, 제주도민들도 관광객을, 외국인을, 외부인을 따뜻하게 맞아주면 좋겠다. 영어통역 일로 해외여행 갈 때마다 느끼는 건, 보기 좋은 관광지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그 지역 사람들의 친절과 따뜻한 인간성이다. 그러면 그 지역이 기억나고 다시 가고 싶어지고 그리워진다. 이처럼 제주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제주인이 변화해야 된다고 본다. 제주를 찾는 모든 이에게 친절과 따뜻함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마리아님을 다시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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