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의 앳된 동남아여성을 40대 제주도 남성이 강간했지만 무죄를 받았다. 이번에도 역시 ‘항거’ 의지가 약했다는 판단이었다. 성폭력 판결의 협소함이 국제적 망신에 이르고 있다.

▲스무살의 동남아여성을 성폭력했던 한국 남성이 피해자의 항거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받았다. 한국의 성인지 수준이 이제는 국제사회에까지 회자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자료사진

‘이주여성 친족성폭력 사건에 따른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동대책위)’는 올해 2월 발생한 동남아여성의 친족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하기 위해 18일 오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갖는다.

그간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지난 2월 초 한 동남아여성과 제주도 출신의 한국인 남성이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이에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여동생인 피해자(만 20살)가 입국하고 언니의 제주도 시댁에 머물렀다.

그러던 2월 14일 언니의 형부가 거실에서 발로 피해자를 건드리면서 성희롱을 했고, 2차로 방으로 끌고 들어가 안방 침대에서 강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방 밖에는 어른들과 조카들이 있었지만 피해자는 저항은 커녕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이후 2월 18일 피해자는 언니의 자국민 친구에게 이런 사실을 고백했고, 그 친구가 이 사실을 성폭력 피해자 지원기관에게 알리면서 2월 20일부터 상담이 진행됐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낀 지원기관은 피해자를 보호시설에 입소토록 했고, 3월 16일 성폭력 피해 고소장이 제출되면서 이 문제가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피해자는 재판을 위해 체류비자를 변경했고, 이 사실을 전해들은 피해자 언니는 즉각 이혼 신청을 하고 지난 11월 이혼 선고를 받았다.

이후 피해자는 지난 5월부터 16회에 거쳐 심리치료를 받았고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본격적인 재판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19일 제주지방법원은 제주지역에서 발생한 이주여성 친족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1심 무죄를 판결했다. 피해자의 저항이 없었다는 것이다. 

고명희 제주여성인권연대 대표는 <제주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피해자가 이미 어렸을 때 성폭력 피해를 당한 적이 있어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상태였다”며 “이 이유 때문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지만 이 같은 내용이 이번 재판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가해자인 형부가 사건 이후에 피해자와 단 둘이 있으면서 피해자가 웃는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었고 이를 증거로 제시한 것도 무죄의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며 “언니 결혼식을 망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참고 있었던 것이 이런 식으로 악용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지난 10월 제주여성인권상당소시설협의회에서 성폭력대책협의회가 구성됐고, 11월에는 전국단위의 성폭력대책협의기구가 구성되고 간담회가 진행됐다. 이후 이들 단체는 이번 공동대책위를 구성하기로 하고 오는 12월 20일 항소심 기일을 확정했다. 따라서 이번 항소심 대응을 위한 기자회견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고명희 대표는 “현재 피해자는 상담만 하면 어릴 때의 피해 경험까지 함께 떠올라 울기만 하는 상태”라며 “마음의 상처가 커서 지속적인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성폭행 및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항거의 협소성으로 무죄가 나는 판결이 종종 나타나면서 국내 성인지 수준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제주에서도 이같은 사건이 나타나면서 한국의 낮은 성인지 수준이 국제적인 이슈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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