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날입니다. 2018년 새해 아침이 열렸습니다. 어둠을 밀어내고 빛으로 일어섰습니다.

솟아오르는 태양은 참으로 찬란했습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은 축복입니다. 희망입니다. 그것은 설렘입니다. 새해 첫날 아침도 그렇습니다.

이 아름답고 빛나는 축복의 아침에 평화를 노래하고 싶습니다.

미움도 다툼도 새 빛으로 살라 버리고 골고루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들을 녹여내는 그런 ‘평화’를 짜 올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행복입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 공동체가 누려야 할 행복입니다. 이는 평화를 기름지고 살찌게 할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너무나 거칠었습니다. 사람들 사이가 너무 삭막하고 까칠했습니다.

관계는 악화됐고 갈등과 분열은 수습 불능상태로 치달았습니다. 지금도 그 생채기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부조리나 불합리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촛불로 타 올랐습니다.

51%의 지지를 받고 출범했던 정권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현직대통령이 파면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촛불 저항’의 결과였습니다.

‘국정농단 정권’은 처참하고 불행한 최후였지만 연인원 1천여만명의 비폭력 촛불시위는 세계를 놀라게 했던 민주시민의 승리였고 자랑거리이었습니다.

국가나 사회공동체가 감당 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 복잡했던 내우외환(內憂外患)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빈부격차에 의한 극심한 사회 양극화 현상, 청년실업 등 일자리와 노사 갈등, 고령화 사회 문제, 무너진 사회 안전망, 저 출산과 육아문제 등등은 아직도 국가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적폐 청산’ 이름으로 진행되는 촛불로 탄생한 정부의 정치 보복적(?) 전임정부 뒤캐기는 또 다른 갈등과 분열의 씨앗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국가경영의 우울한 내치(內治) 상황입니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안보 불안도 국가위기의 의제입니다. ‘아슬아슬 외줄타기’로 조롱받는 외교의 아마추어리즘도 심상히 넘길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계속되어온 미사일 발사로 남북 간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고조 되었습니다.

이를 둘러싼 열강들의 끊이지 않는 각축은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을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엄혹한 안보위기 상황입니다.

‘평화’를 새해 아침의 화두(話頭)로 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한쪽이 전쟁이요 한쪽은 평화입니다.

세상에는 ‘좋은 전쟁’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나쁜 전쟁‘입니다. 역사의 기록이며 교훈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세상에 ‘나쁜 평화’는 없는 것입니다. 평화는 과정이 어떻든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전쟁은 모두를 죽이고 피폐하게 만들지만 평화는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살려내고 생기 돌게 하는 명약입니다.

전운(戰雲)이 짙은 한반도에서 ‘평화의 노래’가 불리어져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대한민국’을 기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평화는 ‘관계의 정상화’에서 온다고 합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이 조건입니다. 그 첫걸음이 대화입니다.

아무리 ‘말 폭탄’을 주고받아도 말이 오가는 동안에는 폭력적 전쟁은 자제되는 것입니다.

‘평화를 위한 대화’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여기서 출발합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문을 걸어 잠그고 대화에 나서지 않는 상대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화는 일방의 구걸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쌍방의 인정과 존중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균형 논리’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평화가 거저 오는 것이 아니고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면 ‘힘에는 힘’이라는 균형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조지 워싱턴은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평화를 유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전쟁을 준비해 놓아야 평화를 준비 할 수 있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사실”이라는 케네디의 어록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불안한 안보 위기 현실에서 문을 걸어 잠근 북과의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성적 접근 보다는 현실적 접근에 중지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평화는 어둠속에서 피어날 수 없습니다. 밝은 빛 아래서 따뜻한 기운을 받아야 꽃을 피워낼 수 있는 것입니다.

미움 안에서는 평화가 자라지 못합니다.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관계의 정상화 속에서 아름답게 자랄 수 있습니다.

겸손과 이해와 배려와 관심이 ‘평화의 자양분‘입니다.

2018년 새해 아침,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평화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또 다시 성(聖)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옮겨 쓰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모든 이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보내고 싶은 것입니다.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신을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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