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박철홍(朴哲弘)/ 영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사범대학장과 교육대학원장, 한국도덕교육학회 회장 역임, '스무살의 인문학'등 20여 편의 공저와 역서가 있음

재작년, 그러니까 2016년 12월에 ‘판도라’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대박이 난 일이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 사건과 함께 경주 지진 그리고 원전을 둘러싼 위기감이 맞물리면서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 ‘판도라’는 대재앙으로 번역하면 무난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이 말은 모든(pan)과 선물(dora)의 합성어입니다. 제우스는 이 세상에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형제인 남자만이 있을 때에 그들의 배필이 될 여자를 창조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때 제우스 신은 여러 신들로부터 신들이 관장하고 있는 좋은 능력들 중에서 훌륭한 여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능력들을 선물로 받아 인류 최초의 여성을 만들 생각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아프로디테가 준 아름다움, 헤르메스가 준 언어사용 능력, 아폴론이 준 음악과 지혜의 능력 같은 것들을 선물로 받아 제우스는 ‘판도라’라는 여인을 완성하였습니다. 판도라는 제우스가 여러 신들이 준 능력들을 종합하여 창조한 최초의 여인의 이름입니다. 이름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판도라는 신들의 종합선물세트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할 것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판도라가 재앙의 상징으로 쓰이게 된 것은 판도라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호기심 때문에 판도라가 연 상자―그 이후로 이 상자는 ‘판도라의 상자’로 일컬어집니다―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판도라의 상자를 연다’는 말은 기아, 질병, 전쟁, 질투, 시기와 같은 상자 속에 갇혀 있던 온갖 재앙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과 같이 예기치 않았던 일련의 나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해에 일어난 사건과 사고를 회고해 보면 정말이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한 느낌, 어떤 점에서는 영화 ‘판도라’의 수준에 가까운 아수라장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1년 내내 이제 그만 두려나 할 때쯤이면 폭죽놀이 하듯 터지는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전쟁가능성의 고조에서부터, 자고나면 터지는 정치인들의 비리와 비리 정치인들의 검찰 소환에 이어, 얼마 전에는 포항의 대지진과 사상 초유의 수능고사 연기에 이르기까지 연속된 재앙들을 보면서, 아마 전국을 휩쓰는 전란이 있었던 때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어서야 합니다. 판도라가 놀라 상자를 닫을 때에 맨 마지막에 남았던 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혹자는 희망의 길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것은,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는 돌을 다시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적인 삶을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더라도 살아 있는 동안 희망을 버릴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절망의 순간에 희망을 말하는 널리 알려진 경구로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던 스피노자의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무심기하면, 나이든 분들은 잘 아는 ‘이용’이라는 가수가 부른 ‘서울’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종로거리에는 사과나무를,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어보자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입니다.

저는 이 노래 제목이 ‘서울’이 아니라 ‘서울의 꿈’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노래의 성격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저는 여기에 나오는 서울을 교육으로, 종로나 을지로를 초등학교나 중학교로, 또 어떤 단어는 학생이나 교실로 바꾼다면, 이 노래는 ‘교육의 꿈’을 아주 잘 표현하다고 생각하곤 했었습니다. 교육학자로서 저는 그런 학교와 교육이 한국사회에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후렴구에 해당하는 한 부분을 개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아아아 우리의 교육(서울) 우리의 교육(서울)/ 교실(거리)마다 푸른 꿈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학교(서울)를 사랑하리라.’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듯이, 교육학자로서 저는 장기적으로 볼 때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찾는 최선의 길은 교육, 본질에 충실한 교육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 의미에 충실할 때에 교육은 인재, 재목이 될 ‘사람나무’를 기르는 일이며, 자라나는 세대에게 종합선물을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듯이 꿈을 혼자 꾸면 꿈에 지나지 않지만, 얼른 보기에는 허황된 것으로 보이는 꿈도 모두가 함께 꾸고 노력하게 되면 희망의 빛이 되며, 결국에는 현실이 되는 법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모두 직-간접적으로 교육활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깝게는 자녀 교육의 과정에서, 그리고 직장, 단체, 동호인 모임과 같이 자신이 속한 다양한 삶의 활동을 통하여, 또한 투표를 비롯한 여러 가지 형태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교육활동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육은 교육현장에 있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만큼 우리가 본질에 충실한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만큼 교육은 변화하고 발전할 것입니다.

새해 아침 우리 모두가 이 나라의 장래를 짊어질 사람나무를 심겠다는 마음으로, 보다 충실한 교육을 위해 일조를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희망찬 새해를 시작하기를 권합니다.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을 통하여 비인간적인 폭력을 학교로부터 추방하며, 전근대적인 암기식 교육과 경쟁의 질곡으로부터 교육이 해방되기를 기원합니다. 학교가 진정한 배움이 장이 되어 삶에 필요한 능력들을 힘들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배울 수 있는 희망의 장소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학교가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는 지적-인격적 능력을 갖춘 성숙한 민주시민을 길러냄으로써 다시 한 번 이 나라에 희망의 빛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어느 곳 보다도 제주가, 바로 제주도민 우리들이 이러한 교육의 변화를 실현하는 데에 앞장설 수 있기를, 나아가 우리나라 교육에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중심지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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