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은 강단이 있어 보인다. 그렇게 비합리적이고 크레이지(CRAZY 광기 있는)한 리더는 아니다. 상당히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인물이다”.

김정은에 대한 인물평이다. 북한 선전매체의 선전용 찬사가 아니다.

최근 문정인대통령외교안보특보가 한 말이다. ‘용비어천가식 김정은 찬가’라고 비웃는 이들이 많다.

김정은에 대한 일반의 인식과는 너무나 깊은 심리적 협곡이 가로 놓였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말뜻만 일별(一瞥)해서는 그렇다.

‘강단(剛斷)있다’는 말은 사람을 칭찬할 때 쓰는 긍정 언어다.

‘야무지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는 사람 됨됨이나 행동이 빈틈이 없이 굳세고 단단한 것‘이다.

문특보의 발언은 김정은을 그렇게 칭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비합리적이고 크레이지 한 리더는 아니’라는 평가도 그러하다.

이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지도자라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치에 맞고 무리가 없는 리더십의 다른 표현이다.

이에 더해 예측 가능한 일관성 있는 지도자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강단 있고 합리적이며 일관성 있는 예측 가능한 지도자 김정은’.

문특보의 발언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이를 “위대한 지도자 김정은에게 바치는 헌사(獻詞)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 4일,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 공장’과의 인터뷰 말미에 나왔다.

“남북 관계 개선으로 우리가 북미 관계를 개선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운전석 론’이 주된 내용이었다.

“한국이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해 나간다면 북한이 우리를 통해서 미국과 대화하고 협력할 가능성이 많아지고 북미간의 관계 개선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는데 공헌 할 수 있다”는 맥락이었다.

문특보는 대화론자고 평화주의자로 알려지고 있다.

긴장국면을 풀어낼 키가 남북대화이고 이를 매개로 북미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면 최선의 시나리오다.

남북관계가 북미회담의 선순환 구조로 작용한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박수로 환영할 일이다. 나무라거나 내칠 일이 아닌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폭압정치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폭군 김정은에게 ‘립스틱 짙게 바르고 아양 떨며 찬사를 보내는 것’은 창피하고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은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거칠고 메마르다.

강권 통치를 위해 고모부를 참혹하게 처형 했다. 이복형까지 잔인하게 독살 했다.

권부 내 이너서클 멤버도 무자비하게 처형하거나 숙청했다. 그 수가 300명을 넘는다고 했다.

거세되지 않은 패륜적 권력 탐욕에 주민들은 굶어 죽게 하면서도 병정놀이 하듯 핵과 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공포정치와 안보위기를 조성해 왔다.

김정은을 광기어린 희대의 역사적 폭군인 로마의 네로, 소비에트의 스탈린, 독일의 히틀러에 비견하는 시각도 여기서 비롯된다.

포악하고 냉혹하며 예측 불능한 광기의 편집증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문특보는 김정은을 향해 ‘강단 있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일관성 있는 예측 가능한 리더‘라고 찬사를 보낸 것이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무학대사의 일갈(一喝)을 까칠하게 인용하자면 “김정은을 돼지로 볼 것이냐, 부처로 볼 것이냐” 심각한 인지 부조화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문특보의 ‘김정은 찬가’를 비꼬아 말한다면 폭압정치에 관한 한 김정은은 강단이 있다.

이너서클에 대한 무자비한 처형과 숙청의 광기는 나름대로 합리적 판단기준에서였을 터였다.

이는 크레이지한 이미지가 아닌 열정적 통치행위로 포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핵개발과 미사일 위협을 예측가능하고 일관성 있는 행태로 찬양 할 수도 있다.

문특보가 이러한 ‘반어적 익살’로 김정은을 평가했다면 백번양보해서 이해의 폭을 넘나들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아니다.

문특보는 지난 6년간 정권을 움켜쥐고 핵무장을 완성했다는 데 ‘강단 있는 지도자’라 했다.

‘체제 안보에 역점을 두면서 국제적 위상을 확대시키고 그러면서 국내적 전통성을 함양시킨다고 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외교안보특보의 말인지 ‘김정은 홍보 특보’의 발언인지 여간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는 비아냥거림이 거침없이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문특보의 ‘김정은 찬가’는 그래서 일반의 인식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 고 고약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와 일반국민사이 정서와 인식의 차가 이렇다. 이러한 괴리(乖離)현상은 민심 이반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일방에 기우러지고 편향된 외교 안보 인식에 균형 잡힌 변화노력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 겨울 올림픽 참가용의’를 표명한 후 남북한 대화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다.

내일(9일)은 판문점에서 남북 간 고위급 회담이 열린다. 2015년 12월 이후 2년 여 만에 마련된 대화 테이블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로 전운(戰雲)이 감돌았던 한반도의 긴장감을 풀 수 있는 대화의 물꼬일 수도 있다.

그만큼 의미가 크고 기대와 희망이 부풀 수 있다.

그러나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삼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시기상조다. 호들갑을 떨어서도 곤란하다.

대화의 물꼬가 흘러 당장 ‘평화의 단비’가 내릴 것이라는 조급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돌발변수가 곳곳에 지뢰처럼 묻혀 있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이 북핵의 실타래를 푸는 ‘한반도의 봄’이 될지, 더 큰 긴장감을 키우는 ‘동토(凍土)의 한반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두고 볼 일이다.

비관도 낙관도 아직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안개 속을 더듬어 가듯이 차분하게, 침착하게, 면밀하게, 신중하게 다가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격에 맞는 의연함을 잃어서도 곤란하다.

이를 위해서는 문특보식 ‘지나친 아양’도, 일반의 인식 같은 ‘지나친 폄훼’도 도움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남북 고위급 회담 대표단에게 보내는 국민적 주문은 엄숙하고 무거울 수밖에 없다. 보내는 경구(警句) 역시 진중하지 않을 수 없다.

욕속부달 욕교반졸(欲速不達 欲巧反拙). “급하게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기 쉽고 작은 것에 매달리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는 공자(孔子)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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