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에서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길호씨가 소설집'이쿠노 아리랑'을 냈다.

중편 '이쿠노 아리랑'은 제7회 해외문학상 소설부문 수상작. 제주4.3사건 때 시아버지와 남편을 잃고 아들은 시어머니에 맡기고 일본으로 피신을 온 70대 할머니를 통해 파란만장 했던 할머니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재일동포 사회는 한국적인 것과 일본적인 것이 뒤섞이고 또한 세대간의 갈등이 엉클어진 독특한 사회다.

더욱이 한·일 수교 40년이니, '한·일 우정의 해'는 여전히 낯설다.

남북한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와 정체성은 불안정한 상태다. 그리고 일본 내 외국인의 90%가 재일동포임을 감안하면, 외국인 차별은 사실상 조선민족 차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리랑'이다. 그리고 그 노래는 '미완의 해방노래'다.

# 가끔은 눈시울을 붉히며 뜨거운 가슴으로 부른 이쿠노 아리랑, 나가시마 아리랑….

김길호씨가 이쿠노의 아리랑을 소설로 엮은 것은 '아리랑' 그 자체가 가끔은 눈시울을 붉히며 뜨거운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 식견있는 양반의 노래가 아니라 백성들의 노래다. 그리고 그 노래는 한국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있다.

가슴을 저리게 하는 아름다운 선율에는 슬픔이 담겼듯이, 이 소설에도 슬픔이 담겨있다. 우리가 그렇게 긴 세월 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소설에도 그만큼의 비극이 배어있다.

그는 나병이란 숙명같은 서러움을 지니고 있는 제주출신 동포가 '조센징'이라는 멸시와 차별의 가중을 피하려고, 이름을 자꾸 일본인 처럼 바꾸면서 나날을 보내는 타국살이 설움과 고독을 새겨낸 '나가시마 아리랑', 그리고 이에 대비하듯 떠떳이 살아가는 한 여성의 모습을 그린 '이쿠노 아리랑'. 부득이 일본으로 건너온 주인공 할머니를 통해 제주도민 심중에 박혀 있는 4.3사건의 어둠과 아픔을 드러내고 있다.

김길호씨가 살고 있는 오사카는 재일 한국인 60만명중에서 가장 많은 동포가 사는 곳(통계상으로 18만명)이다. 그중에서 이쿠노(生野)구는 제주도 사람이 집중한 곳이다. 따라서 김길호씨의 작품세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생활환경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에는 대표작 중편 '이쿠노 아리랑'뿐만 아니라 '영가' '해빙' '까마귀 모른 제사' '몬니죠' '호주와 상속인' '후조의 전설' '나가시마 아리랑' '타카라스카 우미야마' '예기치 읺았던 일' '유영' '들러리' 등 단편 11편이 수록돼 있다.

이가운데 '영가'와 '해빙'은 재일동포 세대간의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 4대를 이어가며 일본에 정주하고 있는 재일동포 사회 조명

'영가'에서 1세인 할머니는 2세인 아들부부에게 할아버지 유골을 고향에 토장할 것과 자기도 죽으면 고향땅에 묻어 달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살고 있는 아들 부부는 토장을 위한 토지문제, 그 후의 관리와 벌초문제 등을 생각하며 일본에서 화장하기를 주장한다.

또 '해빙'에서 주인공 나시무라(박민식)는 너무나 한국적이기 때문에 '지독한 조센징'이라고 멸시와 조롱을 받으면서 겨우 파친코 가게를 차리게 된 아버지가 싫어서 대학에 다닐 때부터 아버지를 멀리하고 일본사람 행세를 하며 지낸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파친코 가게를 물려 받아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지낸다. 그러나 니시무라도 그 아들과의 갈등이 계기가 돼 한국사람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대로 살기를 결심한다.

김길호씨는 1987년 '문학정신' 8월호에 실린 단편소설 '영가'를 가지고 한국문단에 등단했다. 그 후 '해빙', '나가시마 아리랑', '이쿠노 아리랑' 등을 집필했다.

재일 역사학자 강재언 박사는 "김길호씨의 작품세게의 특징은 동포사회 속에서 호흡을 같이하고 그들과 애환을 함께 한 작가가 아니고서는 형상화할 수 없는 문학적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재일 한국인 중에는 일본말로 작품을 쓰고 있는 작가도 더러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 말로 쓴 작품을 가지고 한국문단에 등단하고 있는 작가는 내가 알기로는 김길호씨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 "내가 우리 말을 쓴다는 것은 작품 이전의 문제, 우리 말과의 싸움"

재일 시인 김시종씨는 "4대를 이어가며 일본에 정주하고 있는 재일동포들의 생활 속에서 세월과 함께 희박해지는 것이 고국에의 획귀심이며, 조상들이 살아온 제 고향에 대한 애착심은 감개 하나 불러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풍화 일변도로 향하고 있다"며 "아무리 떨어져 산다고 해도 이렇게 민족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같은 관점에서 "김길호씨의 작품은 재일 2세 작가, 양석일·이양지 등과 달라 본국에서 성년한 자기 시각과 실감으로 재일동포들의 삶을 매우 친근감 있게 그려내고 있으며, 재일 제주인들의 삶이 소설로 형상화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 만큼 김길호의 작업은 우리가 주목하면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한편 김길호씨는 작가노트를 통해 "지금 일본에서 우리말을 쓰는 작가는 나 혼자 뿐이다. 동포 문인들과 대화를 나누어도 일본어이고, 작품도 일본어로 쓴다. 원로를 제외한 거의가 우리말을 잘 모르기 때문이며, 이럴 때는 고독감마저 느낀다"고 토로햇다.

그는 그러나 "내가 일본에서 우리말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작품 이전의 문제로서, 과장된 표현을 한다면 우리말과의 싸움"이라며 "필자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역사의 질곡 속에 좌우되고 있는 '한 많은 재일동포들의 삶'을 우리 말로 쓰는 작가가 나와서 우리말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최근 한류 붐을 타고 한국어 강좌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아주 반가운 현상이나 일상적인 대화만을 위한 한국어강좌가 아니라, 좀더 차원 높은 의미의 문학적이고 학문적인 분야까지 승화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도서출판 제주문화 刊·정가 1만5000원]

   
▲ 소설가 김길호·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제주삼양초등학교 졸업
·제주제일중학교 졸업
·제주상업고등학교 졸업
·1973년 병역마치고 도입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로(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갯로 추천 완료
·단편「까마귀 모른 제사」,「해빙」,「몬니죠」,「호주와 상속인」등 다수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5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옇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있는 에 근무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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