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플레잉게임은 우리의 삶을 본 따 만든 게임 장르입니다. 몇 명이서 주사위를 굴리며 즐기는 역할 놀이에서 시작한 보드게임이 현재는 컴퓨터 게임으로 만들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즐기기도 합니다. 현실성을 주기 위해 피로도나 배고픔 정도를 넣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 중 줄거리에 중요하거나 필요한 것은 퀘스트라는 이름으로 보상이 있는 의뢰를 줍니다.

이런 퀘스트는 현실의 삶을 따온 것입니다. 조금 모습이 다르긴 하지만, 현실에도 퀘스트가 있습니다. 무척 많죠. 자영업자든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구직자든 저마다에게 주어진 다양한 퀘스트가 있습니다. 항상 달성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정한 퀘스트가 있습니다. 배고프면 밥 먹기, 등하교하기, 출퇴근하기, 잠자기, 화장실 가기 등 다양한 퀘스트가 있습니다. 어떤 보상이 없더라도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일상에서 해야 하는 퀘스트라고 아예 보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밥을 먹으면 허기가 가시고 활동할 에너지를 얻습니다. 잠을 자면 피로 회복으로 활동할 활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설거지를 하면, 밥을 먹을 수 있는 그릇이 생깁니다. 청소를 하면 더 깨끗한 집에서 생활할 수 있습니다. 쓰레기를 버리면 집의 공간이 넓어집니다. 화장실을 가면 노폐물이 빠져나가 몸의 균형을 맞춰줍니다.

트랜스젠더는 화장실이 항상 문제 됩니다. 첫째, 본인의 젠더 디스포리아(gender dysphoria: 성별 불쾌감)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태어날 때 의사의 결정으로 국가에 등록한 성별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는 사회에서 주는 성역할이나 혹은 자신의 신체에 불쾌감을 느낍니다. 신체적 특성이나 법적 성별 때문에 화장실 이용에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젠더 표현 때문입니다. 사회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는 데 익숙합니다. 안팎, 찬반, 여성과 남성, 내국인과 외국인, 제주사람과 육지사람 등등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구분합니다. 그래서 사회에는 남성에게는 남성의 옷이 있고, 여성에게는 여성의 옷이 있습니다. 머리도 여성의 머리 규정과 남서의 머리 규정이 다릅니다. 학교의 교복이나 두발 단속 규정만을 보아도 여성과 남성에게 특정 젠더 표현을 강요합니다.

물론 이런 것은 세계적으로 많이 존재했습니다. 패션의 본고장이라는 파리에서도 (사실상 사문화되어있던) 여성의 바지 착용 금지 조례가 2013년에야 폐지되었을 정도고, 1950~60년대 미국은 법적 성별과 다른 옷, 특히 남성으로 인식되는 사람이 치마를 입는 경우 범죄자 취급하고 단속하였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성별과 옷은 별 관계가 없습니다. 젠더 권력관계와 재봉기술의 발전에 따라 말을 탈 경우 바지가 필요하기도 했죠. 짧은 치마는 남성만 입을 수 있는 특권인 때도 있었습니다. 구한말까지 유생들은 머리를 평생 자르지 않았습니다. 조선은 임진왜란 때 조선인인지 아닌지 귀만 보고도 구분할 수 있었을 정도로 조선 남성들의 귀걸이 착용은 흔했습니다 우리의 젠더 수행, 젠더 표현은 대부분 근대부터 이어진 규칙이며 억압입니다.

트랜스젠더는 성별 불쾌감을 해결하는 트랜지션 과정에서 이런 사회의 관습적 규칙들 때문에 화장실에 잘 가지 못합니다. 위협을 받기도 합니다. 차라리 1인 화장실이라면 괜찮은데, 큰 규모로 두 성 표기가 된 화장실의 경우 굉장히 불편합니다. 패싱(외적 모습이 사회적으로 자연스레 그 성으로 인식되는 것)이라는 과제를 위해 머리를 깎거나, 머리를 기르며 호르몬을 투입합니다. 옷도 관습적 규칙에 따라 입습니다. 하지만, 이 패싱은 언제나 성공하지 않기 때문에 화장실은 둘 중 어디를 가도 놀라거나 위협받습니다.

많은 트랜스젠더가 배설관련 질환에 시달립니다. 바이너리 트랜스젠더(트랜스 여성과 트랜스 남성) 뿐 아니라,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도 화장실에서 시달리기 때문에 화장실 이용을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밖에 나오면 물 같은 것을 마시지 않거나, 화장실을 애써 참고 집에 들어가서 화장실을 이용합니다. 아니면, 어쩔 수 없을 때 젠더 표현과 달라도 법적 성별에 따른 화장실을 이용합니다. 1인 화장실이라면 그나마 마음 편하게 이용합니다.

성소수자 김기홍씨

저 같이 뻔뻔한 사람도 화장실이 넓은 곳을 이용하기 어려워 합니다. 하물며 다른 트랜스젠더는 어떨까요? 대안이 없지 않냐고요? 있습니다. 성중립화장실입니다. 변기와 세면대, 기저귀 교환대가 모두 있는 충분히 넓은 1인 화장실로 만들면 됩니다. 아버지가 딸을, 어머니가 아들을 안심하고 화장실에 데려갈 수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들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1인 화장실이면 문을 열었을 때 안에 사람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여부도 쉽게 알 수 있어 화장실에 숨는 범죄자로부터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성중립 화장실은 모두가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고치 살게 마씀. 우리도 편안하게 외출하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볼 일 보게 해줍써./김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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