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사진=제주투데이)

제주의 지역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선명한 입장을 밝히며 발 빠르게 주민들 또는 각각의 비대위와 결합하며 활동에 나서는 정당들이 있다. 그 중 가장 앞자리에 제주녹색당이 있다는 데 이견을 제기하기 어렵다. 몸집이 거대한 정당들 뿐 아니라 다른 진보정당들에 비해서도 활동이 눈에 띄게 왕성하다. 활동량은 정당의 지역 사회에 대한 관심을 방증한다.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힘이 응축되어 있다는 의미다. 녹색당은 그 응축된 힘을 이번 지방선거에서 발산하려고 한다.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는 청년, 여성, 이주민의 대표를 자임하며 이번 선거에 나섰다. 제주도지사 후보 중 청년 후보, 여성 후보, 이주민 후보는 아직 한 번도 없었다. '괜당정치'로 일컬어지는 제주 정치판. 지역 태생이 아닌 이주민 후보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과거 여성이 많다고 삼다도로 불려온 제주도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은 타 지역과 다를 바 없었다.  정치는 인맥이 튼튼한 어른들만의 일이었다. 좁고 닫힌 지역사회에서 청년들은 ‘무사 경 나댐시냐’며 혀를 차는 어른들의 눈치에 짓눌린 듯했다. 고은영 후보는 제주도지사 출마와 동시에 이와 같은 제주 사회의 견고한 세 가지 벽을 부순 셈이다.

나중에. 정치권은 누군가에게는 가장 절실한 사안들을 ‘나중에’라는 말로 미뤄왔다. 보다 시급한 현안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주장에 다른 이들의 현실은 뒤로 밀려났다. 녹색당 제주도지사 경선에는 정치 영역에서 ‘나중’으로 밀려나 있던 이들이 뛰어들었다. 녹색당 도지사 경선 결과 2, 3위를 차지한 평범한 아이엄마 오수경씨와 성소수자 김기홍씨가 비례대표의원 후보로 배정받았다. 이는 직업 정치인 또는 정치 엘리트가 아닌 시민정치, 당사자정치를 추구하는 녹색당의 기조가 반영돼 있음을 방증한다.

왼쪽부터 오수경 녹색당 제주도의원 비례대표의원 후보(1번), 김기홍 제주도의원 비례대표의원 후보(2번),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사진=녹색당 페이스북 페이지)

사회적 약자 뿐 아니라 진보정당들 역시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나중’으로 밀리며 ‘비판적 지지’에 대한 압박을 받아왔다. 1987 대선 당시 개발된 한국형 ‘비판적 지지론’은 여전히 민주당의 레토릭으로 사용되고 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상태에서 치러지는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비판적 지지’라는 말이 큰 효과를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제주에서도 마찬가지다. 재정적으로, 인적으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지방선거에 뛰어든 제주녹색당은 완주 의지를 밝혔다.

녹색당의 이번 도전은 정치인들이 제주도민들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 이는 지역 최대 현안인 제2공항 문제에서 부각됐다. 피해 지역 주민들의 편에 기꺼이 서는 정치인은 보이지 않았다. 제2공항과 관련해서 제주 지역 정치인들은 유독 말을 아끼고 몸을 사렸다. 고은영 후보는 제2공항 피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면서 주민들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고 밝혔다.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는 지난해 11월 24일 서울시-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토교통부 간 업무 협약식이 열린 서울 강남구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제2공항 반대 피켓 시위를 한 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면담 시간을 갖고 제주 제2공항 건설 피해 지역 주민들의 입장을 전했다.(사진=녹색당)

지난해 11월 24일, 고은영 후보는 서울시-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토교통부 간 업무 협약식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시 강남구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피켓 시위를 통해 장관과의 면담을 이끌어냈다. 김경배 제2공항성산읍반대위 부위원장의 단식 농성이 42째던 되던 날이다. 민의를 대변하지 않는 정치인들에 대한 절망은 현실 정치에 도전하겠다는 각오로 몸을 바꿨다. 고은영 후보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제2공항과 관련해 20분간 면담을 했는데 김 장관이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 명의 국회의원, 제주도지사의 목소리를 최대한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장관과의 면담이 끝난 뒤 제2공항 반대주민들은 물론 제주도의 개발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한 명도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주민들의 목소리가 국가와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는구나. 대의제가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한낱 소문일 뿐이구나. '그렇다면 대의제 안으로 들어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녹색당은 2월 1일 제주도의회에서 제주도지사 후보 경선 결과를 발표했다.(사진=제주투데이)

그러나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첫 번째는 선거를 치르기 위한 자금 확보다. 녹색당은 재정이 여의치 않다. 선거를 치르기 위한 자금을 350여 명의 제주녹색당 창당준비위 소속 당원들이 이제부터 모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1일 경선 발표 기자회견에서 “당사도 없는 상황에서 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있겠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고은영 후보는 “당원들이 사는 곳이 모두 당사다”라고 답했다. ‘우리가 도지사다’라는 모토에 걸맞은 답을 한 후보의 재치와 순발력에 박수를 칠 수 있겠다. 그러나 녹색당이 직면한 문제는 녹록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녹색당은 이와 관련 지난 5일 서울 헌법재판소에서 "시장·도지사에 출마할 때 고액기탁금을 요구하고 선거방송토론회 참가에 제한을 두는 공직선거법 조항은 위헌"이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고은영 후보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했다.

현 공직선거법은 시장·도지사 선거 기탁금을 5천만원으로 정해두고 있다. 정치에 뜻을 가진 20~30대 청년 후보들이 자신의 소득으로 마련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녹색당은 “헌법상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탁금의 벽을 넘기 위해 녹색당은 ‘2018 지방선거 기탁금 마련 캠페인’을 시작했다. 13일까지 당원과 시민들로부터 1만원을 받아 1000만원을 모으겠다는 것이다. 물론 지방선거를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녹색당은 이를 타개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 중이다.

녹색당에 던져진 두 번째 과제는 녹색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현실 정치에서 펼칠 수 있도록 정책과 공약을 구체적으로 다듬는 일이다. 정책 및 공약 개발에 대해서 고은영 후보는 당 차원의 연구는 물론 제주녹색당이 그 동안 지역에서 연대해 온 시민단체들과의 정책적 결합이 따를 것이라 말한다.

“도지사를 내기로 한 것은 정책적 역량을 키우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이 부분을 메우기 위해 녹색당 당원들과 함께 노력할 것이다. 연대해 온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정책적인 결합이 이뤄질 것 같다. 제주녹색당 뿐 아니라 전국 녹색당 차원에서 정책 집행에 필요한 예산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집중하고자 하는 부분은 역시 개발지상주의에 대한 부분이다. 개발일변도의 정책을 폐기하면 필연적으로 제주의 산업을 어떤 동력으로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따를 것이다. 이에 대비해 1차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 양적관광정책이 아닌 질적관광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 에너지 정책 발굴에 초점을 맞추고 공약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여타 환경 오염수치와 달리 주민들이 느끼는 개발피로도는 행정의 보고서에 기록되지 않는다. 개발피로도는 생활과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다. 우리 삶의 편의가 얼마나 침해당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이 과정을 통해 다양한 로드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를 만나다-②>로 이어집니다.(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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