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영수/ 제주대학교 교수를 퇴임한 후 전업소설가로 활동 중

필자의 고향마을은 좀 외떨어진 시골이다. 성년이 될 때까지 자랐던 마을이니 어릴 적의 추억과 사연들이 곳곳에 어려 있는 곳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도회지에 거주한 다음에는 향우회라는 모임에 나가 고향사람들을 만나볼 때가 고향의 추억을 되살리는 시간이 되었다. 고향마을에 직접 찾아갈 때가 별로 없으니 향우회에 나가는 것이 간접적인 고향방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향우회의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들어본즉, 향우회 출석이 저조한 현상은 다른 마을들의 경우도 비슷하다고 한다. 도시로 유입하는 인구는 많아지고 있지만, 이들은 자기 고향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옛날만큼 돈독하지 못한 모양이다. 교통과 통신수단이 워낙 편리하여 시골고향과 도시 거주지 사이의 격리감(隔離感)이 줄어들고 있으니 향우회 참석의 의미가 감해질 만도 하다. 세상살이가 팍팍해지면서 인정이 메말라가는 탓이기도 할 것이다.

향우회 출석이 부진한 현상은, 요즘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이가 있었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본능과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사회공동체인데, 스마트폰이나 인터넷문화의 발달이 향우회 같은 ‘연고(緣故)공동체’의 쇠락현상을 가져온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지연, 혈연, 학연 등, 선택의 여지없이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인연의 끈은 오프라인의 직접 대면방식이어서 요즘 사람들 감각에 잘 맞지 않은 모양이다.

향우회나 문중회, 학교동문회 등 연고공동체는 서열관계에 따르는 의무사항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그곳에서 자신의 취미나 욕구에 동조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보장은 없다. 회원들 간의 공감과 애착을 심어주기보다는 상하관계의 예의범절을 따지게 되니 마음에 부담이 되기도 할 것이다. 문중회에 나가면 서로의 촌수관계를 따지고 향우회나 학교동문회에서는 선후배 관계를 밝힌다.

요즘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은 연고에 얽매이지 않는 ‘취향(趣向)공동체’라고 한다. 각자의 취미와 성향에서 서로 공유하는 것들이 많아야 구성원들 간의 교류와 결속이 쉬워지는데, 비슷한 취향의 동호인들이 자유롭게 만나고 친교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모바일 매체와 인터넷네트워크라는 것이다. 국가라는 공동체도 너무 거대하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외로움을 풀어주는 정서적인 소속감은 별로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취향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은 소통의 장벽이 되는 세대차이라는 것을 피할 수 있어서 좋다. 세대에 따라서 취향이 달라지기 쉬운 것이다. 게다가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어서 좋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카톡방이나 인터넷카페 같은 것은 재미와 더불어 갖가지 정보와 지식의 공유를 가능케 하지만 회의비용을 따로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각종 스포츠동호회나 예능활동의 취미클럽 같은 것도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만나는 방법이 옛날과는 달라졌다. 그전에는 취미동호인을 만나기 위해 학교동문회나 향우회를 찾았지만, 요즘에는 간단하게 인터넷사이트를 찾으면 된다. 동호인 클럽이 구성된 다음에도 성원들 간의 결속력을 높이는 것은 클럽에 대한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인터넷 통신망의 편리함 때문이다.

옛날에는 혼자 떨어져있는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는 중요한 끈이 고향이나 친척이나 학교동문들이었다. 평생 변치 않는 인연은 개인의 이해타산을 떠나 사랑하고 추억하는 대상이었고, 운명에 대한 사랑이 뭔지를 알게 되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인내심보다는 편리함이 더 중요하고 의무와 책임보다는 재미와 유쾌함이 최우선인 세상이 되고 있다. 점점 활발해지는 취향공동체에서는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우니까 다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고 용납하는 포용력보다 자기 욕구의 충족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옛날보다 아는 것은 훨씬 더 많아지지만, 그같은 지식과 정보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므로 각자의 자기세계는 단단한 울타리를 둘러친 외로운 섬처럼 될 것이다. 사람들 상호간의 교류나 교감은 중요하지 않고 붕 떠있는 섬들이 될 것이니, 그것은 또 다른 고독과 허무의 길로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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